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단골 책방이 문을 닫았다. [공간/도서]

우리는 그곳이 번창하기를 바라면서 아무도 모르길 바랐다.
글 입력 2022.07.22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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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게는 일주일에 서너 번, 적게는 한 번 이상 매주 방문하던 곳이었다. 집에서는 걸어서 20분. 번화가에서 살짝 벗어나 인적이 드문 도로변의 상가 2층. 근처에 살지 않는 이상 굳이 걸어오지 않을 것 같은 곳, 고개를 들지 않으면 쉽게 알아채기 힘든 위치에 책방이 있었다. 

 

볕이 뜨겁게 내리쬐는 여름이나 까득까득 이를 떨게 되는 추운 겨울에는 코앞의 많은 카페를 모두 제치고 책방으로 향하는 길이 무용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럴 때마다 발걸음을 더 재촉했다.

 

그 책방의 인테리어가 유독 예뻤다거나, 커피가 환상적이었다거나 하는 이유는 아니다. 그저 책상이 넓었고, 의자의 높이가 적당했으며, 눈을 혹사시키는 노란 조명이 아니었을 뿐이다. 참 군더더기 없는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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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는 참 쓸모없다. 몸에 필요한 영양분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장기적으로 복용한다고 건강이 좋아지는 것도 아니다. 잠을 깨운다고 하지만 카페인이 사라질 때 몇배로 피곤해지는 ‘카페린 크래시’를 생각하면 밑지는 장사 같다. 

… 

그러나 커피와 커피를 파는 공간의 무용함은 얼마나 소중한가. 카페에 찾아와서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사람을 구경하고 그리운 이를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은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카운터 일기』, 작가의 말 中에서

 

 

책장을 정리하다 문득 이 책을 집어들고는 얼마 전 문을 닫은 단골 책방에 대해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카운터 일기』는 그곳에서 산 몇 안 되는 책 중 하나다. ‘흔하디 흔한 줄 알았던 카페’, ‘어떤 공간도 그냥 생기지 않는다’는 추천의 글을 보고 망설임 없이 집어들었던 기억이 난다. 

 

 

고풍스러운 주택 + 반려동물 가능 + 자녀 – 사립학교 학비

+ 온가족 후리스 차림 = ○○○ 동네 당첨!

 

 

뉴욕의 중산층 가정이 밀집한 브루클린의 어느 동네의 카페, 작가가 4년 동안 바리스타로 일한 곳이다. 해외 영화와 다양한 국적의 예술가를 소개하던 작가는 우연하게도 전업 바리스타가 되었다고 자신을 소개한다. 커피와 카페와 이를 지나는 사람들을 배경으로 한 짧은 호흡의 에피소드들 속에서 작가는 놀라우리만큼 애정 어린 시선을 보여준다.

 

입으로 색소폰 소리를 내며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에 멜로디를 얹는 손님, 매일 아침 라지 사지의 라테와 참깨 베이글을 시키고 똑같은 자리에 앉아 그림을 그리는 드로잉 아저씨, 매주 화요일 저녁 뜨개질감을 들고 찾아오는 중년의 두 여성, 매일 저녁 커피를 사 가는 동북아시아 문화 덕후이자 이웃 가게의 기념품 할아버지, 자기 이름을 겨우 말하던 꼬맹이에서 유치원생이 된 J까지. 

 

팁 통을 훔쳐 가는 도둑이나, 목적을 알 수 없는 말을 하며 작가를 곤란하게 하는 손님들도 있지만 작가와 함께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도 잠시일 뿐, 모든 장을 넘길 때쯤이면 그런 사소한 불쾌감들은 저 멀리 사라지고 없다. 

 

이제는 사라진 그 책방과 닮아있는 이야기를 읽으며, 책방 사장님도 나와 비슷한 마음으로 이 책을 들여왔을까 생각했다. 누군가의 낯선 일상을 읽는 동안 낯설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은 것은 아마 카페라는 공간이 주는 익숙함 때문이 아닐까. 

 

 

 

특별함 없이도 특별해지는 것들이 있다. 



『카운터 일기』 속 드로잉 아저씨 W와 기념품 할아버지가 작가가 맞이하는 카페에 습관처럼 드나들고, 일상이 되어버린 그 공간을 아꼈듯, 나에게는 책방이 그런 곳이었다.

