[Opinion] 백수, 솔로, 김밥... 평범한 우리도 충분할 수 있을까요? [영화]

주목받지 못하는 것들의 조합, <말아>리뷰
글 입력 2022.10.19 19:29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20221019195816_lsgeqoao.jpg

 

 

 

주목받지 못하는 것들의 조합, 영화 <말아>


 

20221019194253_lphdvqlk.jpg

 

 

영화 <말아>는 주목받지 못하는 평범한 것들의 조합이다. 주요 소재는 김밥이다. 오마카세와 호텔 뷔페는 인스타에 자랑해도 김밥 먹었다고 자랑하는 사람은 잘 없다. 일상의 음식인 김밥. 요즘처럼 물가가 치솟는 시점에도 김밥은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4-5천 원 정도다. 바쁜 사람들, 귀찮아서 끼니를 대충 때우고 싶은 사람들, 돈이 부족한 학생들이 주로 많이 사 먹는 김밥. 우리나라에 김밥 한 번 안 먹어본 사람이 있을까?

 

 

20221019201200_fhdpsfyl.jpg

 

 

평범한 소재인 김밥만치 평범한 주인공 주리. 그녀는 청년 백수다. 내세울만한 능력도, 경력도, 특별히 하고 싶은 것도 딱히 없다. 그나마 있는 거라고는 컴퓨터 활용 자격증과 살고 있는 작은 집 정도. 주리는 분식집을 운영하는 엄마를 대신해 가게에서 잠시 일하게 된다. 그리고 엄마 대신 매일 김밥을 만다. 엄마의 김밥 맛을 내기 위해 레시피와 노하우를 전수받아 연습을 거듭한다. 

 

 

20221019201521_arkxiblr.jpg

 

 

그리고 그 끝에 맘에 드는 김밥 맛이 나왔는지 혼자 집에서 연습하다 한 입 먹어보고는 씨익 웃는다. 난 이 씬이 울컥할 정도로 좋다. 이 씬에서 희망을 하나 품게 된다. 


'주리가 말고 있는 김밥처럼 평범한 내 삶도 요리조리 잘 조합하면 웃음 짓기에 충분하지 않을까'하는 희망.

 


 

'평범함'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사회



[성과주체는 성과의 극대화를 위해 강제하는 자유 또는 자유로운 강제에 몸을 맡긴다. '과다한 노동과 성과'는 '자기 착취'로까지 치닫는다. 자기 착취는 자유롭다는 느낌을 동반하기 때문에 타자의 착취보다 효율적이다.] - 한병철, 피로사회 中 

 

*

 

현대 사회는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무한히 열려있는 긍정 과잉의 사회. 이 곳에서 주리와 같이 성과를 내지 못한 사람, 노동하지 않는 사람은 ‘충분하지 못 한 사람’이다. 개인 자신도 사회의 평가 기준을 내재화하여 스스로의 가치를 측정하고 가늠한다. 대부분이 '성과'가 아닌 것들에 주목하지 않고, '공백과 사색의 시간'을 게으름으로 치부한다.

 

그렇게 현대인인 우리는 평범한 일상만으로 '괜찮다'고 느끼기 어렵게 된다. 나 역시 다르지 않았다. 나름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고민 털어놓을 친한 친구들을 몇 만나면서도, 연애를 하면서도 충분함을 쉽사리 느끼지 못했다. 계속 부족한 것 같았고 뭔가를 갈망했다. 나에게 현재란 보이지도 않는 미래의 어떤 지점을 위해 존재하는 시간같았다.


이런 내 굳혀진 생각을 영화 <말아>가 한 방 먹였다. 어쩌면 백수에 꿈 없이 엄마를 도와 김밥을 마는 ‘주리의 일상’은 현대 사회가 원하는 ‘충분함 그 이하의 삶’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영화를 보며 주리의 삶이 ‘충만하다’고 느끼고 있었던 거다.


영화를 보고 마침내 이런 생각에 도달했다. "영화적 시선을 통해 평범한 것들도 충분해질 수 있다." 

 

 

 

일상에서 충만함을 느끼는 법: 영화적 시선



영화적 시선은 일상적 시선과 달라야한다는 대학시절 교수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영화적 시선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 영화적 시선과 일상적 시선에 대한 비교를 먼저 해보았다.

 

*

 

일상적 시선 vs 영화적 시선


<일상적 시선>으로 내 방을 본다면 이렇게 보일 수 있다.

 

 

20221020131505_zyondzzh.png

 

 

수평적 앵글, 시야에 걸리는 것을 보여주는 게 <일상적 시선>이다. 연출자의 의도를 최대한 배제하고, 보다 사실적인 모습을 담기 위해 많이 쓰인다. 그래서 현장감과 현실성을 살려야하는 다큐멘터리나 브이로그 등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영화적 시선>으로 똑같은 내 방을 본다면 이렇게 보일 수 있다.

 

 

20221019203007_wxaelxqn.jpg

 

 

이건 내가 임의로 가능한 선에서 찍은 예시다. 꼭 위 사진과 같은 구도가 아니더라도 연출자의 목적과 의도에 따라 부감으로 위에서 방 전체의 모습을 보여줄 수도 있고, 익스트림 클로즈업으로 피어오르는 연기를 아주 가까이서 보여줄 수도 있겠다. 영화적 시선은 감독이 의도한 메시지와 감상을 극대화하여 관객에게 전달하기 위해 쓰인다.

 

<영화적 시선>은 피사체를 다양한 구도로 뜯어보고, 다른 배율로 보고, 나름의 의미로 재해석한 연출자만의 주관적 시선이다. <영화적 시선>을 통해 우리는 지나쳤던 일상의 숨겨진 표정을 발견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아무것도 아니었던 ‘Nothing’이 영화 속에선 그 무언가인 ‘Something’이 된다.


평범했던 분식점 알바생의 하루가 영화에서는 사건으로 주목받을 일이 되며, 아무도 자랑하지 않던 김밥도 영화에서는 주요 소재가 되어 의미 있게 등장하는 것처럼.

 

 

20221019204123_smfqeeel.jpg

 

 

만약 내가 주리를 일상적인 시선으로 보았다면 어땠을까?


아직 취직할 생각도, 의지도 없는 한심한 백수. 김밥집에서 김밥을 마는 또래 여자애 정도. 혹은 그런 사람이 있었는지 기억조차 하지 못하고 지나쳤을 수도 있다.


영화적 시선으로 주리를 볼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녀의 아기자기한 작은 집과 좋아하는 남자가 준 대일 밴드를 떼면 버리지 못해 화장실 거울에 붙여 보관하는 그녀의 귀여움을 발견하게 되었으니까. 그리고 그것으로도 충분한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주목받지 못할 법한 것들을 재조명해 내 세계를 넓혀준 <말아>의 ‘영화적 시선’에 새삼 고마운 하루였다. 

 

 

20221019204611_uqbelzxm.png

 

 

[우리 삶을 들여다보면 늘 빛나는 순간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항상 좋은 평가만 받는 것도 아니고요. 하지만 세상 사람 모두 자기만의 아름다움과 매력, 미덕을 갖췄죠. 저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그렇다고 믿습니다. 그런 눈으로 보면 아주 우연한 순간, 어떤 이유에서든 남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되는 그런 놀라운 순간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 박찬욱 감독 인터뷰, 박찬욱이 포착한 순간 中

 

 

 

 

[권기선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6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