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에멧 코헨 트리오의 네버랜드 [공연]

나다움으로 가득한 공연
글 입력 2023.02.13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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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로 된 무대 위 피아노 한 대와 베이스, 드럼이 삼각형을 그리듯 놓여있다. 영화 ‘그린북’의 한 장면이 스치듯 지나갔다. 조명이 어두워지고 한참 뒤, 연주자들이 걸어 나왔다. 캐주얼한 복장에 개구진 표정. 스타일은 전부 제각각이지만, 표정은 같다. 그들은 반가움 가득한 밝은 미소로 자리에 앉았다. 에멧 코헨은 사자 갈퀴 같은 풍성한 곱슬머리를 치켜올린 스타일이 잘 어울렸다. 드러머 카일 풀과 베이시스트 필립 노리스도 설레는 표정으로 관객석을 향해 인사했다. 이들은 에멧 코헨 트리오다.


90년 생인 피아니스트 에멧 코헨, 93년 생 드러머 카일 풀, 97년생 베이시스트 필립 노리스. 90년 이후에 태어난 이들은 재즈의 영라이언, 라이징스타로 불리는 재즈의 신예다. 에멧 코헨 트리오의 공연은 첫 내한으로, 2월 5일 일요일 용산아트홀 대극장 미르에서 열렸다. 공연은 총 100분 정도. 1부에서는 에멧 코헨 트리오가 연주하는 음반 Future Stride와 2022년 음반 Uptown in Orbit의 수록곡을 비롯한 재즈 스탠더드 공연을, 2부에서는 즉흥으로 맞춘 국내 아티스트와의 협연으로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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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를 좋아한다. 재즈의 음악 사조와 하위 장르까지 꿰고 있는 애호가는 아니지만, 재즈는 내가 두 번째로 많이 듣는 장르다. 분위기에 취하는 딥하고 무거운 음악이 있는 반면 우울한 기분을 맑은 기분으로 바꿔주는 밝은 곡도 있다. 에멧 코헨 트리오의 연주곡은 후자에 가까웠다. 춤추고 싶게 만드는 박자와 여유로운 멜로디는 화창한 노천카페 테라스를 연상케 했다.


공연에서 마주한 재즈의 메커니즘은 경이로웠다. 악보에 맞추어 연주하는 클래식과는 다르게 매 순간이 즉흥처럼 느껴졌다. 피아노가 연주를 시작하면 그 위에 베이스, 드럼이 올라간다. 세 세션은 눈 깜짝할 새 합쳐지고 각기 다른 곳에서 존재하다가 약속한 타이밍에 딱 마주쳤다. 마치 단체 줄넘기 경기를 보는 기분이라고 할까. 세 명의 연주자는 흘러가는 선율 안에서 원하는 순간에 들어갔다 나오는 것을 반복했다.


그래서인지 재즈 공연은 클래식처럼 모든 정신과 마음을 음악에 집중하며 감각을 곤두세우지 않아도 되었다. 노래를 듣다가 눈을 감고 쉬기도 하고, 흥겹게 몸을 흔들기도 하고, 경이로운 순간에는 감탄을 내뱉기도 했다. 나뿐 아니라 관객들도 추임새를 넣어가며 신나게 공연을 즐겼다.

 

클래식 공연에서는 작은 소음도 매우 방해가 되지만, 재즈 공연은 그렇지 않다. 사람들의 말소리, 추임새 등이 전혀 거슬리지 않고 공연의 한 부분처럼 느껴졌다. 재즈 애호가들은 무대와 공연, 아티스트와 자연스럽게 소통했다. 마치 악기에 말을 거는 것처럼 여러 감탄사로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그렇게 우리는 음악의 순간과 하나가 되었고 행복한 음악적 체험은 계속되었다. 얼굴에서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호응하고 소리치고 즐거워하다 보니 공연장은 긍정적인 에너지로 가득 찼다.


음악 공연의 가장 좋은 점은 음악의 진짜 모습을 느끼는 데 있다. 음원은 소리가 플랫하기에 음악의 본모습을 알기 어렵다. 공연에서는 음원 감상과는 다르게 안 들리던 것이 들리고 보인다. 드럼의 작은 소리와 베이스의 웅장하고 아름다운 선율은 화려한 피아노 멜로디만큼 섬세하게 귀를 어루만졌다.


