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명우 형이 여기에 있다! - 영화 '홈그라운드'

글 입력 2023.12.08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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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라면 누구나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면서도 다른 사람과 함께할 수 있는 커뮤니티가 필요하다. 모두가 그런 커뮤니티를 쉽게 찾을 수 있는 건 아니다. 퀴어의 경우 특히 더 그렇다.

 

성소수자 차별과 낙인찍기가 만연한 나라에서, 퀴어가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면서도 안전하고 편안하게 타인과 어울릴 수 있는 커뮤니티는 매우 한정적이다. 많은 퀴어가 가정이나 학교 같은 일상적인 커뮤니티에서 소외감을 느끼고 겉돈다.


1970년대의 윤김명우도 그러했을 것이다. 지금처럼 인터넷도 발달하지 않았고 사회적 규범도 훨씬 더 엄격했던 시절이다. 남들과 무언가 다른 사람은 고민을 나눌 사람도, 자기 자신을 제대로 탐구할 기회도 없었다. 가면을 쓴 채 억지로 다른 사람이 되어 평생을 살거나, 가정과 학교에서 공공연한 ‘미친놈’이 되는 것. 그 외에 어떤 선택지가 더 있었을까.

 

그러나 당시 10대였던 윤김명우는 '샤넬다방'이라는 새로운 커뮤니티를 만나게 된다. 거기서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의 존재를 확인하며 그의 인생은 다른 갈림길로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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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50여 년이 지난 지금, 어느덧 60대에 접어든 윤김명우는 대한민국 퀴어씬의 아이콘이 되었다.

 

그는 현재 이태원의 레즈비언바 '레스보스'의 사장이기도 하다. "이모님 말고 명우 형이라고 불러!" 윤김명우의 이 한 마디 말로 시작되는 <홈그라운드>는 윤김명우라는 퀴어 개인과 레스보스라는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한국의 레즈비언 문화사를 아카이빙하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70년대 명우 형에게 새로운 길을 보여주었던 샤넬다방은 퇴폐업소로 낙인찍혔다. 하지만 이후에도 레즈비언 커뮤니티는 생겼다가 사라졌다를 반복하며 계속 존재해 왔다. 2000년대 신촌공원은 청소년 레즈비언들의 아지트 같은 곳이었다. 입소문을 듣고 모인 이들은 거기서 파티를 열고 그들만의 문화를 꽃피웠다.

 

현재 명우 형이 운영하는 레스보스는 1996년 마포구 공덕동에 처음 문을 연 이래 신촌을 거쳐 이태원으로 옮겨오며 30년 가까이 그 이름을 지켰다. 그 세월 동안 레스보스는 갈 곳 없고 어울릴 사람 없는 레즈비언의 안식처이자 해방구였다. 명우 형에게 샤넬다방이 그러했듯이 말이다.


세 개의 공간은 현재까지 운영 중인 레스보스를 제외하고는 그 특성상 많은 자료가 남아 있지는 않다. 영화는 실제 그곳을 경험했던 사람들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재현 영상을 만들어냈다. 밝고 유쾌한 분위기의 재현 영상처럼, 인터뷰이들은 한결같이 그런 장소 덕분에 자신이 혼자가 아님을 확인받을 수 있었다고 밝힌다.

 

그 시절 큰 용기와 힘이 되어주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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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레스보스의 시간이 30년 가까이 쌓이는 동안 그만큼 나이를 먹은 윤김명우라는 퀴어 개인의 삶, 더 나아가 우리나라의 나이 든 퀴어의 삶 역시 되돌아본다.

 

레스보스는 언제나 자유와 젊음의 상징처럼 느껴진다. 그곳을 지키는 명우 형도 늘 유쾌하게만 보인다. 하지만 너무 당연하게도 그의 삶 역시 여러 가지 얼룩이 있다. 퀴어들 사이가 아니라 오래된 친구들 사이에 있을 때 그런 부분은 더 두드러진다.


윤김명우는 이미 오래전 정체화 과정 끝에 명우라는 이름을 짓고 자신을 명우 형이라 불러달라고 했지만, 영화 속 오래된 친구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한 친구는 그 사실을 좀처럼 인정하지 못한다. 명우 형은 가족과 등을 지면서도 자기 자신으로 살기를 택해 왔다. 하지만 아직도 ‘그 생활’ 하냐며 가볍게 묻는 친구의 말은 그 선택의 무게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는 걸 보여준다.


명우 형만이 아니다. 퀴어 불모지에서 퀴어의 삶을 선택하고 자신의 삶을 개척한 그 시대 퀴어들은 가족을 등지거나 안정적인 직장을 얻지 못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현행법상으로 혈연이나 혼인 관계가 아니면 서로의 법적 보호자가 될 수 없기에 이들은 쉽게 고립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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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나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만 같은 레스보스도 여러 어려움을 겪는다. 영화는 코로나19가 한창 심각하던 시기에 재정난을 겪는 레스보스의 모습을 담는다.

 

팬데믹은 모두에게 크고 작은 상흔을 남겼지만, 퀴어와 같은 사회적 소수자에게는 특히 치명적이었다. 많지 않은 환대의 공간이 문을 닫은 시기에 발생한 이태원 클럽발 코로나19 감염 사태는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 당시 기다렸다는 듯 쏟아지던 혐오발언을 나 역시 기억한다.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서도 명우 형이 레스보스를 지키는 이유는 여기에 있을 것이다. 1년에 몇 번 없는 퀴어퍼레이드에서조차 혐오세력이 당당하게 반대 집회를 여는 나라에서 레스보스와 같은 공간은 꼭 필요하다.

 

그래서 명우 형은 눈물을 닦고 일어나 장을 보고, 레스보스의 문을 열고, 특유의 유쾌한 에너지로 다시 사람들을 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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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걸까. 확답할 수는 없지만 지난 50년간 한국에서 퀴어의 인식은 어떤 식으로든 변해왔다.

 

오늘날의 퀴어는 과거의 ‘바지씨’, ‘치마씨’ 같은 은어가 아니라 다양하고 구체적인 단어로 자신을 정의한다. 젊은 퀴어들은 퀴어만의 공간, 퀴어 친화적인 커뮤니티를 직접 만들고 다닌다. 서로 활발하게 교류하며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머리를 맞대는 이들도 많다.


칠순을 앞둔 명우 형도 변하는 세상에서 계속 새로운 것을 배운다. 영화의 말미에는 퀴어들을 위한 공간을 오래 지켜온 그가 이제 더 넓은 세상 속으로 뛰어드는 모습이 나온다. 故변희수 하사 추모집회에 참석하고, 퀴어퍼레이드에 레스보스 부스를 내서 많은 사람을 만난다. 퀴어 당사자이지만 여전히 퀴어를 공부한다. 편견을 깨고 더 많은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

 

다시 한번 생각한다. 세상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걸까? 더 많은 사람이 덜 외로운 미래는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새롭게 만들어야 하는 법의 목록 같은 게 떠올라 회의적인 입장이 되다가도, “어서 와, 명우 형이 여기 있다!”라는 말에 어쩐지 마음이 찡해진다.

 

이미 오래 전부터 길을 닦아온 사람의 말을 들으며, 그래도 더 나은 미래가 있을 거라 믿고 싶어진다.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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