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카메라를 들어 사람들을 연결하다 : 책 '비비안 마이어'

『비비안 마이어 : 보모 사진작가의 알려지지 않은 삶을 현상하다』
글 입력 2022.08.14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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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곰곰이 생각해 보지 않은 주제다. 관심이 아예 없다기보다는 서서히 꺼진 쪽에 가까운. 기억하는 건 중학생 2학년 때인데, 한창 DSLR을 갖고 싶었다. 용돈을 꼬박꼬박 모으고 혹여나 누가 훔쳐갈까 서랍장 깊은 곳에 숨겨두었는데 어느샌가 열망이 닳았다. 그 돈을 후에 어디에 썼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카메라를 사지 않았고.


이삼 년 전까지만 해도 사진 찍는 행위 자체에 회의감이 들었다. 카메라의 눈에 담느라 기기 너머로 보고 있다는 게 아이러니하지 않는가. 대체 무얼 보고, 무얼 기억하는 걸까. SNS가 일상이 된 세상에 살면서는 거부감이 더욱 심했다. 자기 자신이 어떻게 보였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이미 가공된 이미지를 또 가공하고, 그게 자연스러운 것처럼 한 겹 더 꾸며내고. 그런 순간은 묶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해서 몇 년 동안은 사진을 거의 찍지 않았다. 찍을 시간에 눈에 담자는 게 모토였다.


생각의 일부는 여전하다. 그리고 일부는 변했다. 기억을 보정하려는 시도를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된 것이다. 어쨌거나 ‘지금’이라는 건 이미 지나갔으니 사진을 찍든 찍지 않았든 망각의 궤도에 오른 셈이다. 지워지고 잊히는 것들 가운데 몇 가지를 건져내 다른 색으로 물들일 수 있다면. 그로 인해 나의 기억이 조금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면. 좋음을 추구하는 마음이 나쁠 것도, 그리고 누구에게든 해가 될 게 없으니 하지 않을 이유도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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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사진과 관련된 기억 내지는 생각을 꺼낸 건 40년 간 사진을 찍어온 비비안 마이어의 삶을 들여다보면서다. 엄지 손가락 한 마디를 너끈히 넘기는 책 두께를 보며, 한 사람의 삶이 이렇게 많은 걸 남길 수 있구나 싶었다. 70년의 일생이라기엔 적은 양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사사로운 우리의 일상을 생각해보자. 나의 삶을 결집할 만한 하나의 소재가 있을까. 물론 그런 게 반드시 있어야 한다거나 그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나의 우물만 파며 꿋꿋이 사는 게 쉽지 않다고 느낄 뿐이지.


비비안 마이어의 가정환경을 낱낱이 보아서일까. 생각은 사진에서 삶으로 확장되었다. 그의 삶이 수수께끼여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첫 발견부터 기이하다. 2007년 시카고 경매장, 네거티브 필름으로 가득한 상자들을 낙찰받은 존 말루프. 보자마자 특별함을 감지하고 '비비안 마이어'라는 이름을 쫓아 그의 사진과 네거티브 필름을 되는 대로 모았다. 그러면서 그가 어떤 사람인지 찾으려 했으나 인터넷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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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전환점은 신문의 부고였다. '비비안 마이어' 하면 그가 보모였다는 사실이 꼬리표처럼 달라붙는데, 전문 사진작가가 아니었단 것도 한 몫하지만 '뛰어난 사진작가인 보모가 세상을 떠났다'는 부고를 통해 실마리를 찾았기 때문 아닌가 싶다.

 

뿔뿔이 흩어진 비비안의 흔적들을 한데 모으고 나니 이상한 데가 있었다. 작품은 14만 점이나 되는데 이중 인화한 사진은 겨우 5퍼센트였다. 그렇게 방대한 양을 찍으면서 왜 확인조차 하지 않았을까. 덩달아 궁금증을 가지고 그의 기나긴 이야기를 읽어나갔다.


고압적이고 불안정한 어머니와 알코올에 절여진 아버지, 유일한 형제는 약물 중독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비비안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던 할머니 외제니는 그가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세상을 뜨고 만다. 사람들이 평범하다고 일컫는 가족의 형태에서 완벽히 벗어난 모습. 누군가는 문제를 일으킬 만한 배경을 가졌다고 함부로 평가할 수도 있겠다.


사람들이 입방아 찧을 것을 잘 알았는지 비비안은 혼자가 자연스러운 사람으로 자라난다. 이곳저곳 쏘다니고, 다양한 사람들을 담고, 또 다른 곳으로 옮겨가 또 찍고, 사진가들을 만나고, 배우고, 떠나고, 찍고. 저자의 명명으로는 ‘뮤즈’였던 조앤의 곁도 불현듯 떠났다.


다양한 세상을 담고 싶어서 떠난 걸까, 충분히 담을 수 있는 내용을 다 담았다고 느낀 걸까. 어쩌면 한 곳에 오래 머무는 것이 익숙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우호적인 신체접촉을 꺼려하는 사람이었으니.


자신의 과거나 가족 이야기는 일절 하지 않은 채 살아갔기에 목석같은 사람이라고 보이기 쉬웠을 것 같다. 그러나 비비안이 찍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생동감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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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감 넘치는 미소, 불만스러운 얼굴,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눈망울, 고단함에 지쳐 잠든 눈꺼풀, 장난기가 그득한 표정. 거리의 부랑자부터 이름이 하나의 아이콘인 사람들까지. 세상을 저 혼자 살아가려는 사람이었다면 거리의 다양한 사람들을 찾아다닐 리 없고, 감정을 포착할 필요성도 모를 테다.


그리고 책의 끝자락에서 저자는 비비안의 흔적을 아카이빙 한 사람들과 나누었던 어려운 질문을 던진다. 이 발견을 세상에 공개해도 될까. 이게 비비안이 원하는 것일까. 그의 말은 이제 들어볼 수 없기에 저자는 비비안의 삶을 쭉 훑어볼 뿐이다.


 

우리가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건 무엇일까? 사진에 관해 비비안은 그 어떤 계획도 세우지 않았다. 젊었을 때는 전문 사진작가가 되려고 노력했고, 자신이 찍은 작품을 판매하려 했으며, 지인들에게도 나누어주었다. 그러다 정신 질환이 발현해 신문을 병적으로 모으고, 그게 어떤 형태이든 자신의 사진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비비안은 자신의 재능을 확신했고, 유명인을 동경했으며, 예술은 타인의 프라이버시를 침범할 수 있다고 믿었고, 궁극적으로는 숙명론자였다. 창고 사용료도 제대로 지불하지 않으면서 사진도, 네거티브도, 현상하지 않은 필름도, 어느 것 하나 버리지 못했던 비비안은,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일어날 법하지 않은, 자신을 발견하게 될 사건들이 차례로 일어나게 할 도화선을 마련해놓았다. 비비안이 살았던 인생을 모두 파악할 수 있다면 상황은 훨씬 명확해지겠지만, 그 누구도 비비안의 궁극적인 바람이 무엇이었을지 분명히 알 수 없을 테고, 어쩌면 비비안 자신도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는지 모른다.


우리는 그저 비비안 마이어의 진정한 꿈과 바람이 어떻게 해서든 이루어지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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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이들이 그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외골수 같은 삶을 살면서도 사람을 쫓고, 담고, 이를 통해 세상과 연결되었던 사람을.


아, 비비안 마이어 사진전이 기대된다.

 

 

[박윤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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