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속에서도 꽃을 피우고자 했던 아티스트 - 맥 밀러

글 입력 2023.02.19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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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에게 우상의 죽음은 그 밖의 유명인의 죽음과는 다르게 다가온다. 모든 이른 죽음은 안타깝지만 자신이 동경하던 인물의 죽음은 유독 더 큰 허망함을 안겨준다. 특히 유년 시절을 제외하고는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경험한 적이 없었던 나로서는 아티스트 ‘맥 밀러’의 죽음이 처음으로 허망함을 느끼게 된 경험이었다. 1992년 피츠버그에서 태어난 래퍼 맥 밀러는 2018년 9월 LA의 자택에서 스물여섯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사인은 어렸을 때부터 그를 괴롭혔던 약물 중독. 술과 코카인, 특히 치사량 이상의 펜타닐 복용이 그의 갑작스러운 사망의 원인이었다. 표면적으로 맥 밀러는 이 시기에 약물을 끊은 것으로 보였지만, 그는 마약 판매상에게 속아 옥시코돈 대신 다량의 펜타닐이 섞인 약물을 구매했고 결국 죽음까지 내몰리게 된 것이다.

 

나는 이 글을 통해서 ‘마약에 중독되었던 아티스트의 예술성’을 칭송하고자 하는 것이 아님을 미리 밝힌다. 오히려 예술계를 포함한 사회 전반에서 마약이 사라져야 함을 강력히 주장한다. 모든 죽음이 그렇겠지만 마약 중독은 당사자는 물론 주변 인물의 삶을 오랫동안 천천히 갉아먹는다. 그가 살아있었다면 남은 삶 동안 치료와 함께 약물 복용이라는 죄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했을 것이다. 그의 사망 후 팬들은 그의 이름을 딴 재단을 설립해 약물에 빠진 젊은 아티스트를 도왔다. 그가 지금까지 살아 있었다면 맥 밀러 본인이 응당해야 했을 일이다. 다만 나는 그의 잘못과는 별개로 이 글을 통해서 그의 유작을 곱씹어 보며 2023년 현재의 나와 같은 나이에 사망한 나의 우상, 맥 밀러를 다시 한번 그려보고자 할 뿐이다.

 

 

 

그의 마지막 두 앨범 "Swimming", "Circles",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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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생전 마지막 앨범 "Swimming"은 그가 세상을 떠나기 불과 한 달 전인 2018년 9월에 발매되었다. 그리고 "Swimming"의 자매 앨범이라고 할 수 있는 "Circles"가 2020년 1월에 "Swimming"의 공동 프로듀서 중 한 명이기도 했던 Jon Brion의 주도 하에 발표되었다. 두 앨범의 제목은 ‘Swimming in Circles’, 즉 ‘제자리에서 원을 그리며 수영하다’라는 뜻으로 이어진다. 맥 밀러는 자신을 둘러싼 슬픔, 우울, 압박 등을 물에 빗대어 표현했는데, 제목으로만 따지면 ‘물에서 나오지 못하고 빙빙 제자리를 돌며 수영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발매 전후 Jon Brion의 인터뷰에 따르면 맥 밀러는 애초에 세 개의 앨범을 트릴로지로 기획했다고 한다. 두 앨범 뒤에 이어져 커다란 하나의 이야기에 마침표를 찍을 앨범이 있었다는 말이다. 실제로 맥 밀러는 "Swimming"의 투어와 동시에 "Circles" 녹음을 거의 마쳤다고 한다.


하지만 알다시피 맥 밀러는 이후 사망하였다. 이후 2년 뒤에 "Circles"가 발표되었으며, 그의 팀이 두 번째 사후 앨범을 제작 중이라고 2020년 여름에 밝혔지만 아직까지 구체적인 소식은 없다. 설령 새로운 앨범이 나온다고 해도 그가 진심으로 담고 싶었던 음악과는 의도가 다를 수밖에 없다. 따라서 트릴로지의 마지막 앨범을 예상할 수는 없겠지만, 그의 마지막 두 앨범을 관통하는 세 개의 키워드를 통해 그가 세상에 꺼내지 못 한 마지막 말을 유추해 보고자 한다. 