베이시스트 카일의 솔로 부분에서는 베이스라는 악기의 진가를 크게 느낄 수 있었다. 깊고 웅장한 베이스 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았다. 베이스 선율은 순식간에 공간을 만들었다. 나는 엄청나게 큰 홀을 떠올렸다. 진갈색의 통나무를 깎아만든 원형 마룻바닥에 둥글게 구부러진 통유리창. 유리창 밖으로는 활엽수 무리가 보였다. 살짝 열린 유리 창 사이로 들어온 바람에 핑크색 실크 커튼이 천천히 휘날렸다. 베이스를 필두로 흘러나온 피아노와 드럼 연주는 바람에 맞춰 춤을 추는 커튼처럼 조화를 이루었다.


에멧과 카일의 쇼맨십은 어찌나 귀엽고 잔망스럽던지. 그들은 악기를 연주하면서 춤을 추고 있었다. 타이밍에 맞춰서 어깨를 내리고, 팔을 흔들고, 관객석을 쳐다보는 등 여유로운 제스처도 공연의 묘미였다. 에멧 코헨은 의자에서 엉덩이를 들썩이며 춤추듯 연주했다. 그는 놀이 기구 타듯 건반을 쳤다. 카일의 드럼 연주는 강약 조절이 예술이었다. 그의 여유롭고 그루브 한 연주는 몸을 계속 흔들게 만들었다.

 

아티스트들은 연주에서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드러냈다. 그들의 유쾌하고 발랄한 몸짓과 연주, 진지하게 몰두하는 모습이 정말 좋은 에너지를 줬다.

 

 

에멧코헨트리오 단체사진_(c)Gabriela Gabrielaa.JPG

 

 

2부에서는 색소포니스트 송하철 님과 이수정 님 피아니스트 강재훈 님이 순서대로 나왔다. 세 사람도 에멧 코헨 트리오와 함께 잼을 이어나갔고, 그들의 합주는 내가 꿈꾸는 세상과도 맞닿아 있었다.


그들의 즉흥 연주는 개인적인 연습 시간을 구경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합주는 매우 따뜻했다. 아티스트들은 애정 어린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곤 무대를 제대로 즐겼다. 에멧 코헨은 강재훈 피아니스트와 함께 앉아 아이처럼 피아노를 쳤다. 즉흥적으로 자리를 바꿔가며 연주하기도 했다.


무대 바닥에는 나뭇잎을 비춘 것 같은 그림자가 생겼다. 이런 조명의 변화가 무대 위 연주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즉흥으로 서로의 음악에 참여했다가 벗어나는 구조는 재즈의 매력을 그대로 보여주었고 그들은 각자의 파트에 쉽게 스며들었다. 그래서 이들의 무대는 놀이터 같았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존재하면서 조화를 만들었다. 아이들은 재밌는 것을 같이 하다가도 무리에서 잠깐 벗어나기도 하고, 다시 자연스럽게 들어오기도 한다. 그들도 그렇게 놀았다. 나다움으로 가득 찬 공연이었다.


에멧 코헨 트리오의 첫 내한 공연은 그들이 추구하는 재즈의 매력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나는 그들의 공연을 보고 들으며 오렌지색 태양을 떠올렸다. 재즈는 우리에게 인생의 밝은 면을 충분히 누리고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그렇기에 그들이 보여준 나다움은 나의 나다움을 다시 끔 상상하게 만들었다. 용기와 여유가 생기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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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는 인생이 그리 심각하지 않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에멧 코헨 트리오의 음악과 그들의 음악을 즐기는 관객과 함께한 시간이 너무나 행복하고 즐거웠다. 이렇게 즐거울 수 있는 인생을 더 즐기지 않는 것은 손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에멧 코헨 트리오가 연주한 세상은 동심과 즐거움으로 가득하다. 나는 그들의 네버랜드에서 용기와 여유를 얻었다. 우리는 크게 기뻐하고 작게 슬퍼할 필요가 있다. 삶에는 재즈가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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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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