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도화지에 사랑을 적어 보내는 스트레이 키즈의 ‘CASE 143' [음악]
-
아이돌 음악이 ‘그들만의 세상’이라고 여겨지던 적이 있다. 모든 사람들이 따라 부를 수 있었던 후크 송 전성기를 지나 어려운 가사가 늘어났고, 곡을 구성하는 노트에 많은 전자음이 쌓이기 시작하면서 아이돌 음악과의 거리는 서서히 멀어졌다. 음악 방송 순위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노래조차도 마음에 닿지 못하게 되자 순위는 팬들의 사랑 지표인 것이지 대중성의 지표라고 여길 수 없게 되었다.
아이돌의 난제는 대중성이라 생각한다. 이전과 다르게 그룹 자체의 세계관을 가진 아이돌이 늘어나고 매니악한 노래를 타이틀곡으로 발표하는 경우가 많아지자 마이너 팬들은 모으기 쉽지만 다양하고 넓은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대중성을 잡기는 쉽지 않아졌다.
대중성을 잡기 위해 그룹이 가진 음악적 방향을 깨는 경우도 종종 나타난다. 3세대 아이돌인 ‘블락비(Block B)'는 대한민국 최초 힙합 아이돌 그룹으로 등장하며 기존 아이돌과는 전혀 다른 자유분방한 분위기 곡들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지만, 이내 대중성과 타협한 곡들을 발매하며 음원 차트 상위권 자리를 굳건히 지켜냈다.
아티스트의 생명이기도 한 대중성을 잡기 위해 노선을 바꾸는 몇몇 그룹들 사이에서 스트레이 키즈는 자신들의 소견을 다 하며 음악 애호가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아이돌 음악과 멀어지던 중에 찾아온 스트레이 키즈의 ‘CASE 143'은 아이돌에게 대중성을 강요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이 맞는 가 고민하게 만든다. 우연히 찾아온 이 노래의 뮤직 비디오를 보자마자 생각한 것은 4분으로 간편히 즐길 수 있는 예술 작품이 나타났다는 사실이었다.
CASE 143
스트레이 키즈의 ‘CASE 143'은 2022년 10월 7일에 발매된 사랑 노래다. 사건이라는 뜻의 case와 I love you라는 뜻의 삐삐 번호 143을 결합하여 만든 노래 제목이다. 사랑이 시작되면서 처음 경험하게 되는 상황과 감정들을 비유한 뜻이다.
이전의 발매가 되었던 스트레이 키즈의 타이틀곡은 사랑과 먼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더 강력히 말하자면 스트레이 키즈의 노래는 대중성을 잡기 어려운 노래들이 대부분이다. 20대 초반이 주를 이루고 있는 멤버들의 나이와 어울리는 귀여운 곡이나 청량한 곡을 내세우면 대중의 마음을 얻기 쉬울 것이라는 의견이 있으나 스트레이 키즈는 자신들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여전히 ‘마라맛 음악’이라고 불리는 하드(hard)하고 매니악한 컨셉의 노래를 가지고 등장했다.
특히 음악을 요리하는 셰프 컨셉으로 “네, 손님.”이라는 가사를 가진 神메뉴와 “머리 아프다”라는 가사와 그에 맞는 안무가 인상적인 부작용은 아이돌 좋아하는 팬들 사이의 이슈가 되었다. 아이돌 팬들 사이에서도 놀라움을 안겨주는 직관적인 가사였기 때문이다.
직관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비판하고 타인은 신경을 쓰지 않고 자신의 멋대로 삶을 나아가겠다는 포부를 가지던 스트레이 키즈가 타이틀곡으로 사랑 노래를 들고 온 것은 가히 충격이었다. 그들이 풀어내는 사랑 노래의 궁금증은 뮤직 비디오를 통해 눈과 귀로 즐기며 해소할 수 있었다.
음을 차지하는 가사에서 보여주는 솔직함
무모하게 도전해 오그라드는 표현
머릿속이 띵하고 무감정은 손절
Moving, I'm on my way
...
Why do I keep getting attracted
네 모습만 떠올라
I cannot explain this emotion
143
I LOVE YOU
스트레이 키즈의 정체성을 파괴하지 않고 들려오는 'CASE 143'은 이색적인 노래다. 보통의 사랑 노래라 함은 수줍음과 설렘이 공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 노래는 사랑 앞에서도 무한한 자신감을 보인다. 평소 스트레이 키즈가 지니던 음악적 스타일을 부수지 않고 사랑 앞에서도 수줍음 없이 나아가고 있다.
‘네 모습만 떠올라’, ‘I love you', '143'처럼 감정을 설명할 수 없어 사랑한다고 말하는 가사는 평소 스트레이 키즈가 지니던 자신감 넘치는 스타일과 잘 어울린다. 오히려 마음을 숨기지 못하는 직설적인 표현이 귀엽게 느껴진다. 대개 사랑 노래는 사랑에 대한 수줍음과 설렘을 표현하려 사랑한다는 표현을 다른 말로 대체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세븐틴의 ’아낀다‘, 하이라이트의 ’불어온다‘, 아스트로의 ’전화해‘ 등 사랑의 대체어들은 직접적인 표현과 다른 설렘을 선사한다.
