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담담한 모습 뒤 숨겨진 열정을 발견하다 - ‘겨울나그네’ 한재아 배우

글 입력 2024.01.19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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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나그네] 포스터 (제공-에이콤).jpg

 

 

영화, 드라마, 뮤지컬로 만들어진 최인호 작가의 소설 <겨울나그네>는 방황하는 청춘의 낭만적이면서도 비극적인 이야기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작중 의대생이었지만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고 처지가 완전히 바뀌는 민우는 <겨울나그네>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이야기가 진행되며 역동적인 변화를 겪는 민우와 달리 다혜는 언제나 그를 기다리는 정적인 인물로 여겨진다. 하지만 기다려본 사람은 안다. 누군가를 진득하게 기다리는 데에도 큰 결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뮤지컬 <겨울나그네>가 최인호 작가의 10주기를 맞아 삼연으로 돌아왔다. 2023년의 <겨울나그네>는 반가우면서도 낯설다. 다혜 역을 맡은 배우 한재아는 어느덧 멀어진 1980년대라는 시간 속 다혜의 지고지순하다고만 생각되던 모습에 감춰진 강한 믿음과 의지를 발견했다. 그렇게 한재아만의 다혜가 만들어졌다.

 

극중 다혜처럼 담담한 모습이지만 마음속에는 오랫동안 지켜온 열정을 간직한 배우, 한재아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겨울나그네] 한재아 공연사진4 (제공-에이콤).jpg

 

 

“겉보기에는 잔잔하지만, 그 마음속에는 민우를 향한

강한 믿음과 사랑이 존재해요.

어떤 순간에는 대담하기도 하고요.”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다혜 역을 맡아 열연 중이신데, <겨울나그네>의 첫인상은 어땠는지 궁금해요.


원작을 모르는 채 뮤지컬 대본으로 <겨울나그네>를 처음 만났는데,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제가 아예 경험해보지 않은 시대의 인물과 정서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고민되었죠. 원작을 볼까 생각도 했지만 연출님이 세세한 설정이 다르니 주어진 대본만으로 인물을 이해하는 게 더 낫겠다는 말씀을 해주셔서 제 나름대로 다혜에게 새롭게 접근해보려 노력했어요.

 

 

그렇게 뮤지컬 대본으로 만난 다혜는 어떤 인물이었나요?

 

처음에는 한결같이 민우를 기다리는 모습이 좀 답답하다고 생각했는데, 대본을 읽고 연습을 하면서 다혜가 제 생각보다 입체적인 인물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그저 답답하고 우유부단하기만 했다면 그만큼 민우를 기다리지도 않았을 것이고, 마지막에 마음을 접고 현태를 선택하지도 않았을 것 같아요.

 

 

그런 다혜를 표현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셨는지 궁금해요.

 

다혜가 심지 있고 단단한 인물이라는 걸 느끼고 나니 요즘 많이 나오는 강단 있는 여성상과도 겹치는 부분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외유내강형 인물로 표현하려 노력했어요. 겉보기에는 잔잔하지만, 그 마음속에는 민우를 향한 강한 믿음과 사랑이 존재해요. 어떤 순간에는 대담하기도 하고요. 

 

 

여러 장면과 넘버 중 무대에서 다혜로서 특히 잘하고 싶다 욕심이 났던 부분이 있을까요?

 

2부에서 제니와 함께 부르는 ‘어긋난 사랑’이라는 넘버가 있는데, 다혜가 제니와 아기를 보며 민우와 다시는 함께할 수 없음을 깨닫는 내용이에요. 저는 이 곡이 마냥 사랑을 잃어서, 사랑을 포기해야 해서 슬퍼하는 노래가 아니었으면 좋겠더라고요. 그동안 자신이 민우에게 쏟은 사랑을 담담하게 돌아보기도 하고, 민우를 사랑하기에 오히려 보내주는 성숙한 모습이 잘 드러나기를 바랐어요.