 

 

 

그를 둘러싸고 있던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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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w my head underwater

But I ain’t in the shower and I ain’t getting baptized

난 머리끝까지 물에 잠겨있어

샤워를 하거나 세례를 받는 것도 아닌데 

-Jet Fuel, "Swimming"

 

앞서 언급했듯이 맥 밀러는 그의 우울함을 ‘물’에 비유했다. 위의 가사는 ‘좋을 때나 나쁜 때나 말이야’라는 다음 가사로 이어진다. 즉, 좋을 때든 나쁠 때든 상관없이 맥 밀러 본인은 물에 잠겨 있는 듯 우울한 상태라는 것을 말한다. 실제로 데뷔 앨범이 혹평을 받은 후에 우울함에 빠진 맥 밀러는 약물에 손을 뻗게 되었고, 그의 약물 중독은 이후 연인 아리아나 그란데를 만나면서 가장 행복했던 시기조차도 항상 그를 괴롭혔다.

 

And I was drownin’, but now I’m swimmin’

Through stressful waters to relief

난 점점 물에 잠기고 있었지만 지금은 헤엄치고 있어

걱정 가득했던 물을 헤엄쳐 안도할 수 있는 땅으로

-Come Back To Earth, "Swimming"

 

그러나 맥 밀러는 그를 짓누르는 우울함에도 좌절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Swimming"의 첫 번째 곡인 ‘Come Back To Earth’에 그의 소망이 드러난다. "Swimming"과 "Circles" 두 앨범은 크게 두 가지 분위기에 의해 주도된다. 첫 번째로 그는 자신을 괴롭히는 약물과 우울함 등을 이겨내보려는 희망을 노래한다. 그러나 동시에 우울함으로부터 도망가지 못해 무기력하고 슬픈 모습 역시 담아내고 있다. 이 희망과 절망의 노래는 연속적으로 반복되며 그의 복잡한 심경을 드러낸다.

 

If I drown, I don’t care

They calling for me from the shore, I need more

물에 빠져도 상관없어

해변에서 사람들이 나를 부르고 있어

-Perfecto, "Swimming"

 

정확히 말하면 그는 우울함을 없애 버리는 것이 아니라 ‘우울함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삶’을 소망한다. 물에 빠져 익사하지 않고 수영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는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언젠가 ‘물 밖’으로 나오기를 바란다. 무기력하다 못해 죽을 것만 같은 우울함에도 기어코 땅(Earth)으로 나오고 싶어 하는 그를 통해 얼마나 그가 자신의 삶을 이겨내고 싶어 했는지 알 수 있다. 지금은 물에 빠져 있더라도 해변가에서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를 듣고 있는 모습은 아직 맥 밀러가 희망을 놓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뭍으로 나오고자 하는 그의 의지는 다음 앨범 "Circles"의 ‘Surf’라는 곡에서 더 강하게 드러난다. 

 

I ain’t comin’ down, why would I need to?

So much of this world is above us, baby

They might tell you that I went crazy

난 가라앉지 않을 거야, 내가 왜 그래야겠어?

이 세상의 많은 것들이 우리 위에 있어

그런데 사람들은 아마 너에게 내가 미쳤다고 하겠지

-Surf, "Circles"

 

‘서핑’은 파도를 향해 헤엄쳐 갔다가 다시 파도를 타고 돌아오는 행위이다. 근본적으로 땅에서 바다로, 바다에서 다시 땅으로 돌아오는 행위인 것이다. 위 가사에서 ‘나’와 ‘너’가 있는 세상을 ‘바닷속’이라고 가정한다면 ‘이 세상의 많은 것들이 우리 위에 있어’라는 가사도 말이 된다. ‘바다라는 우울한 세상 위로 더 많은 것이 펼쳐져 있으니 사람들이 말도 안 된다고 해도 나는 바깥으로 나가겠다’는 의지가 그에게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의 머릿속에 자리 잡은 수많은 생각, 혹은 '잡념'


 

극심한 우울감과 무기력에 빠져 본 사람은 알 수 있다. 혹은 그런 사람을 주변에서 본 경험이 있다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우울’이라는 것은 단순히 눈물이라는 단어와 치환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울은 어느 날은 무기력함으로, 또 어떤 날은 분노로 찾아온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머리를 가득 채운 ‘잡념’에서 시작한다. 