이처럼 사랑의 대체어들은 수줍음이 담긴 말들이라 심장을 간지럽게 만든다면 스트레이 키즈의 직접적인 사랑은 어리숙해 표현을 줄이는 방법을 모르는 이들이 하는 고백 같아 웃음이 나온다. 스무살에 여름에 맞이한 폭탄 같은 첫 사랑 같은 느낌이 들어 활기를 찾게 한다.
A B C D E F G I
Wanna send my code to you
8 letters is all it takes
And I'm gonna let you know oh
이 노래의 가사를 듣고 있으면 손길이 가볍게 닿은 문장이 없다는 것이 느껴진다. ‘A B C D E F G I’라는 가사는 두 문장과 이어진다. 원래 가사는 ‘A B C D E F G’, ‘I Wanna send my code to you’이었지만 I를 위 문단으로 옮기면 이후 이어지는 ‘8 letters'라는 가사와 어우러지도록 알파벳 여덟 글자가 되어 옮기게 되었다고 한다.
가사에서 말하는 ‘8 letters'는 ‘A B C D E F G I’를 뜻하기도 하지만, ‘I love you'에 담긴 여덟 글자의 뜻을 의미한다. 이 부분은 노래가 가진 표현법이 직설적이라 해서 표현이 쉬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한층 신경을 쓴 가사는 음미하는 맛이 있도록 만들며 노래를 듣는 이유와 재미를 생기도록 한다. 가사 속 의도를 찾는 여정은 스트레이 키즈가 만든 작품을 탐구하고 싶게 만들며 사랑하도록 만든다.
4분을 잠수하도록 만드는 비디오의 비주얼
스트레이 키즈의 노래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뮤직 비디오의 힘을 간과할 수 없다. 'CASE 143'의 뮤직 비디오는 2020년대를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뮤직 비디오라 가히 말할 수 있다.
2020년대로 들어서면서 바이러스 확산과 인터넷 발전이 심화되면서 모바일 콘텐츠 소비량은 더욱 증가되었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모바일 콘텐츠는 국내를 비롯하여 해외에 발판을 마련할 수 있는 중요한 아이템이었기 때문에 뮤직 비디오에 투자하는 예산도 더욱 증가하고 있다. 2010년대의 뮤직 비디오는 세트에 집중했다면, 가상 현실 콘텐츠의 대중화가 시행되고 있는 2020년의 뮤직 비디오는 CG(computer graphics) 기술이 흔하게 사용되고 있다. 기술의 발전으로 그래픽과 현실의 거리감을 보이지 않는 뮤직 비디오는 사람들이 영상이 선사하는 세계 속에 빠져들고 싶게 만든다.
‘CASE 143' 뮤직 비디오는 노래방 기기 속 나오는 옛날 뮤직 비디오처럼 한 편의 드라마 같은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발라드곡과 다르게 많은 악기와 전자음이 사용되고 튀는 음이 많다는 아이돌 댄스곡의 장점을 살려 곡의 포인트마다 전환이 되는 편집 표현은 노래를 듣는 재미를 살리도록 만든다. 많은 화면 전환은 보는 이를 어지럽게 만들 수 있지만, 필요한 구간에 이루어지는 화면 전환은 영상과 노래에 더욱 집중하도록 만든다.
©JYP Entertainment
또한, 평범하게 지나갈 수 있는 장면도 멤버들의 손짓에 CG를 넣으며 어떠한 장면도 지루하지 않게 보내겠다는 의도가 비춰졌다. 작은 표현들은 귀여움을 더하며 이 노래가 사랑 노래라는 것을 잊지 않도록 만든다.
©JYP Entertainment
이 뮤직 비디오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춤을 추고 있던 멤버가 화면에 튀어나와 영상 재생바를 뒤로 되돌리는 장면이었다. 같은 음을 가진 구간에 같은 세트에서 찍은 영상을 이어지도록 만들어 양립적인 표현을 하였다. 이전 뮤직 비디오에서 볼 수 없었던 화면을 튀어나오는 설정은 직설적인 노래와 함께 연속적으로 반복해서 사랑을 고백한다는 의미가 엿보인다.
이후 이어지는 화면을 깨고 나오는 장면에서 ‘Never letting go’라는 가사가 함께 나온다. 사랑을 절대 놓지 않기 위해 현실을 닿으려 갇힌 화면 속을 나오는 장면은 어떤 위험도 감내하겠다는 의지를 알 수 있는 처음부터 끝까지 숨김이 없이 완벽한 사랑 노래였다.
미로에 갇히지 말고 무모한 도전을 하자
©JYP Entertainment
오랜만에 맞이한 이 4분 예술 작품은 눈과 귀를 즐겁게 만들었다. 대중성이 없는 아이돌의 노래는 공감이 되지 않기 때문에 마음을 사로잡지 못 할 것이라 생각했었지만, 이 노래와 뮤직 비디오 한 편에 생각을 고치고 마음을 빼앗겨버렸다.
아이돌 음악에 편견이 있는 사람이라면 스트레이 키즈의 ‘CASE 143'을 추천한다. 편견에 갇힌 마음을 열어 더 넓은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만드는 발판이 될 것이다. 드라마도, 영화에도 투자할 시간이 마땅하지 않다면 4분으로 즐길 수 있는 이 예술 작품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을 추천한다.
[견유빈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