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서늘한 문장들 - 레이디스 [도서]

글 입력 2022.12.14 06:11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크기변환]레이디스_프레야.jpg

 


‘서스펜스의 대가’라 소개되어 있기는 하나, 독자 개인의 풍부한 상상력을 요구하는 '책'이라는 매체인 만큼 얼마나 그 스릴이 느껴질지는 의문이었다. 그리고 나는 활자로도 긴장과 공포를 느낄 수 있다는 점을 얼마 읽지 않아 깨달았다.


처음 접한 작가의 작품이었고, 소개를 보아도 영화 「캐롤」의 원작자라는 점만 눈에 띄었을 뿐이다. 수상 경력이 많은 만큼 약간의 기대로 읽기 시작한 《레이디스》는 예상보다 훨씬 참신했다. 인물의 행위와 행동을 객관적이고 세밀하게 표현함으로써 독자의 상상을 구체적으로 돕는 것에 더해 간단하고 직관적인 심리 묘사로 기묘함과 오싹함을 연출한다.


강박과 통제에 대한 집착, 자아실현의 실패로 인한 질투, 결핍, 관음, 집단 감정, 피해의식 등 일반적으로 외면되고 도외시되기 태반인 증상과 현상을 무미건조하게 풀어냄으로써 묘하게 소름 돋는 서사를 전개한다. 인간에 대한 관찰력이 집착에 가까운 수준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놀라운 점은 인물 설정이 성인으로 한정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공을 갖고 노는 어린아이부터 도시를 벗어나려는 청년층의 남성, 사회의 규칙에 깔려 자아를 잃기 직전인 중년의 여성까지 스펙트럼이 넓다. 특히 변화가 낯설고 인정에 대한 욕구가 넘치는 아이의 심리를 표현한 <공 튕기기 세계 챔피언>은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작품이다.


이외에 <최고로 멋진 아침>, <영웅>은 인상적인 작품으로 많이 꼽히는 편이며, 이에 더해 <모빌 항구에 배들이 들어오면>, <애프턴 부인, 그대의 푸르른 산비탈에 둘러싸여>, <달팽이 연구자>가 나의 취향에 맞는 작품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크기변환]레이디스_고럼.jpg


 

진취적임과 동시에 엄격하고 폐쇄적으로 살아간 그녀의 삶을 유추해 보면 어두운 욕망이 가득한 저항과 동시에 지극히 안전하고 순진한 방식으로 표출되는 탐닉과 이성이 연상된다.

 

냉소적이면서도 무언가에 항상 잠식되어 있는 듯한 삶. 인간의 내면을 날카롭게 파고드는 작품들. 공식적으로는 성적 지향성이 존중되지 않았던 시대가 그녀를 베스트셀러 작가로 만든 듯도 하여 다소 안타깝게 느껴지는 측면도 있다.

 

[테일코트를 입은 남자들과 허리를 조이는 드레스를 입은 여자들로 가득하던 시절, 칼 공장에서 내구성 있고 근사한 칼들을 만들어 강을 따라 운송하던 시절을 상상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물론 프레야와 함께 사는 백일몽 속에서 사람들의 운명을 좌우하는 일은, 굳이 분발해서 살기를 꺼리는 애런에게 퍽 만족감을 주었다. 양지바른 언덕마루에서 안온함이 그를 포근하게 감쌌다.] - 77쪽, <최고로 멋진 아침>, 《레이디스》 中 

  

 [그녀의 다른 옷들과 비교하면 지나기체 고급이었고, 지나치게 새것이었고 아무튼 다 지나쳐서 그녀 것 같지가 않았다. 미지의 북부에 입고 갈 갑옷으로 쓰라고, 모든 낯선 타인에게 그녀와 가족의 품격을 주장하라고 준 선물이었다.] - 130쪽, <공 튕기기 세계 챔피언>, 위와 동일

  

[욕망, 선망, 애틋한 그리움, 질투와 대리 쾌감이 뒤섞여 이루어진 그 눈길이 한순간 베일을 벗었다가 다시 베일 속에 가려졌다. 그 눈길을 보고 그녀는 즉시 반사작용처럼 자부심을 느끼며 랜스의 손을 더 꼭 잡았다. 랜스도 보았을까?] - 168쪽, <돌고 도는 세상의 고요한 지점>, 위와 동일

 

직접적이고 숨김없는 내면 묘사로 갑작스럽게 불쾌감을 선사하기도 하는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작품들 그 자체는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겠지만, 그가 만들어내는 불안감과 긴박감을 즐기지 못할 사람은 없다고 확신한다.

 

신선한 분위기의 소설을 접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이유 모를 초조감에 괜히 빠르게 읽게 되는 이 불온한 소설집을 추천하고 싶다.

 

명백한 상황을 두고 기이하게 생각하고 움직이는 인물들의 이야기.

 

 

[이주연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3.03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