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깻잎'이 논쟁의 중심에 서는 순간 [문화 전반]

리 매킨타이어, '포스트 트루스'
글 입력 2023.02.28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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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매킨타이어는 '포스트 트루스'에서 트럼프가 정치적 전략으로 적극 활용한 '가짜 뉴스', 그리고 그것의 결과인 '탈진실'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미국 저널리즘의 역사를 이야기한다.

 

 


'지구 평평이들(Flat Earthers)'은 어떻게 생겨났는가


 

그의 주장에 따르면 탈진실, 가짜 뉴스, 과학 불신 주의 및 유사과학의 확산이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뚝딱' 생겨난 것이 아니다. 지구 평면설을 주장하는 '지구 평평이들(Flat Earthers)'은 저널리즘이 쇠퇴한 과정과 맞물려 단계적으로 생겨난 현상이라는 것이다.


미국 저널리즘은 텔레비전의 보급과 동시에 위기를 겪게 된다. 텔레비전은 전국 가구의 필수 가전제품이 되며 오락의 기능을 철저히 했다. 또한 텔레비전이라는 매체의 특성상 경제적 이익 없이는 굴러갈 수 없는 시스템에서, 오락 거리가 많지는 않은 뉴스의 시청률은 하락했고, 언론사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사 언론'이 등장하게 된다. 폭스 뉴스를 비롯해서 자신 또한 언론의 한 종류임을 주장하는 채널이 하나둘 생겨났다. 이런 채널에서는 하루 종일 뉴스가 나왔다. 기존 언론보다 뉴스의 질은 떨어졌지만, 시청자는 언제든 뉴스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유사 언론은 시청자를 더욱 끌어들이기 위해 '논란/갈등(argument)'을 이용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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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평면설 상상도

 

 

 

'논란(Argument)'의 시작


 

'논란'은 어떻게 이용되는가? 아주 쉽다. 1 스튜디오를 빌린다. 2 가운데에 사회자를 둔다. 3 양 측에 비슷한 수로 좌석을 둔다. 4 양 측 사람들이 '찬반 논쟁'을 시작한다. 지루한 정통 뉴스보다 훨씬 재밌고, 유익해 보이기까지 한다.


문제는 이 프로그램에서 논쟁 거리가 정말 논쟁할 가치가 있는 것이냐다. 백신은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 정말로 인간은 진화한 동물인가 아닌가? ... (면역이 약한 사람을 제외하고) '백신은 질병 예방을 위해 필수적이고, 인간이 진화했기 때문이 우리가 사레가 들리고 꼬리뼈가 있다'라는 사회적으로 합의가 되어 있던 당연한 사실에 '논란'은 균열을 내기 시작한다.


이런 논란을 지켜보는 시청자들은 이미 수많은 논문으로 증명이 된, '99퍼센트 맞다'라고 볼 수 있는 과학적 사실에 심리적 의문을 품게 된다. 리는 바로 이 '과학 부인 주의'에서부터 탈진실 현상이 시작되었다고 주장한다.

 

 

 

논란이 논란이 되는 이유


 

유사 언론이 멀쩡한 사실에 흠결을 내는 것이 왜 위험한가? 그것은 그런 미디어가 '유사' 언론이라는 제약이 있기는 해도, 유사 '언론'으로써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기 때문이다.


별말도 안 되는, 그렇지만 열정적으로 이루어지는 토론을 지켜보는 시청자가 있다. 토론은 주장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는 형식이고, 말도 안 되는 궤변을 그럴듯한 증거로 둔갑시킬 수 있는 마법의 변장술이 바로 이 '논란'이다.


보통 이런 논란과 토론을 보는 시청자는 사실 검증을 잘 하지 않는다. 피곤하기 때문이다. 혹은 근거의 흠결이 교묘하게 숨겨져 있기 때문에 '진실'을 가려내는 것이 (늘 그랬지만) 훨씬 복잡해진 세상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가짜 뉴스는 쉽게 확산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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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깻잎 논쟁' 논란


 

한국은 내가 보기엔 논쟁과 논란을 좋아하는 사회인 것 같다. 새삼 생각해 보면 참 놀라운 명제다. 왜냐하면, 한국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의견은 절대로 마주하고 싶지 않아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한국인 논쟁 논란'이다.)

 

가장 '논쟁'이 활발한 곳은 각종 SNS와 커뮤니티이다. 이미 유행이 지난 것이기는 해도, 온 인터넷 사이트와 플랫폼을 뜨겁게 달군 '깻잎 논쟁'을 생각한다. 노사연과 이무송 부부의 사연에서 시작된 이 간단한 의견 차이는 어느새 '논쟁'이라는 이름을 걸고 인터넷 밈으로 등극했다.

 

그냥 재미로 하는 건데 뭐가 문제냐고? 맞다. 이 '깻잎 논쟁'은 재미로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 놀이가 될 수 있었다. 문제는 깻잎을 떼준다/아니다 양 측 의견에 여러 사람이 근거를 붙이기 시작해, 정말로 의견 차이로 인한 갈등의 소재가 되었다는 점이다.

 

구글에 '깻잎 논쟁'을 검색하면, 실제로 깻잎 논쟁의 찬반을 가리는 진지한 게시글과, 깻잎 논쟁을 바탕으로 사회의 현상을 짚어보는(이 글도 거기에 해당한다.) 칼럼을 합쳐 글이 총 31만 건이 된다. 그런데 그 밑에 연관검색어가 심상치 않다. '깻잎 논쟁 정답'. 잠깐, 이게 정답이 있는 문제이던가?

 

나는 너무 피곤해졌다. 그래서 그냥 깻잎 논쟁을 검색하기를 그만두기로 했다. 아마 나는 앞으로 깻잎에 관해서는 내 앞에 있는 누군가가 이야기하는 말은 무엇이든 대충 믿고 넘길 것이다. 어엉, 그래그래. 그런 것 같다.

 

 

[류나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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