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시대는 달라도 우리네 이야기 - 이백십일 [공연]

글 입력 2023.02.16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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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jpg

 

 

연극 <이백십일>은 1906년 일본 구마모토 아소산을 배경으로 한 나쓰메 소세키의 단편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졌다.


일본의 근대화가 이루어지는 시대에 일본은 엘리트 교육을 강화하고 사회 개혁에 힘을 썼다. 전통을 고수하는 자들과 급격한 서구화의 충돌. 바로 그런 혼란스러운 시대에 나온 작품이 이백십일이다.

 

첫 시작으로 북이 크게 울리며 막의 시작을 알렸고 두 개로 나누어진 세트장은 궁금증을 자극했다. 대강의 줄거리는 이렇다. 료칸의 한 숙소에서는 두부 장수 게이와 그의 친구 로쿠가 아소산을 등반하기 위해 료칸의 한 숙소에 묵는다.  그의 앞 방에는 사업에 실패한 동경제국 대학을 나온 엘리트 도련님이 요양 중이다.

 

게이와 로쿠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아소산의 등반에 성공한다. 그 속에서 서로에 대한 우정을 확인하고 로쿠는 게이의 끊임없이 올곧은 모습에 감화되어 다시 한번 아소산을 오르기로 한다.

 

그러나 도련님은 아소산의 기세에 눌려 폐병에 걸렸다 착각하고 의사를 부르지만 단순 감기에 불과한 병이었다. 돈과 재능에 구애받던 도련님은 결국 모든 것을 내려놓고 숙소의 종업원으로 취직한다.

 

 

 

두부장수와 도련님


  

이 연극의 제일 주목할 만한 포인트는 게이와 도련님의 반대되는 관계다. 게이는 두부장수의 아들로서 부자를 혐오하고 그런 신분 제약에서 벗어나 당당한 태도를 보인다. 반면 도련님은 굉장한 엘리트이면서 아는 게 많지만 자신의 한계를 재단하고 생각이 많아 쉽게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게이와 로쿠는 아소산을 등반하기로 한다. 재 가루가 가득하여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로쿠는 결국 다리를 다치고 게이는 절벽에 빠진다. 게이는 그러나 그 어떤 어려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로쿠를 엎고 산을 등반하고 숙소로 무사히 귀환한다.


힘들게 집에 돌아온 로쿠는 고향에 돌아가고 싶지만 게이는 다시 아소산을 등반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째서 그래야 하냐는 로쿠의 물음에 어쨌 든 올라야 한다는 게이의 맹목적인 요구는 마음을 울린다. 산을 오르면 정말 무언가 달라질거라는 믿음이 생긴다. 로쿠도 어느 순간부터 그래 그게 맞는 말이라고 한다.


반면 도련님은 이런 말을 중얼거린다.


“한 가지 재주를 갖고 있는 사람은 한 가지 재주에 구애를 받고 한 가지 예술적 재능을 갖고 있는 사람은 한 가지 예술적 재능에 구애를 받는다.”


능력있는 엘리트 도련님이 자신이 가진 것에 구애받는 모습과는 상반된 게이의 모습을 보며 우리도 무언 가에 구애받고 있지는 않을까 나의 모습을 돌아보게 되었다.


무언가 큰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 이미 가진 것들에 구애받아 버리는. 이 정도면 되겠지, 이쯤 하면 되겠지. 한 번의 실패로 나의 능력까지 의심하고 나를 이기지 못해 결국은 이상과 전혀 다른 현실에 가라앉는다. 이어지는 자기합리화. 그건 포기였을까 인정이었을까.

 

*

 

연극은 주로 만담이 오고 가며 이야기가 진행됐다.

 

특히 반숙 계란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 맥주는 없는데 아사히는 있다는 이야기. 연극은 그런 만담과 각자의 주장으로 이어졌다. 물 흐르듯 흘러가는 대화 속에서 날카롭게 하나씩 마음을 파고드는 것들이 있었다. 세트장과, 게다 소리, 큰 북소리, 날카로운 쇳소리들의 의미.

 

또한 관객을 빤히 쳐다보며 질문하는 소격효과를 이용하여 좀 더 비판적인 관람이 가능했다.

 

일본의 불안한 근대화의 변화 속에서 그리고 동시에 지금의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서 우리는 이 캐릭터들 중 무엇을 원하고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시대가 달라도 존재하는 일상의 동시대성. 우리는 과거와 현재도 똑같이 살아가고 있고 다들 그렇게 살아가는구나를 생각하게 하는 잔잔한 위로를 건네는 연극 <이백십일>이었다.

 

 

[박소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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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  
  • 박래진
    • 현장감이 있네요
      느낌을 잘 살린 글이네요
      잘 읽고 가며 다음이 기대 됩니다.
    •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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