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었냐면

내가 가지고 싶었던 나의 모습
글 입력 2022.10.20 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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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기 싫은 일은 남도 하기 싫다.” - 반골기질이 있던 질풍노도의 시기, 엄마한테 들었던 말이다. 자기중심적인 사고로 나는 남들과 다르다는 중2병에 절여질 때였는데 저 말이 아직까지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걸 보니 마음의 울림과 깨달음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남들 다 좋아하는 일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던 때라 나름대로 긍정적으로 작용했는데, ‘남들은 싫어하지만 아무렇지도 않는 나’에 빠져서 귀찮은 일은 맡기도 했다. 그게 내가 만들고 싶은 나의 모습이었다. 그런 순간이 별로 없긴 했지만.

   

“받고 싶었던 것들을 해주면 돼” - 어릴 때 좋아한 만화책에 잠깐 지나가는 주변인물로 결핍이 있는 학생이 나왔다. 모두가 부정적인 방향으로 걱정하는, 문제 학생이었는데 아는 사람의 아기와 잘 놀아주는 모습을 본 어떤 어른이 '그렇게 네가 받고 싶었던 것들을 누군가에게 해주면 돼'라고 이야기한다.

 

그런 방식으로 결핍이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다는 것. 그렇다면 평범하게 내가 받고 싶은 것들을 남에게 해준다면 나에게 플러스가 되는 일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런 친구가 있어야 한다.” - 어느 연예인의 갑작스런 죽음에 동료 연예인이 보여준 우정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주변 어른들이 그걸 보면서 ‘저런 친구가 있어야 한다.’고 입을 모아 이야기했다.

 

‘저런 친구가 되어라’는 말은 없고, 저런 친구를 가져야하는 것처럼 말했다. 내가 저런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입술 끝까지 걸렸지만, 어린 나의 생각일까 봐 바로 삼켰다.

 

하지만 지금도 그런 친구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 그런 친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렇게 이타적인 사람이 될 수 있는 많은 순간을 겪었지만 그런 사람으로 자라나지 못했다.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서 외동이냐는 질문을 받았고, 오빠가 있다고 이야기하면 그럴 것 같다는 반응이 돌아왔다. 돌이켜보니 나는 친절한 사람이 되었지만 믿음직한 사람은 되지 못했다.

 

*

 

친절, 배려, 위로를 받은 날이면 배워뒀다. 이걸 나 혼자 독식하지 말고 주변에 나누면 총량이 늘어날 테고 내 주변 사람들이 또 나누면 위로받는 누군가가 생겨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익명으로 남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도 했다. 그렇게 하면 세상의 누군가가 조금이라도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기적 이타주의던가 이타적 이기주의였나, 아무튼 사람이 이타적인 건 결국 자신을 위한 행동이라는 맥락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생각했다. 나는 내가 행복하기 위해 남의 행복이 되기를 바랐던가,

   

 

남을 떠먹이는 일에

밤낮으로 바쁘기 전에

자신도 떠먹일 줄 아는 지혜와

용기를 지녀야 한다던 그대의 말을

처음으로 진지하게 기억했어

 

이해인, 어떤 후회 中

 

 

남을 떠먹이기 전에 나를 떠먹일 줄 알아야 한다는 시의 한 구절 역시 오랜 시간 맘에 품고 살아왔다. 나는 남을 떠먹일 줄도 모르고 나를 떠먹이는 것도 애매한 사람으로 자랐다. 포부는 누구보다 컸으나 현실은 평범하기 그지없었다. 포부를 품은 적 없는 것처럼, 한 번도 부푼 적 없는 풍선처럼 납작하다.

 

나는 나를 챙기면서 남도 챙길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남이 싫은 일도 개의치 않고, 내가 받고 싶은 걸 남에게 해주면서 내 몫까지 잘 취하는, 그런 거 내가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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