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더 글로리' 복수를 위한 삶 [드라마]

복수를 위한 삶
글 입력 2023.01.05 0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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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글로리


 

넷플릭스 시리즈 '더 글로리'가 화재다. 송혜교 주연에 김은숙 극본, 그리고 학교폭력에대한 복수를 주제로 한 복수극이다. 줄거리 자체는 여느 복수극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몇몇 부분에서 '더 글로리'만의 장점과 단점, 관전 포인트를 확인할 수 있었다.

 

더 글로리는 19세 이상 관람가다. 그 이유를 자극적인 학교폭력 묘사 장면에서 알 수 있었다. 주인공인 동은은 끔찍한 학교폭력을 당한다. 그중에서도 온몸을 고데기로 지지는 부분이 있다. 시각적인 묘사와 더불어 살타는 소리, 비명 소리가 더해지니 몇몇 장면은 보기 힘들 지경이었다. 이런 고문이나 마찬가지인 짓을 하는 가해자들의 행동에 '어떻게 저리 오롯이 악하지' 싶기도 하다.

 

'더 글로리'의 악역들은 모두 직선적이다. 폭력의 가해자들은 절대 악으로서 한결같이 악을 표상한다. 동은이 용서할 여지를 주지 않으며 복수의 대상으로서 완벽한 악으로 기능한다. 막힘 없는 사이다가 될지는 몰라도 전체적으로 반전의 여지는 없어 보인다.

 

한편 연출에서는 극의 몰입감을 끌어올려 주는 요소들이 돋보였다. 상징물이나 미장셴, 구도나 카메라 무빙과 같은 기술적 묘사에 공을 들였다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동은이 빛의 십자가를 향해 기어가다가 끌려오는 장면과 십자가를 등지고 복수를 선언하는 장면은 감탄을 자아냈다.

 

십자가가 나오는 장면도 그렇고 전체적으로 종교적인 심볼이 많이 등장한다. 가해자 중 한 명의 부모가 대형교회 목사인데 이 설정이 유독 많이 사용되는 듯한 느낌도 받았다. 종교적인 상징물이나 배경음악을 통해 종교적 분위기를 연출했고, 동시에 기독교의 이중적인 모습을 직간접적으로 드러내는 부분이 많았다. 일관적인 연출 도구로서는 나쁘지 않았지만, 개연성이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가장 큰 가해자는 따로 있는데 그 가해자의 부모나 배경에 관한 설명이나 비판은 없었다. 종교가 등장하는 부분은 종교 비판과 연출 도구로서 혼합된듯한 느낌이었다.

 

 

 

좋은 복수, 나쁜 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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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드라마를 보고 복수에 대한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는 복수나 용서에 대한 나름의 철학이 있다. 일반적으로 원한은 또 다른 원한을 나으며 자기 자신을 위해 용서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요즘 트렌드는 정반대다.


내가 당한 것은 더 크게 돌려줘야 하며 고구마에는 사이다가, 세상 물정 모르는 무뢰배에게는 인생은 실전임을 알려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트렌드는 명백히 권선징악과는 다르다. 과거 중세 시대에는 사형이 주된 볼거리 중 하나였다고 하지만 단두대가 선이고 사형수가 악이여서 열광한 건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나도 이러한 트렌드에 어느 정도 동의를 하는 편이다. 니체의 도덕의 계보학을 읽고 용서, 자애, 근면, 금욕에 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됐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흔히 좋다고 일컬어지는 가치들이 무엇을 위해 좋은 것이 된 건지, '자신을 위해서'라고 주장하는 많은 것들이 사실 나를 위한 게 아닐수도 있다는 점을 알기 때문이다.


다만 '더 글로리'를 보면서도 동은의 복수가 전혀 통쾌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드라마는 전체적으로 통쾌한 복수를 보여주려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주인공에 대한 안타까움만 느껴졌다. 주인공인 동은은 군자복수십년불만(君子復讐 十年不晩)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20년에 걸쳐 복수를 준비한다. 오직 복수심을 동기로 살아온 것이다. 하지만 드라마에서는 복수를 준비한 세월도, 복수를 끝낸 미래도 보여주지 않고 오직 복수를 실행하는 부분만을 보여준다.

 

복수하는 순간만을 본다면 통쾌할 수도 있다. 하지만 동은이 복수에 대한 절대적인 열망을 보이는 장면마다 복수를 준비한 지난 20년과 복수가 끝난 후 20년을 생각하게 된다. 내 영혼을 부순 대가를 치르게하는데 또 내 인생의 40년을 바쳐야 한다니. 형벌은 국가에서 내리고 신벌은 하늘에서 내려야 마땅하다. 그런데 피해자가 직접 나서서 또다시 인생을 대가를 치르며 복수하는 것을 보니 동은의 입장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불행밖에 없다.

 

동은이 이해가 안되는건 아니다. 나도 잠자리에 누우면 고작 십몇 년 전 뺨 몇 대를 맞은 일이 아직도 생각난다. 고작 이 정도로 속이 뒤틀리는데 세상에 있을 불합리들을 생각하다 보면 복수는 복수를 낳는다는 말이나 너 자신을 위해 용서하라는 말은 자연스럽게 불신하게 된다.

 

동은에게 복수를 하지 말라고는 못해도 자신의 삶을 희생하는 방식의 복수를 고집할 필요가 있는지 묻고 싶다. 자칭 복수의 고수로서 좋은 복수 나쁜 복수가 따로 있다. 동은은 시청자에게 사이다를 선사하기 위해 나쁜 복수를 하지만 복수를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면 좋은 복수가 무엇일지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것이다.

 

 

[김윤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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