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잃어버린 모습을 마주하다 - 이백십일 [공연]
-
나쓰메 소세키는 일본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이다.
도쿄 대학에서 영문학 학위를 받고 1900년 정부 장학금으로 영국 유학을 갔다. 하지만 낯선 외국 땅에서 겪는 외로움으로 정신질환을 겪어 다시 일본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그는 1903년 도쿄 대학에서 영어 강사가 됐다. 1907년 이후 그는 글쓰기에 몰두하기 위해 교직을 그만둔다. 일본 아사히 신문사 직원으로 10년 동안 전문 소설가로서의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소세키는 10년 동안 일간 소설을 기고했다. 수많은 작품은 일본인들이 사랑하는 소설로 자리 잡았다.
일본 근대문학에 많은 영향을 미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소설에는 놀라운 감수성과 미묘함이 담겨 있다. 소세키의 문학은 현대 시대 개인주의를 탐구하는 아주 중요한 지표이다. 그의 문학적인 면모는 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도련님>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 당시 자본주의를 풍자적인 요소로 나타냈다. 또한 근대화된 서구 문명 속에서 외로움과 쓸쓸함으로 가득했던 청년 나쓰메 소세키가 담겨 있다.
이백십일은 소세키가 1899년 9월에 친구와 함께 갔던 실제 여행을 바탕으로 한 재미있는 소설이다. 두 남자가 여행 중에 나누는 대화를 기반으로 이야기가 구성됐다.
두 친구가 아소산을 오르려고 하는 과정이 담겨 있다. 폭발할 위험이 큰 아소산에서 그들이 보았던 배경, 행동으로 농담 섞인 이야기를 기록했다.
이 이야기는 메이지 유신 (1868-1912) 초기와 다이쇼 시대 (1912-1926) 초기를 배경으로 하며, 이 시대의 일본 관습을 볼 수 있는 하나의 작품이다.
두 인물 간의 대화에서 나오는 달걀과 아사히는 만담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두 남성은 아가씨에게 반숙을 가져다 달라고 요청했다. 아가씨는 반숙이 무엇인지 잘 몰랐지만 끄덕였다. 전달받은 게이의 달걀은 날달걀이었고 료쿠는 완숙을 갖고 있었다.
도대체 이게 무엇이냐며 황당한 기색이었다. 아가씨는 완숙과 날달걀이 반숙 아니냐며 '반(半)'으로 이해했던 것이었다.
료쿠가 아가씨에게 맥주를 요청했다. 아가씨는 아쉽게도 맥주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 아사히는 있냐고 물어봤고, 있다는 대답에 두 남성은 웃는다. 맥주는 없지만 아사히는 있다는 이야기가 웃음을 자아냈다. 예상치 못한 소재로 관객들에게 일본 만담의 재미를 선사해 줬다.
그 시대 인물의 특성을 섬세하게 나타냈다. 특히 도요사부가 말했던 대사를 보면 이때의 일본을 잘 반영했다. 도요사부는 돈에 묶여서는 게 싫다는 이유로 일을 하지 않는다. 상황을 잘 아는 친구도 30대에 일을 하지 않는 그를 딱하게 바라본다.
도요사부가 쉬고 있는 동안, 아가씨는 그동안의 숙박비를 요구하자 그는 당황했다. 처음에는 돈 이야기를 꺼내지 않다가 왜 인제 와서 큰돈을 요구하는지 알 수 없다는 식으로 말한다.
도요사부가 감기에 걸렸을 때도, 진료를 보러 온 의사도 약을 구매하려면 큰돈을 요구했다. 그는 고민했지만, 자기 몸 상태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돈을 지급했다. 돈을 받은 의사는 일부를 아가씨에게 전달했다. 겉으로는 손님인 그를 걱정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자신의 이익을 얻으려고 했던 모순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장면들은 근대화 이후 일본의 모습을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메이지 유신 시절 일본은 모든 걸 서구식으로 바꾸려고 시도했다. 좋다는 서구 문물이 있다고 하면 마구잡이로 받아들이는 시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나쓰메 소세키는 노력했다.
사람들은 서구의 자본주의를 지향하며 '돈'이 최고라고 말하고 다닌다. 이처럼 나쓰메 소세키의 심정은 도요사부와 같았던 것이 아니었을까. 소세키는 자본주의를 지향하는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했던 바를 담지 않았나 생각한다. 돈을 우선시하던 사람들에게 '우정'을 다시 일깨워주고 싶어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연극을 보며 소세키의 심정과 그 당시의 상황을 잘 나타냈다고 느꼈다. 그 시절 일본에 있는 듯한 료칸의 연출과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는 돋보였다.
두 청년의 아름다운 우정을 나타낸 이야기이다. 아소산에 오르게 된 게이와 료쿠. 산을 오를수록 장애물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들은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며 끝없이 나아간다. 올라오기 힘든 게이를 위해 자기 허리끈으로 줄을 만든 료쿠. 그의 행동이 인상 깊었다. 고난 속에서도 잃지 않는 끈끈한 '우정'이 빛났다.
오래된 소설 속 이야기이지만, 현재 우리와 같아 보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정과 사랑과 잃어가는 우리의 모습이 드러나 있다.
배우들의 뛰어난 대사 전달력은 관객들에게 깊은 의미를 주었다. 각 인물이 지니고 있던 특성을 주목하며 우리는 무엇을 지향하며 살아야 할지. 이 두 개 점을 상기시켜줬다.
[이지은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 목록
댓글1-
없음
- 2023.02.14 22:59:27
- 답글
- 신고
-
- 글만 보고도 우정이 무멋일지 질문하게 됩니다.
- 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