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이 있는 한 우린 여전히 청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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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추억을 먹고 사는 동물이다.'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각자의 삶에는 저마다의 경험이 있고 그 속에서 만난 사람들이 있다. 그 곳을 더 깊숙이 파고 들어가면 그 속에서 즐긴 노래, 음식 그리고 패션 등이 자리매김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시대의 감성과 유행은 사그러들기 마련이지만 마음 한 켠 깊숙한 곳에는 아직도 그때의 나이를 가지고 그 시대의 옷을 입고 그때의 유행을 즐기는 '우리'가 있다. 바로 여기 1991년 각자의 개성과 특징을 지닌 8명이 모였다.
X세대- 개성있는 오렌지족
추억의 장소에서 나누는 추억
개성있는 복장을 하고 이들이 모인 곳은 작은 다방이다. 여러 메뉴가 전시되어 있지만 지금의 우리에게는 다소 낯선 음료가 많다. 요즘 시대에 냉칡즙이나 인삼차, 생강차 등을 파는 카페는 눈 씻고 찾아보아도 보이지 않는다. 멤버들이 앉아있는 소파도 스타벅스에서는 보이지 않는 디자인이다. 세련됨과는 거리가 멀고 이때를 살았던 그들에게는 다소 어려운 메뉴 -이를테면 라일락 블라썸 티와 같은-도 보이지 않는다. '마음에 들면 냉커피를 시키고 그렇지 않으면 쌍화차를 주문하겠다.'라는 발언도 그 당시의 레트로 느낌을 물씬 풍긴다. 이곳에서 멤버들이 나누는 이야기에는 저마다의 사연이 묻어있다. 그때 당시 몇 살인지부터 시작하여 무얼하며 먹고 살았는지 어떤 노래를 들으며 열광했는지를 얘기하는 그들의 입에는 웃음이 번져있다. 분명 오랜 시간이 지난 경험일텐데 이토록 선명히 기억하고 있다는 건 저마다 조금씩 다른 추억을 경험하고 함께 공유했기 때문인 듯 하다.시대가 변해도 명곡은 그대로
'세월이 가면
가슴이 터질 듯한 그리운 마음이야 잊는다 해도
한없이 소중했던 사랑이 있었음을
잊지 말고 기억해줘요.' -최호섭, <세월이 가면>
자신의 사연을 라디오에 보내면 노래와 함께 띄워주었던 그 시절을 재현하기 위해 멤버들은 LP바에 모였다. 가수 김종국이 신청한 '세월이 가면'이라는 노래를 들으며 멤버 모두 추억 여행을 떠난다. 서로 손을 잡고 추억을 회상하고 되돌아갈 수 없는 시절에 눈물짓는 멤버도 보였다. 아주 오래전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나온 곡이지만 가사를 들으면 마음이 서글퍼지는 건 나도 마찬가지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때의 기억이 희미해지고 함께했던 사람이 떠나가기도 하지만, 지금 눈 앞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 추억이, 사람이 영영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경험해보지 않은 기억임에도 공감할 수 있는 건 그때의 명곡이 주는 가사의 묘미이다.
시계 거꾸로 돌리기 연구: 그리운 것들의 소환
하버드 교수인 엘렌 랭어 교수는 1980년대 이전에 노인들을 대상으로 '시계 거꾸로 돌리기'연구를 진행하였다. 이 실험은 하루를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70대 후반, 80대 초반의 노인을 대상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20년 전으로 되돌아 간 것처럼 그때의 환경을 재현하였다. 그때 유행하던 물건과 옷을 배치했고 라디오에는 그 시절 유행했던 노래가 흘러나왔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환자와 다름없는 삶을 살던 노인들이 일주일 만에 눈에 띄는 활력을 찾은 것이다. 실험결과 이들의 실제 청력이나 약력, 기억력 등이 높아졌으며 관절염 등의 신체 변화도 사라져 이들의 신체나이는 50대 수준으로 향상되었다. 이처럼 마음에 따라 몸의 변화도 함께 나타난다.
추억도 이와 같다. 그때 당시의 것을 기억하고 재경험하는 것은 우리의 몸과 마음에 활력을 불어넣어준다. 그때 유명했던 것들을 보면 마치 우리가 이미 그 세계 속에 들어와있는 것만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추억 속에서 우리는 정신적, 신체적으로 건강해지고 즐거울 수 있다.
다양한 에피소드와 컨셉을 시도하는 런닝맨이지만 이 회차가 기억에 남는 이유는 많은 이들의 공감과 더불어 추억을 상기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꼭 1991년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지금의 상황에서 몇 년 전만 떠올려도 느낄 수 있다. 유튜브에 예전에 유행했던 케이팝 가수들의 활동을 모아놓은 영상이 많은 조회수를 기록하는 것도 모두 그때 기억 속에서의 자신을 떠올릴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나'는 어떤 상황 속에서 살고 있는가, 어떤 음식을 먹는가, 어떤 노래를 듣는가, 어떤 이야기를 하며 웃음짓거나 슬퍼하는가. 이 순간들을 잘 기억해놓길 바란다. 시간이 지나면 지금의 일상도 한때의 추억 속으로 기억될테니.
[이지혜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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