 

 

[겨울나그네] 한재아 공연사진5 (제공-에이콤).jpg

 

 

“뭐든 빨리빨리 변하고 쿨한 게 대세인 세상에서

오랜만에 느리고 애틋한 옛 감성에 빠져보시면 좋겠어요.”



연습하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특별한 에피소드보다는 순간순간 웃었던 기억이 참 많아요. 초반에 길을 걷던 다혜와 자전거를 타고 가던 민우가 우연히 부딪혀 넘어지는 장면이 있어요. 연습을 하는데 자전거 체인이 자꾸 빠져서 웃기면서도 난감했던 기억이 나요.


또 민우가 다혜를 웃겨야 하는 장면이 있어요. 거기서 민우 역을 맡은 배우 네 분이 각자의 방식대로 열심히 노력하시는데, 정말 너무 웃긴 거예요. 한 번은 제가 웃겨서 눈물이 나올 정도라 연습 진행이 되지 않은 적도 있습니다. (웃음)

 

 

<겨울나그네>에서 관객분들이 꼭 봤으면 하는 넘버, 추천하는 넘버가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2막 중반쯤 나오는 ‘슬픈 재회’를 추천하고 싶어요. 다혜가 민우를 기다리다가 막막한 마음에 지쳐 부르는 넘버예요. 민우의 상황을 전혀 알지 못한 채 ‘어쩌면 그댄 다 잊고 지낼 텐데 / 뭐 하나 제대로 할 수 없어요 / 그대 내게 꼭 올 것만 같아서’ 같은 가사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죠. 그런데 노래를 들어보면 그렇다고 포기하는 내용은 전혀 아니거든요. 무너질 뻔하다가 다시 마음을 잡죠. 이 넘버에 담긴 깊은 감성을 좋아해요.


사실 젊은 세대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정서일 수 있어요. 우리는 그렇게 가슴 절절한 사랑을 하려고 안 하잖아요. 저도 마찬가지고요. 하지만 이 넘버를 부를 때면 마음이 짠해지면서 공감이 많이 돼요. ‘이런 사랑도 있구나, 그렇게 힘든 데도 사랑을 하는구나.’ 싶죠. 젊은 관객분들도 그 정서를 느끼며 이야기에 한번 빠져들어 보시면 좋겠습니다.

 

 

공연을 한 달 동안 하고 계신데, 연습할 때와 달리 실제로 무대에 서며 느끼는 이 작품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아무래도 뮤지컬의 꽃은 음악이죠. <겨울나그네>도 음악이 참 좋아요. 요즘 y2k 감성이 유행하고 옛 노래를 듣는 사람이 많잖아요. 저희 음악도 요즘 노래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애절한 감성이 잘 담겨 있어요. 들으면 들을수록 빠져들죠. 그냥 들어도 애절하고 감성적인 곡인데, 실제 공연에서는 오케스트라와 함께하니까 훨씬 더 풍성하게 들려서 


또 옛 간판이 가득한 배경이나 인물들이 휴대폰이 없어 공중전화를 사용하는 장면은 아날로그 80년대 뭐든 빨리빨리 변하고 쿨한 게 대세인 세상에서 오랜만에 느리고 애틋한 옛 감성에 빠져보시면 좋겠습니다.

 

 

다혜를 연기하시며 극중 다혜의 선택에 공감하시나요? 배우님이 실제 다혜의 입장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해요.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다혜 나이대의 저였다면 다혜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지 않을까 싶어요. (웃음) 저는 상대방이 나를 좋아해주는 것보다 제가 상대방을 좋아하는 열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불안정할지라도 머리가 아니라 마음을 따랐을 듯해요. 다혜가 민우를 기다리는 이유는 그만큼 민우가 큰 믿음을 줬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저도 상대방이 그런 믿음을 줬다면 기꺼이 기다리지 않을까요.

 

 

[겨울나그네] 한재아 공연사진6 (제공-에이콤).jpg

 

 

"내가 택한 이 일을 더 행복하게 오랫동안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자고 결심했어요."

