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회에 첫 발걸음을 내딛는 청년의 방황과 고독 [영화]

영화 <졸업(The Graduate)>
글 입력 2022.12.09 21:06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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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주의

아래 글에는 영화의 내용에 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마이크 니콜스 감독의 영화 <졸업(The Graduate)>. 과제 차원에서 가볍게 감상하려던 영화였지만, 1960년대에 나왔음에도 시대를 아우르는 세련됨과 잔잔하면서도 묵직하게 다가오는 메시지가 인상적이었던 작품이다.

 

피상적으로만 보았을 때는 친구의 엄마와 불륜 행위를 하면서도 결국 친구와 함께 결혼하는 파격적인 내용을 가지고 있지만, 그 안에 주인공의 고독과 방황이 마냥 멀게만 느껴지지는 않을 것이다.

 

 

 

1. 숨 막히는 고독과 적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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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족관을 배경으로 삼아 부모의 말을 듣고 있는 주인공 벤자민의 모습. 그 어떤 다른 소음도 없이 오직 수족관의 물이 바글거리는 소리와 부모의 말소리만 들려오는 숨 막히는 장면이다.

 

마치 수족관에 갇혀 있는 또 다른 물고기처럼 보이는 벤자민. 복잡미묘한 그의 표정과 함께 혼란의 감정이 여실히 느껴지는 대사가 등장한다.

 

 

"갑자기 왜 그래?"

"그냥 좀..."

"걱정되니?"

"네."

"뭐가?"

"제 미래가요."

"미래가 왜?"

"모르겠어요. 미래에는 좀 더..."

"좀 더 뭐?"

"달랐으면 좋겠어요."

 

 

부모의 말만 착실히 들으며 모범생으로 살아와 그대로 졸업한 벤자민. 영화는 벤자민이 대학을 갓 졸업한 시점을 다루고 있다. 말 그대로 사회에 냉정하게 내던져지는 시점.

 

여전히 부모는 벤자민에게 기대하는 바가 있지만 벤자민은 더 이상 수족관의 물고기처럼 살고 싶지는 않은 듯하다. 하지만 물고기가 어떻게 수족관을 탈출하는가?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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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에도 물을 메타포로 하는 장면이 다수 등장하는데, 대표적인 공간이 수영장이다.

 

또 다른 막혀있는 공간. 그 수영장에서 잠수하는 벤자민의 모습을 1인칭 시점으로 연출하며 들리는 것은 오직 물의 먹먹한 소리뿐이다. 그 외에 물 바깥의 사람들 소음은 잘 들리지 않는다. 여전히 갇혀 있지만 더 이상 부모와 다른 어른들의 조언은 듣고 싶지 않아 하는 벤자민의 상황을 잘 드러낸다.


영화는 별다른 요란한 소음 없이 내용을 전개한다. 중간에 삽입되는 Simon & Garfunkel의 OST 또한 어쿠스틱하기 때문에 영화 내내 잔잔하면서도 숨이 막힐 것 같은 고요함을 느낄 수 있다.

 

오히려 요란하고 난잡한 방황보다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조차 잡지 못하고 어른들은 그런 자신을 이해하지 못해 혼자만 덩그러니 남겨지는 듯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2. 방황의 과정과 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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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하는 벤자민 앞에 로빈슨 부인이 등장한다. 또래의 딸을 두고 있지만, 자신을 노골적으로 유혹하는 로빈슨 부인에게 벤자민은 이끌리고 만다. 그 와중에도 익숙하게 벤자민을 침대로 이끄는 로빈슨 부인의 노련함과 호텔 방을 잡는 것조차 어색해하는 벤자민의 어리숙함이 느껴진다.


물론 벤자민은 몇 차례 로빈슨 부인을 거절했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 채 방황하는 벤자민에게 로빈슨 부인은 선악과와 같은 존재였다. 분명 금단의 존재이지만, 그렇기에 벤자민에게는 더욱 끌리는 존재. 마치 반항하는 사춘기 소년처럼, 벤자민은 금기의 영역에 과감히 뛰어든다. 하지만 육체적 관계에서 남는 것은 허무함뿐이었다.


그렇게 또다시 방황하는 벤자민 앞에 이번에는 로빈슨 부인의 딸, 일레인이 등장한다. 부모 간의 주선으로 만난 사이였고, 여전히 로빈슨 부인을 만나고 있었던 상태였지만, 또래인데다가 생기 넘치는 일레인에게 호감을 느끼는 벤자민.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벤자민이 좇는 것은 또 다른 금기였다. 로빈슨 부인은 벤자민에게 일레인과 어울리지 말라고 하며, 심지어 일레인에게는 약혼자가 생기기까지 하지만, 벤자민은 계속 일레인을 쫓아다녔고 일레인 또한 그런 벤자민을 거부하지 못한다. 두 사람 모두 방황하고 현실에 저항하는 청년이다.


결국 일레인과 약혼자의 결혼식장에 벤자민이 등장하였고, 일레인은 부모와 신랑의 손길을 뿌리치고 벤자민에게 달려간다. 그렇게 둘은 사랑의 도피를 하며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버스를 탄다. 그 짜릿한 일탈에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웃지만, 이내 표정이 점점 굳어지며 영화는 끝을 맺는다.


왜 두 사람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사라졌을까? 두 사람은 방황하고 있었지만, 부모의 품이라는 안정된 공간 안에 있었다. 그러나 이제 두 사람은 결국 수족관을 빠져나온 물고기가 되었고, 그들의 미래는 미지의 영역이나 다름없었다.


사회초년생에게는 모든 것이 미지의 존재인 것만 같다. 그리고 너무나도 많은 갈래의 길이 주어진다. 그 앞에는 무엇이 있는지도 모른 채. 그렇게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지 끝없이 고민하고, 방황한다. 그래서인지 금기라도 좇아가려고 하는 벤자민과 일레인의 모습이 오히려 공감이 갔다.

 

 

 

3. 그럼에도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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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자민과 일레인의 결말이 무조건 부정적으로 느껴지는 것만은 아니다. 앞으로의 홀로서기가 더욱 고단해질 수는 있지만, 분명 둘은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함께 올바른 길을 찾아 나아갈 것이다. 그것이 성장이다.


방황은 어쩌면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청년들이 안고 가야 할 과제이면서도, 인간이기에 가질 수 있는 미덕일지도 모른다. 심지어 로빈슨 부인처럼 사회에 발을 내디딘 지 한참이 지난 어른이어도 방황하는 때도 많을 것이다.


어른들은 유독 사회초년생들에게 많은 관심을 가진다. 우리는 ‘뭐 하고 살 거니?’라는 물음을 끝없이 받는다. 나는 여전히 벤자민처럼 그 물음에 대답하기가 힘들다.

 

하지만 이리저리 부딪혀 보고 수족관 밖으로도 빠져나와 보며 그렇게 돌아다니다 보면, 언젠가는 조금이라도 더 노련하게 삶을 살아가는 방법과 미래를 향한 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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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성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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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  
  • 윤지원
    • 제가 처음으로 작성했던 아트인사이트 글이 졸업에 관한 것이었는데, 정말 반갑습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작품에 대한 정성 가득한 글 잘 읽었습니다.
    • 0 0
    • 댓글 닫기댓글 (1)
  •  
  • 금옥자
    • 2022.12.10 12:5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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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고
    • 이서은내 나이65.그 시절 첫사랑이. 생각납니다. 지원양도. 흥미로웠나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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