 

책방이었지만 책을 사거나 읽으러 가는 일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 공부를 하거나, 과제를 하거나… 과제를 하러 갔다. 벽면 한 쪽에는 책방에 오래 머무는 이들을 환영하는 사장님의 메모가 붙어있었다. 덕분에 기꺼이 오래, 편안히 머무를 수 있었다. 

 

언제나 친절했던 사장님은 종종 새 디저트를 권해주셨다. 1년을 내내 사장님과 마주치며 나눈 대화라고는 인사와 날씨에 대한 것이 전부였지만, 많은 것을 묻지 않는 것이 서로에 대한 배려였다는 걸 알았다.

 

내리 몇 시간을 타자만 치는 내가 무얼 하는지도 모르면서, 오늘도 집중이 잘 되길 응원했었다는 사실은 한참 후에야 들은 이야기다. 지금이라도 그 많은 과제들의 공을 사장님과 나누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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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창의 두 벽은 여름에는 얼굴을 뜨겁게 만들고, 겨울에는 발을 시리게 했지만, 고개를 드는 것만으로도 큰 숨을 쉬게 하는 가로수의 풍경은 계절을 타지 않고 아름다웠다. 맑은 날에는 햇살이 닿지 않는 곳이 없었고, 비가 오는 날에는 창에 닿는 빗줄기가 멋진 풍경을 만들었다. 

 

책방이 자리를 지킨 일 년 동안 나와 동네 친구들은 질리도록 많은 시간을 그곳에서 함께 했다. 각자의 목적이 달라도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이었고, 약속의 수고스러움을 없애준 곳이었다. 우리는 그곳이 번창하기를 바라면서 아무도 모르길 바랐다. 


쌓이는 과제를 쳐내야 하는 나와 취업의 압박에 시달리던 친구들은 책방에 모이기만 하면 그렇게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았다. 방학 되면 소파 자리에 앉아보자, 시험 끝나면 노트북 없이 오자, 소파에 기대서 책 보자, 우린 언제쯤 저 소파에 앉아볼 수 있을까… 한참을 서로의 과제에 바쁘다 눈이 마주치면 더 볼 것도 없는 책방을 이리저리 구경하고, 사장님의 흔적으로 가득한 책방 지기 책장의 책을 꺼내보고, 창밖을 보며 멍을 때렸다. 우린 마지막 날까지 단 한 번도 책을 보러 책방에 간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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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이 주는 안정감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사장님은 유럽에서 여행 가이드로 지내다 예상치 못한 바이러스로 인해 한국에 돌아오셨다고 했다. 우연히 만들어진 틈에 책방이 자리 잡은 셈이다. 책방의 영업이 완전히 끝난 후, 카페에서의 작업을 즐겨 하던 나는 이제 카페에 잘 가지 않는다. 마음을 의탁할 새로운 공간을 찾는 일이 여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카페의 카운터 안쪽에서 쓴 작가의 일기는 내게 남겨진 책방의 기억들과 묘하게 닮아있다. 브루클린의 카페에서 바리스타로 지낸 4년간의 기록은 작가의 것이었다가, 내 것이 되었다가, 친구들의 것이 되고, 다시 작가의 품으로 돌아간다.

 

머지않아 또 다른 어떤 곳의 단골이 될지도 모르지만, 책방이 내게 남긴 편안함은 오래도록 다정히 남을 것이다. 같은 공간에 대한 이해와 애정을 나누는 시간의 값짐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카페를 떠나기 하루 전날, 무뚝뚝한 우편배달부가 언제나처럼 한 뭉치의 우편물을 던지듯 놓고 나갔다. 대게는 보지 않고 통째로 우편물 폴더에 넣어두는데 그날은 무슨 바람에선지 혹시라도 잘못 전달된 우편물이 없나 싶어 수신자를 확인했다. 그러다가 수상한 그림으로 가득한 봉투의 수신자가 나라는 것을 발견했다. W의 편지였다. 

 

“네 이름에 i가 들어가는지 안 들어가는지 죽었다 깨어나도 기억이 안 나서 i와 y를 합치는 꼼수를 썼지. 잘 지내고 있기를.”

 

 

[김윤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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