 

I just need a way out of my head / I’ll do anything for a way out my head

머리를 비우고 싶어 / 그럴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지 할 텐데

- Come Back To Earth, “Swimming”

We don’t see no lines, we don’t color inside

It’s a very small world, we don’t fxxk with the size

선이 없으니 밑그림에 색칠하지 않아도 돼

너무 작은 세상이야 크고 작은 건 신경 쓰지 않아도 돼

- Ladders, “Swimming”

 

심한 우울증을 앓았던 맥 밀러 역시 온갖 잡념들에 사로잡혀 있었다. 보통의 눈으로 보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너무 느린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는 머릿속에서 그를 갉아먹는 악마와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선이 없으니 색을 칠하지 않아도 된다’는 건 절대적인 기준이란 건 없으니 어떤 식으로 살든 괜찮다는 것을 말한다. 생각에 잠겨 남들의 눈에는 너무 굼떠 보이더라도 모든 사람은 나름의 최선을 다하며 살아간다는 것을 노래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Well, it ain’t perfect but I don’t mind / Because it’s worth it

완벽하진 않지만 신경 안 써 / 이대로도 가치 있는 걸

- Perfecto, “Swimming”

 

‘Fore I start to think about the future

First, can I please get through a day

미래를 생각하기 전에

먼저 오늘 하루부터 버텨 보면 안 될까?

- Complicated, "Circles"

 

맥 밀러는 자신 안에 있는 악마와의 싸움에 지쳤을지라도 포기하지 않기를 사람들에게, 또 자기 자신에게 바란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고 잠시 쉬어 가도 된다고 말이다. 남들처럼 멀리 보지 못하더라도 마음의 여유를 갖고 오늘 하루를 살아가면 된다고 그는 말한다. 그냥 두고 흘려보내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나, 혹은 타인에 대한 '구원'



Well, I need somebody to save me, hmm

누군가 날 구원해 줬으면 해

- Good News, “Circles”

 

희망을 붙잡고 노래하는 맥 밀러라고 하더라도 혼자 힘으로 바다에서 헤엄쳐 나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맥 밀러의 노래에서 ‘you’나 ‘she’로 표현되는 인물은 대부분 그의 연인이었던 아리아나 그란데라고 봐도 무방한 경우가 많다. 둘은 깊은 음악적 교류를 했을 뿐 아니라 누구보다도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져 준 관계였다. 특히 아리아나는 이별 후에도 약물에 빠진 맥 밀러를 돌보는 등 그에게 둘도 없는 소중한 사람이었다. ‘Woods’에서 맥 밀러는 그녀가 ‘거의 다 망가진 영혼 하나를 구했다’고 표현한 것만 봐도 그에게 아리아나가 어떤 존재였는지 생각해 볼 수 있다.

 

혼자 힘으로 삶의 짐을 벗어내는 것이 버거웠던 맥 밀러는 아리아나를 포함한 그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며 자신을 구원해 주기를 소망한다. 자칫 연약하기만 한 모습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중독에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는데, 중독을 치료하는 첫 번째 단계는 자신이 중독된 상태라는 것을 자각하는 것이라고 한다. 맥 밀러에게 약물중독과 우울함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누구보다 이런 자신의 상태를 잘 알고 있었던 맥 밀러이기에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 수 있었던 것이다.

