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당신도 모르게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면 - 위로의 미술관

글 입력 2022.09.17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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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예술가, 본인을 포함해 나를 아는 주변 사람들이 떠나간 먼 훗날까지도 이름이 불리는 비범한 사람들의 삶에는 지독한 고집스러움이 있다. 그것은 내가 쉬이 갖지 못하는 영역이고, 그럴 엄두조차 내기가 두렵다.

 

그들의 타고난 기질인지, 삶의 풍파들에 훈련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만, 나약한 나와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우람한 간극이 책 하나로 어떻게 좁혀질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사실 대단한 누군가의 삶에서 위로를 얻어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내가 이 책을 선택한 까닭은 첫째로 전시회에 갈 시간이 없었고, 둘째로 더 나은 사람이 될 거라는 책 소개에 홀렸던 탓이다. 또 결정적으로, 나는 지쳐 있었다. 큰 위로를 바라며 책을 선택하지는 않았다. 그저 나만 힘든 것이 아님을 증명받고 싶었고, 그 순간 눈앞에 찾아온 것이 이 책이었을 뿐이다.


프랑스 공인 문화해설사 진병관의 신작인 <위로의 미술관>은 모든 좌절을 경험했기에 되려 모두를 위로할 수 있었던 화가와 그들의 작품을 소개한다. 총 4개의 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각기 다른 고민과 어려움을 다루며 최대한 많은 이들의 슬픔을 어루만져 준다.

 

 

위로의미술관_표지1(띠지).jpg

 

 

1장은 ‘너무 늦었다고 생각되는 날의 그림들’로 특히 한국 사회에서도 가장 큰 속박 중 하나인 나이에 휘둘리지 않았던 예술가들을, 2장은 ‘유난히 애쓴 날의 그림들’에서는 결핍, 정신적, 육체적 고통 혹은 폭력의 시대 등을 극복하고자 했던 예술가들을 소개한다. 힐난과 무시 속에서도 새로움을 피워낸 예술가를 다룬 3장 ‘외로운 날의 그림들’을 거치면, 4장 ‘휴식이 필요한 날의 그림들’에서 쉼과 행복이라는 힐링을 만날 수 있다.


우리는 정말 운이 좋지 않은 이상 고난을 피할 수 없다. 누구에게나 조금씩 다른 시련과 절망이 찾아오고, 우리는 그것들을 겪어내다가 가장 큰 좌절인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렇게 보면 인생은 덧없고 허무하다 싶다. 이런 생각이 계속되다 보면 실의에 빠지고 우울감이 몰려온다.


아마 이 책 속의 예술가들도 분명 경험했을 상실감일 테다. 그들은 덧없고 약해빠진 인생을 저마다의 방식대로 그려냈고, 구원했다. 누군가는 꿈의 마지막을 그려내는 나이에 화가의 꿈을 갖게 된 모리스와 애나, 태초부터 약한 몸으로 태어나 여러 번의 사고와 정신적 상실을 겪고도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았던 프리다 칼로, 남성 화가들의 꽃으로 시작해 끝내 자신의 몸의 주인이 된 수잔 발라동 등 고집스럽게 자신을 찾고 탐구했던 여러 예술가들은 삶의 얇은 부분을 예술가의 자아로 채워냈다.

  

 

이 미술관을 나서는 순간,

우리는 더 나은 사람이 될 거에요.

 

 

책을 덮으며 나는 다시 한번 이 책의 슬로건을 떠올렸다. 처음 책을 읽기 전엔 그런 의문이 들었다.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마지막 장을 넘기며 생각한다. ‘그럴 필요가 없다.’


물론 이 짧은 텍스트만으로 그들의 삶과 생각을 모두 읽어낼 수는 없겠지만, 내가 책을 읽으며 느낀 감상은 그들은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저 자신의 눈앞에 닥친 시련과 고난을 저마다의 고집대로 부딪히고, 깨지고, 꺾어냈을 뿐이다. 그러한 노력이 지치고 어려운 순간들을 위대함으로 전복시켰고, 지금의 그들이 된 것이다.


나는 그들만큼 대단한 사람이 될 생각이 없다. 나는 그들처럼 세상을 이겨낼 고집스러움이 없고, 그러고 싶은 마음이 크지도 않다. 그저 슴슴하게 살아가는 것도 좋은 삶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무미건조한 삶에도 고난이 있고, 최근에는 꽤나 어려운 고초들을 겪으며 마음이 지쳤고, 내가 죽는 날까지 몇 번이나 이런 경험을 해야 할까 하는 생각에 삶이 피곤해지기도 했다.


그런 내게 이 책은 이야기한다. 그들의 고집스러움은 위대함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삶의 피로를 덜어내는 방식이었다고 말이다. 과정을 헤쳐나가는 순간들마저 나의 것이 된다면, 나의 동의 없이 태어나 그저 살아지다가 죽는 빌린 삶이 아닌 처음과 끝을 제외한 모든 순간을 나로 채울 도화지라고 생각한다면 지금의 피로함도 즐겨볼 수 있겠다. 이는 대단한 위인이 되기 위한 단계가 아니라 그저 나의 공허함을 채우는 방식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나는 기대하지 않았던 위로를 제법 받은 것 같다. 여전히 지치고 피곤하지만, 잠시 누워있다 벌떡 일어날 힘을 얻었다.

 

그렇게 나는 어쩌면 책 속의 예술가들처럼 그럴 생각 없이 더 나은 사람이 된 것 같다.


 

[오수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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