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동창회를 열었다 [사람]

졸업한 지 단 1년 만에
글 입력 2022.10.06 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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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격조했습니다. 잘 지내시나요?


우리가 학교 바깥에서 만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꾸준히 안부를 전하고, 시간을 잡고, 공간을 정하고… 같이 할 일도 정해야겠죠. 그렇게 노력해서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노력만으로 만나기 어려운 사람도 있습니다. 함께 보내지 않은 시간이 길어진 사람과는 더 이상 ‘주변 사람’이라고 부르기 애매한 관계가 됩니다. 그런 식으로 우리의 주변은 점점 좁아집니다.


이 파티는 사람들의 좁아진 주변을 다시 넓히기 위해 기획되었습니다. 여러분과 만나고 싶은 제가 시간, 장소, 구실을 정했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걸 동창 모임이라고 부른다던데요. 서두가 쓸데없이 길었지만, 목적은 단순합니다. 오랜만에 만나서 얼굴도 보고 술도 마시고 이야기도 나눠요.


***

 

동창회를 열었다. 졸업한 지 단 1년 만에. (사실 만으로는 1년도 되지 않았다.)


명명할 말이 필요해 동창회라고 불렀지만, 사실은 그냥 대학 친구들이 보고 싶어서 연 파티였다. 졸업생만 부를 생각이었다가, 장기 휴학을 한 친구와 대학원에 입학한 친구가 보고 싶어서 범위를 넓히고, 또 넓히다 보니 그냥 학과 출신이라면 누구나 오는 파티가 되었다.


설렘 반 걱정 반으로 맞이한 10월 1일 토요일, 30분여 만에 약속한 인원(약 40명)의 대부분이 도착했다. 비장하게 가방 안에 담아간 블루투스 마이크를 꺼내고, 친구들의 호응에 화답하며 건배사를 했다. 테이블을 돌며 근황을 나누고, 사진을 찍고, 잘 모르는 사람과는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열한 시쯤이면 적당히 파할 것이라 생각했던 파티는 의외로 밤늦게까지 이어져 열두 시에 2차로 자리를 옮기기까지 해야 했다. 헤어지기 전에는 다음에 또 보자는 말과 함께 포옹을 나눴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오니 새벽 세 시가 넘어 있었다.


소속 바깥에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어렵다. 학교나 회사 같은 공간은 알아서 시간과 장소, 구실을 내어주지만, 그 바깥에서는 모든 관계가 스스로 이루어진다. 일정 이상의 친밀도를 가진 상대와도 만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과도 어렵게 자리를 만들고 나면, ‘다음에는 누구 결혼식에서나 다 모이겠다’ 같은 이야기가 꼭 한 번은 나온다.


나는 목적이 없으면 선뜻 연락해서 안부를 전하는 성격은 아니다. 일상적인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시시콜콜 보고하는 것도 귀찮아하고. 하지만 그렇게 가만히 목적이 생길 때까지 기다려서는 어렵게 쌓은 소중한 인연이 다 흩어진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깨달았다. 내 세계를 좁히지 않고 인연을 묶어두기 위해서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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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샵을 켜서 휘리릭 만든 초대장을 돌리며, 오랜만에 많은 친구와 연락했다. 내 초대장의 목적은 단순히 파티를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오랫동안 연락하지 않은 사람에게 연락해볼 만한 구실이 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흔쾌히 오겠다고 한 친구들과는 얼굴을 봤고, 시간이 맞지 않아 힘들겠다고 하는 친구들과는 아주 오랜만에 이야기를 나누거나 다음을 기약했다. 그때가 아니었으면 언제 또 연락해볼 수 있었을까?


회비를 걷고, 명단을 쓰고, 예약하고, 진행을 보고, 틈틈이 영수증을 끊고. 그런 것들은 귀찮아도 별로 어렵지는 않았다. 대신 조금 귀찮기만 하면, 친구들은 자리를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이야기해주었다. 파티가 열리게 직접 와준 내가 더 고마운데도.


이번이 지나면 언제 다시 또 이렇게 만날 수 있을까. 친구들과 내가 함께 의식적인 노력을 계속해나간다면 다음은 언제든 오겠지. 꼭 거대한 동창회가 아니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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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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