 

And you, you don’t gotta work harder / I can calm you down

Hold me close, don’t hold your breath

더 열심히 하지 않아도 돼 / 내가 편안하게 해줄게

걱정 없이 날 끌어안아

- Dunno, “Swimming”

 

그렇다고 맥 밀러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바라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 역시 끊임없이 누군가에게 구원과 희망이 되고자 했다. ‘Good news’를 통해서 죽음 이후에도 팬들에게 위로를 줬던 그였다. 비단 팬뿐만이 아니라 그가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았던 것만큼 그 역시 다른 사람들에게 큰 행운이었다. 대표적으로 그의 마지막 연인 아리아나 그란데 역시 그에게 많은 위로를 받았다. 2017년 아리아나의 영국 공연에서 폭탄 테러가 일어난 사건이 있었다. 폭발로 인해 범인을 포함해 총 23명이 사망했고 1,000 명이 넘는 부상자가 발생했다. 해당 사건으로 아리아나는 큰 충격에 빠졌으며 활동을 중지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아리아나를 위해 공항에서 그녀를 맞이했으며 이후 본인의 스케줄을 정리하고 그녀를 돌봤다고 전해진다. 또한 그다음 달 영국에서 열린 추모 자선 콘서트에서 아리아나와 함께 무대에 서는 등 안팎으로 그녀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이렇듯 맥 밀러는 그의 삶 속에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누군가를 구원하기도 하며 ‘물 밖’으로 나갈 수 있기를 희망했다. 희망을 버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그는 다시 땅을 밟아 보지 못한 채 우리와 작별했지만, 그가 살아있었다면 다음 앨범에서 땅을 밟을 수 있었기를 바란다.

 

 

 

물 속에도, 땅 위에도 그는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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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re’s a whole lot more for me waiting on the other side

I’m always wondering if it feel like summer

저곳에 더 많은 것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지

난 항상 저곳이 여름 같을지 궁금했어

- Good News, “Circles”

 

누군가는 ‘Good News’에서 맥 밀러가 ‘저곳’으로 표현한 것을 두고 종교적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실제로 그는 생전에 ‘신을 믿게 된 것은 아니지만 그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가 누구로부터 구원받기를 원했는지가 아니라 ‘희망’을 품고 있었다는 사실 그 자체이다. 그가 희망한 것은 우울을 없애 버리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에게 필연적 우울이 있음을 인정하고 그 우울과 함께 살아가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가 수영을 마치고 해변으로 나왔을 때 그의 몸이 흠뻑 젖어 마르지 않더라도, 그는 나름대로 만족하며 살아갔을 것이다. 그가 지금까지 살아 있었다면 ‘swimming’과 ‘surfing’을 마치고 해변에서 여름을 느낄 수 있었을까. 

 

이 글을 준비하면서 부족한 영어 실력으로 더듬더듬 해외 사이트들을 오가며 배우게 된 표현이 있다. ‘get faded’라는 표현인데 맥 밀러의 ‘Conversation, Pt.1’에도 사용된 말이다. 곧이곧대로 풀이하면 ‘사라지다’, 혹은 ‘색이 바래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지만, 속어로는 술이나 마약, 특히 마리화나에 ‘취하다’라는 뜻으로 사용된다고 한다. ‘high’와 비슷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제 물속에서도 해변가에서도 맥 밀러는 찾을 수 없다. 그가 평생 피웠던 대마초의 연기처럼 그는 하늘 높이 홀연히 ‘get faded’하였다. 그러나 비록 그는 사라졌지만 그의 음악은 앞으로도 우리 곁에 남아 작은 ‘희망의 씨앗’을 선물할 것이다. 그가 우울이라는 ‘물’에서 허우적거리지 않고 수영하고자 했던 것처럼, 이 글을 통해 맥 밀러를 알게 된 몇 명의 사람들이 어둠 속에서 희망을 찾았으면 한다.

 

Until it gets old

There’s water in the flowers, let’s grow

내 씨앗이 완전히 말라버리기 전에

꽃에 물이 좀 있으니 키워내자

- Surf, “Circles”

 

[김준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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