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스물여섯, 신입사원이 되었습니다 (1)

글 입력 2022.12.11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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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생’에 치이다보면 ‘인생’은 뒷전이 되곤 한다


 

12월, 어느덧 연말이다.

 

돌이켜보니 너무나도 정신 없는 한 해를 보냈다. 남들도 이만큼 정신없이 보내는데 나 혼자 오버하는 건가 싶지만, 내가 그렇게 느낀다는 데 어쩔까. 미친 듯이 힘들다 겨우 숨통이 트이더니, 또다시 엄청난 압박감에 시달리다 해소되었으며, 최근은 한 번 더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기도 했다.

 

이른바 ‘현생’에 치이다보면 진짜 내 ‘인생’은 뒷전이 되곤 한다. 첫 취업 준비에 힘겹던 스물다섯 상반기가 그랬고, 첫 취업에 휩쓸렸던 스물여섯 하반기가 그랬다. 제법 괜찮았던 스물다섯의 연말과 스물여섯의 연초를 보내며 지금과 같은 마음만 유지하자고 다짐했는데, 모든 처음이 그렇듯 첫 취업의 풍파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래서 쓰기로 했다. 반오십을 몇 달 남겨두지 않은 지금, 기억이 휘발되기 전에 3개월간의 생각을 정리해보기로.
 

 

작년 이맘때, 호기롭게 인턴 일지를 시작하며 위의 문장을 썼던 것을 발견했다. 지금 이 글이 스포인 것처럼, 안타깝게도 기억은 결국 휘발되었다. 이제라도 마무리해볼까 싶어 옛글을 열람해도 그 시절의 일화, 기억, 대화, 감정들마저 하나도 와닿지 않는데, 소설을 쓸 순 없지 않은가.

 

애매하게 지어낼 바에야 아예 끝내버리는 게 나을 거라는 결론이 핑계는 아니길 빈다. 사실 과거에 매달리기에는 현재의 상황이 너무 강렬하다. 급변하는 사회와 트렌드에 맞춰 회사는 존폐의 기로에 서 있고,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신입사원들마저 파도에 휩쓸렸으며, 그 현상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현생이 완벽한 안정화가 되지 않은 지금, 이번 글은 과연 끝맺음을 할 수 있을지 솔직히 자신은 없다. 하지만 뭐라도 쓰고 싶어서 노트북을 켰지만 하얀 화면만 보다 결국 굴러가지 않는 맷돌에 자괴감을 느낀 게 어언 몇 달. 그럴 바에야 노트북을 바꿨다는 핑계로, 더불어 미처 생각지 못했던 활동 유예가 마침 끝났다는 핑계를 삼아본다.

 

 

 

반복되는 모순을 마주하는 스물여섯


  

“몇 살이에요?”

 

취업한 이후,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이다.

 

이름이야 이름표에, 사원증에, 혹은 회사 인트라넷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알 수 있으니 첫 만남에서는 자연스레 나이를 묻게 된다. 동기들끼리의 연수에서는 호칭을 정하기 위해서였고, 발령 이후에는 팀원분들의 궁금증이었으며, 그 외 몇몇 자리에서는 말주변이 없는 내게 별달리 할 말이 없어서였을 것이다.

   

 
와, 좋겠다. 부럽다. 엄청 빨리 취업했네요?
 

 

‘스물여섯’이라고 대답한 이후에는 늘 위와 같은 반응이 돌아온다. 동갑내기 여자 동기만 셋이고, 나보다 어린 동기분도 계신데 ‘빠르다’라는 말에 고개를 갸웃하지만, 다들 그렇다고 하니까 적당히 웃으며 분위기를 맞춘다.


해가 바뀌고 늘어나는 나이를 인지하기 시작한 건 스물셋부터였던 것 같다. 당시는 휴학을 앞둔 해였으니, 지지리 할 일이 없어서였을 것이다. 그 해 초 나는 이런 문장을 썼었다, ‘스물셋, 참 애매한 나이’라고. 2년 후 스물다섯, 인턴 면접을 보던 날 면접관이셨던 팀장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면접을 볼 때가 아니라 하늘을 봐야 할 나이인데......’라고.

 

그렇다면 스물여섯은 어떤 나이였을까.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은 말한다. 스물여섯? 아직 한창 놀 때네~. 지금 놀아요, 제발 놀아! 나중에 서른 되면 이때 더 못 논 걸 후회해요. 내가 그랬어. 여행도 가고, 사람도 많이 만나보면서 좋은 사람 보는 눈도 지금 키워봐요, 라고.

 

하지만 동시에 친구들은 –그리고 나도- 말한다. 이번 주에? 미안, 나 요즘 너무 바빠. 다음에 만나서 놀자. 이날 내가 네 동네로 갈까? 미안, 그때는 시간이 안 될 것 같아. 이사 갈 곳은 정했어? 대출을 받아야 하는데, 금리가 너무 올라서 걱정이네. 먹고살기 왜 이렇게 힘드냐?, 라고.

 

반복되는 모순을 마주하는 스물여섯. 밖에서는 뻔뻔하게도 아기 취급을 받지만, 왠지 성숙해야만 할 것 같은 이십대 후반을 앞두고 한숨을 내쉰다. 경제적 독립을 꿈꿔도 모아둔 돈이 부족함에 자괴감을 느끼고, 내일을 생각하지 않고 놀고 싶다가도 갈수록 상승하는 물가에 괴로워하며 허리띠를 꽉 조여 맨다.

 

사실 여전히 정답은 모른다. 어쩌면, 아니 분명히 정답은 없을 것이다. 지금 나의 선택이 늘 정답은 아니겠지만, 어차피 정답은 없으니 그렇다고 믿을 뿐이다.

 

그러니 적당히 놀고, 적당히 일하며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려 노력하는 연말을 보내고 있다. 본격적인 추위가 찾아온 2022년의 겨울, 못다 한 이야기를 조금만 더 풀어낼 예정이다. 신입사원의 첫해는 딱 이 정도로 마무리하면 될 것 같다.

 

 

[주혜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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