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배꼽에서 바라본 자신의 얼굴 - 비비안 마이어

글 입력 2022.08.13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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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는 하나의 연극이다.

 

한 사진가가 자신의 프레임 안에 담길 무대를 자신만의 미장센으로 꾸며낸다. 그는 인물들과 거리의 소품을 역동적으로 배치하여 유머러스함을 뽐낸다. 아무래도 이 연출가는 재밌는 장면을 꽤 좋아했던 것 같다.

 

반면, 거리의 얼굴들에 담긴 순간의 표정과 인상을 담아내기도 한다. 따스하게 웃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의심 어린 눈빛으로 렌즈를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이 모든 장면이 사진가의 배꼽에서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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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안 마이어, 그녀는 대체 누구인가?

 

비비안 마이어는 보모 출신의 사진작가로, 그녀가 죽고 난 이후 경매장에서 엄청난 양의 필름이 발견되어 화제가 되었다. 그리고 그녀의 뛰어난 감각이 담긴 사진들에 사람들이 열광하기 시작했다.

 

20세기 거리 사진의 역사를 완전히 다시 쓰게 된다. 그렇게 비비안은 어떤 예술가들처럼 죽고 난 이후에야 예술가로서 인정받기 시작한다. 비비안은 사진의 다양한 특성을 이해하고 그 특성들을 이리저리 조합하여 자신만의 작품 세계로 발전시킨다.

 

우선 그녀의 사진에는 저널리즘적 성격이 묻어난다. 특히 비비안의 사진이 관람객의 눈길을 끄는 이유는 사진에 자신만의 유머 코드와 저널리즘적 성격을 적절히 융합하여 넣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보도 사진을 찍는 과정을 통해 작품 세계에서 저널리즘적 성격을 다듬어나간다. 시체 한 구 이상이 포함된 범죄 현장 사진을 많이 찍었다. 조금 무례하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사람들이 최악의 상황에 부닥친 상황에서조차도 기록을 멈추지 않았다.

 

사진의 기록적 기능을 잘 이해하고 수행하고 있었다. 그 순간이 아니라면 기록할 수 없는 긴박한 현장감과 생생함을 사진의 주요 특징을 흡수하게 된다. 동시에 다른 이들에게 알리기 위해 좋은 수단으로서의 사진의 가치를 파악하게 되는 것이다.

 

반면, 그녀는 가족사진을 촬영하면서 ‘미완’을 담아내는 사진의 특성을 좋아하게 된다. 비비안은 보모로 일했던 가족의 행사에서 사진을 촬영해주었는데, 인생에서 단 한 번밖에 존재할 수 없는 순간을 오로지 한 번의 셔터 누르기로 담아낸다.

 

그녀는 자신이 담아낼 사진에 대해 확신이 있었다. 필름이나 돈을 아끼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조차, 오로지 한 컷만 찍어낸 그 자신감은 사진의 특성에 대한 높은 이해도에서 출발한다.

 

비비안이 찍은 가족사진을 보면 자연스럽다. 모두가 정면을 바라보고 굳은 몸짓에 굳은 표정을 하는 가족사진이 아니라, 그 가족의 평소의 생동감과 사랑스러운 분위기를 담아내는 가족 사진을 찍었다.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표정과 몸짓을 하는 불완전한 상태를 완전한 상태로 받아들이고 마음에 들어 했던 것이다. 사진만이 생생하게 담아낼 수 있는 것이 바로 ‘미완’의 상태임을 비비안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이러한 이해도는 거리에서 찍은 아이들의 사진에서도 드러난다. 그녀는 아이들의 꾸밈 없는 표정을 담아냈다. 깨끗하게 정돈된 아이만 담아내지 않고, 길거리에서 열심히 놀고 얼굴에 얼룩이 묻은 아이,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아이, 어딘가 짜증이 난 아이까지. 아이들의 호기심은 배꼽 위의 카메라를 뚫어지게 바라보도록 했고, 그 순간을 비비안은 놓치지 않았다. 0.1초 만에 바뀌는 그 표정을 주저 없이 담아내는 그녀의 확신이 사진의 현장감과 생동감으로 여실히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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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사진에 대한 이해도가 높으며 이를 잘 활용하고 있는 비비안을 소개하는 대부분의 문구는 ‘보모 출신 사진작가’, ‘죽고 난 후 필름이 발견된다’ 등 그녀의 생애에 집중되어 있다. 그런데 그녀의 사진관을 설명하는 정수는 ‘자화상’에 있다.

 

오늘날 우리는 ‘셀카’를 통해 자기 자신에 대한 기록을 남긴다. ‘셀카’는 자기표현의 수단으로서, 내가 가진 애티튜드, 외모, 물건, 배경 등을 표현할 수 있는 압축적인 매체이다.

 

비비안은 거울을 통한 ‘셀카’를 남김으로써, 사진작가로서의 자신을 계속해서 설명하고 담아낸다. 그녀는 자신만의 스타일로 옷을 입고, 조금은 차분한, 혹은 굳은 얼굴로 거울 앞에 선다. 그리고 자기 배꼽 위에 카메라를 올려둔 후 사진을 촬영한다. 모든 구도와 구성요소가 비비안을 설명한다. 비비안은 자기 자신을 설명하기 위해 프레임 안의 미장센을 꾸며낸다. 어느 자화상보다도 철저하게 구성되었으며, 하나하나의 의미를 놓칠 수 없다.

 

비비안은 배꼽의 시선에서 거리의 사람들을 관찰하고 담아낸다. 그리고 자기 모습을 담아낸다. 배꼽의 위치에서 바라본 수많은 얼굴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의 이야기를 좇아가는 재미를 느끼고 싶다면 신간 ‘비비안 마이어’를 꼭 찾아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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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민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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