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궐리사, 새 잎사귀가 피어나다 - 정조, 화성궐리사를 세우다

공서린에서 정조, 현대로 이어지는 배움의 뜻
글 입력 2022.11.03 0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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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단.

 

은행나무 행에 마루 단. 공자가 은행나무 단에서 제자를 가르쳤다는 일화에서 유래된 말로 학문을 닦는 곳을 말한다.

 

과거에는 은행나무 아래에서 공부를 하면 대기만성 한다는 속설도 있었다고 한다. 그 말을 들으며 은행나무를 바라보니 과연 이유를 알겠다. 햇볕이 좋은 날 나무 그늘 아래에서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앉아 있으면 집중이 안 될 수 없다. 학습법의 효과를 깨우친 건 때마침 공자의 초상화가 모셔진 사당, 궐리사에서였다.

 

10월 29일, 오산시 궐리사를 알리기 위한 현장극 "정조, 화성궐리사를 세우다"가 올라왔다. 청소년의 적극적 참여를 유도한 이 극은 오산시가 주최하여 극단 정:지가 제작하였다.

 

궐리사의 야외에서 약 30분간 진행된 극은 실시간으로 첼로를 연주하며 완성도를 높였고, 완성도 있는 춤과 퍼포먼스는 관객의 집중을 끌어냈다.

 

무엇보다 정조가 공자의 사상을 이어받아 사당을 재건하고 궐리사라는 이름을 붙이는 과정을 청소년 맞춤형으로 풀어내었다. 중간중간 던져지는 질문에 아이들은 눈을 빛내며 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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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시작 전 풍력자동차 만들기, 가을향 테라피 주머니 만들기, 우드버닝 등의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하나의 작은 축제처럼 즐길 수 있었다. 또 공연 후에는 풍력자동차경주대회 ‘공자님만나로(路)’ 놀이를 진행하며 낯설 게 느껴질 수도 있는 문화유산에 친근감을 더한다.


 

1500년경, 공자의 후손 공서린은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화성에 강당을 짓는다. 면학을 독려하기 위해 은행나무를 심어 그 그늘에서 가르침을 베풀기도 하는 등 은행나무는 공서린의 후학 양성에 상징이 되었다. 하지만 공서린이 운명을 달리하며 은행나무 또한 생을 다하게 되는데.


그로부터 250년이 지나, 화성에 공서린의 강당이 있다는 걸 알게 된 정조는 공자의 사상을 잇기 위해, 백성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사당을 새로 건립한다. 은행나무 또한 정조의 뜻을 전달받고 기적적으로 소생하기에 이른다.


이후 궐리사는 화성의 중심으로 자리하게 되며 은행나무는 현재까지 오산시 궐리사의 대표 명물로 궐리사를 지키게 된다.

 


청소년 맞춤형 프로그램이 진행된 이후에는 성인 맞춤형 프로그램도 존재했다. “리더라면 정조처럼”의 저자 김준혁이 궐리사와 관련된 역사를 설명하며 궐리사의 문화적 중요성을 강조했다.

 

궐리란 정조가 직접 하사한 명칭으로 공자가 자랐던 마을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궐리사는 공자의 영정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다. 해마다 유림이 찾아와 제사를 지내는 이곳은 정조가 각별히 아낀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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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오산시와 화성시, 수원시는 하나의 지역이었다고 한다. 판서 이상의 벼슬을 치르지 않은 자는 수령으로 올 수 없도록 명령을 내릴 정도였다.

 

사도세자의 묘소인 이곳을 문예의 중심지, 유교의 중심지로 굳건히 세우며 노론의 영향력을 줄이는 한편 아버지의 위상을 높이고 임금의 권위를 세운 것이다.

 

홍문관, 규장각에서 보관하고 있던 공자의 초상화를 이곳 궐리사에 하사한 것도 같은 이유이다. 그뿐만 아니라 백성의 깨우침을 중시 여겼던 정조는 백성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하였다. 공서린이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지은 강당의 의미를 계승한 것이다.

 

공자의 무덤을 공림이라고 한다. 림이란 성인의 묘에만 붙는 명칭으로 중국 역사상 림이라는 용어는 단 두 명에게만 사용되었다. 공자와 관우가 그들이다. 무에는 관우, 문에는 공자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공자의 영향력은 대대적이었다. 그런 공자를 모시는 사당이니 자연 뜻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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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을 들은 후 궐리사를 다시 돌아보니 새롭다.

 

250년 만에 다시 새싹이 피었다는 은행나무는 높이를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높고 우람하다. 겉보기엔 별 다른 거 없는 한옥에 많은 뜻과 의미가 새겨져 있었다.

 

평소라면 적막했을 사당에 아이들의 시끌벅적한 웃음소리가 들린다. 강당이었던 시기의 궐리사가 이런 모습이지 않았을까. 바람을 맞으며 새로운 지식을 음악과 춤, 상세한 설명으로 쉽게 받아들이고 스스로 깨우치는 모습. 공서린과 정조의 뜻을 이어 나가기 위한 오산시의 노력이 돋보인다.

 

죽어가던 은행나무에서 새싹이 피어났듯이 잊힌 문화유산도 행사에 참가했던 학생들이 싹이 되어 피어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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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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