 


작중 민우는 끝없이 방황하는데요, 살다 보면 누구나 방황하는 시기가 찾아오는 듯해요. 배우님도 그럴 때가 있을 텐데, 어떻게 마음의 중심을 잡는지 궁금합니다.


고민하고 방황하는 순간은 당연히 있지만, 그럴 때마다 의식적으로 어떤 다짐을 하지는 않아요. 그렇게 다짐한다고 그대로 되지도 않고요. 하지만 정말 신기하게도 그런 시기에 우연히 극장에서 보게 된 작품이, 유튜브로 보게 된 공연 영상이 새로운 기운을 많이 줘요. ‘맞아, 내가 이만큼 사랑해서 지금 일을 선택한 건데, 이렇게 주저앉아 있으면 안 되지.’ 깨닫는 순간이 오죠.

 

 

최근에도 그런 순간이 있었나요?

 

요즘 제 또래 친구들을 만나면 대부분 일에 관한 고민을 하는데, 저도 마찬가지예요. 어렸을 때부터 무대에 서서 노래하는 게 꿈이었고 이것만큼은 정말 잘할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는데, 일을 하고 있는 지금은 앞으로도 계속 잘할 수 있을까 생각이 들곤 해요. 최근에도 그랬고요.


그러다 우연히 <시스터액트> 내한 공연을 봤어요. 행복하고 신나는 공연인데, 이상하게 계속 울면서 봤죠. 이 작품에 성가대가 나오거든요. 보고 있으니 제가 어렸을 때 성가대에 있으면서 노래하던 모습이 떠올랐어요. 그때 제가 얼마나 행복했는지도요. 그 뒤로 집에 와서도 계속 <시스터액트> 영상과 노래를 찾아봤어요. 


그러다 보니 이 일을 정말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여기까지 왔는데, 왜 힘든 순간 하나 때문에 무너지려 했을까 싶더라고요. 다른 일을 하면 어떨까 생각해봐도 전 생각나는 게 없어요. 어떤 일을 하든 힘든 순간은 분명히 있을 거고요. 그러니 내가 택한 이 일을 더 행복하게 오랫동안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자고 결심했어요. 

 

 

앞으로 배우로서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지도 들어보고 싶어요.

 

정말 다양한 캐릭터를 해보는 게 제 꿈이에요. 기존의 제 이미지에 국한되지 않고 도전해보고 싶어요. 예전부터 정말 하고 싶은 역할은 <레드북>의 안나예요. 


소위 말하는 ‘센 캐릭터’도 많이 해보고 싶어요. 작년에 <포미니츠>에서 ‘제니’역을 맡았는데, 살인죄로 교도소에 복역 중인 피아노 천재예요. 와일드하고 거친 모습을 무대에서 마음껏 표현하는 게 즐거웠어요. 그런 역할을 다시 맡아보고 싶습니다.


또 제가 우연한 순간에 공연에서 위로를 얻었듯, 제 공연을 보러 와주시는 관객분들에게도 위로를 드릴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나중에 미래에 지금 이 순간을 돌아보셨을 때 배우님에게 <겨울나그네>는 어떤 작품으로 기억될지 궁금합니다.

 

요즘 들어 갈피를 못 잡는 날이 많았는데, 그런 저에게 순간 순간 위로가 되어 준 공연으로 기억될 것 같아요. 작품 자체에서도 위로를 받았지만, 이 안에서 만난 사람들이 참 좋거든요. 긍정적인 영향을 많이 받았던 시기, 작품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겨울나그네> 관객분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겨울나그네>는 남녀노소 상관없이 푹 빠져서 볼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젊은 관객이라면 세상에 저런 사랑도 있구나 하며 새로운 마음으로 보실 수 있을 거예요. 또 <겨울나그네>에 추억이 있는 관객분들은 그때 그 감동에 빠져 오래된 기억을 꺼내볼 수 있는 시간이 될 거예요. 모두 함께 오셔서 좋은 기억을 만들어 가시면 좋겠습니다.

 

 

*사진제공: 에이콤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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