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리엘은 모두의 것 [문화 전반]

글 입력 2022.10.01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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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는 <인어공주>의 실사화 영화 주인공으로 할리 베일리를 선택했다.

 

캐스팅 소식이 알려지기 무섭게 이 사실은 ‘논란’이 된다. 애니메이션 <인어공주>의 아리엘과 베일리의 외형이 닮지 않았기 때문이다. 베일리의 캐스팅에 반감을 품는 사람들은 입을 모아 외친다. ‘흑인이라는 사실이 아니라, ‘원작’과의 싱크로율이 문제라고.’


‘어차피 원작은 안데르센이 쓴 동화인데 무슨 상관이냐?’는 반박이 주를 이루지만, 사실 ‘어느 쪽이 원작이냐?’를 두고 하는 갑론을박은 의미가 없다. 여태 디즈니에서 내놓은 실사화 영화들은 꾸준히 애니메이션을 바탕으로 한다는 태도를 고수해왔다. <인어공주>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디즈니가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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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메이크와 싱크로율은 떨어질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웹소설이 웹툰화될 때, 웹툰이 드라마화될 때, 해외 드라마가 국내에서 리메이크될 때 등, ‘다시 제작된다’는 소식에 사람들이 가장 불안해하고 또 주목하는 것이 원작과의 싱크로율이다. 실제로 원래 알던 캐릭터와 환상적으로 딱 맞아떨어질 때 오는 즐거움은 무시하기 어렵다.

 

디즈니는 이미 <말레피센트>나 <크루엘라> 등에서 원작의 비주얼을 효과적으로 재현해 관객들을 만족시킨 바가 있다. 디즈니는 이미 원작과 유사하게 재현하는 법도, 그에 따르는 효과도 충분히 알고 있는 회사라는 것이다.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아름다운 백인 배우를 캐스팅하는 것은 디즈니에게는 너무나 쉬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디즈니가 흑인 배우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제 디즈니는 그저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회사가 아니다. 전 세계의 어린이들이 디즈니사의 애니메이션을 보고 자랐으며, 지금도 보고 자라고 있다. 디즈니 프린세스는 단순한 마스코트가 아니다. 디즈니 프린세스는 이제 고전이 되었다. 세계는 이제 하늘색 드레스를 입은 신데렐라와 빨간 머리카락의 아리엘을 모르던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

 

그리고 그 애니메이션을 보던 어린이들은 자라서 흑인 배우를 보고 ‘이건 나의 아리엘이 아니야’라고 말하는 어른이 되었다. 디즈니에서 상업을 위해 선택하는 것들이 어린이들에게는 가치관의 씨앗이 되는 것이다.

 

디즈니에서 이번 실사화를 통해 어린이들에게(어쩌면 어른들에게까지) 알려줄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다.


1. 인어공주도 흑인일 수 있다. (흰 피부와 붉은 머리는 디즈니로부터 ‘만들어진’ 인어공주다. ‘그’ 인어공주가 되지 못한다고 해서 좌절할 필요는 없다.)

2. 덴마크인이 반드시 백인일 필요는 없다. (덴마크 작품이기 때문에 백인 공주가 출연해야 한다는 것은 21세기 리메이크작에 내놓기에 너무 고루한 논리다.)

3. 육지와 바다가 같은 규칙을 공유할 필요는 없다. 유전에 대해서든, 국적에 대해서든, 신분에 대해서든.

4. 인어공주는 노래를 끝내주게 잘 부른다. (피부가 어떻든 간에. 사실 피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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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간에 거대 자본을 벌어들이는 콘텐츠가 아니라 오랫동안 향유되는 콘텐츠를 만들기를 원한다면, 현재에서 가능한 가장 미래지향적인 태도로 제작에 임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자사에서 만든 작품 앞에 ‘본 프로그램에는 특정 인물이나 문화에 대한 부정적 묘사 또는 부적절한 대우가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고정관념은 그 당시에도, 지금도 옳지 않다. 해당 콘텐츠를 제외하기보다는 사회에 미친 해로운 영향을 인식하고 그로부터 배우며 담론을 만들어갔으면 한다’*는 경고 문구를 붙여야 하는 시기가 너무 빨리 오기 때문에.

 

영원히 아리엘이 ‘나의 것’일 수는 없다. 어린이들이 새로운 아리엘을 가진다고 해서 나의 아리엘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디즈니가 ‘향수 마케팅’을 하는 주제에 ‘돈을 버는 제대로 된 방법’을 따라가지 않는다고 착각하고 욕할 필요도 없다. 이미 디즈니도 방법은 잘 알고 있으니까.

 

무엇보다도, 아리엘은 어떤 모습으로도 만들어질 수 있는 가상의 인물이지만, ‘흑인이라서’, ‘못생겨서’라는 말에 상처받는 사람은 현실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쓰는 악플은 멀리 있는 할리 베일리에게 닿기 전에 나의 이웃에게 닿는다. 정말 우리의 주변은 상처받지 않는 이웃으로만 구성되어 있는가?

 

동화는 오래된 것들을 답습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현실에 사는 어린이를 위해 쓰인 것이지. 새로운 <인어공주>가 어린이들에게 좋은 가치관의 씨앗을 심어주기를 희망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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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 플러스에서 고전 애니메이션을 스트리밍 할 때 표시되는 경고 문구

 

 

[김서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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