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선물 같은 퓨전 국악 입문작 - 국악 뮤지컬 심청날다

글 입력 2024.06.10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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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고전의 재해석’ 소리를 듣게 되면 귀가 쫑긋해진다. 필자는 과거의 아름다움-주로 시각적인-을 좋아하는 만큼 과거에 만들어진 것들을 좋아하는데, 옛 작품에는 필연적으로 그 시대의 가치관이 배어들어 있다. 대부분 시대상을 감안하며 작품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편이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현대인으로서 좀처럼 납득하기 힘들어 심리적 저항감이 생기기도 한다. 그럴 때면 감상의 맥은 끊기고 작품에 집중할 의욕도 뚝 떨어진다. 이에 비해 현대적 관점으로 재해석이 들어간 작품은 그런 거부감을 덜어내고, 먼 과거에 만들어진 심미적 즐거움을 지금 이 시간에도 ‘가용한’ 것으로 만든다.


한편 같은 고전을 대상으로 하더라도 재해석이 들어간 지점, 그리고 그것을 설득력 있게 만들기 위한 스토리 변형과 연출방식은 작품마다 다르다. 그렇게 만들어지는 작품만의 특성을 느끼는 일은 흥미롭다. 퀄리티 좋은 ‘고전의 재해석’ 작품을 보고 있으면 무엇보다, 오래된 것이 앞으로도 더 이어져 갈 생명력을 얻고 있는 현장을 보는 게 기분이 좋다.


5월 31일 저녁,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는 판소리 심청전을 각색한 ‘국악 뮤지컬’ <심청날다>가 상연되었다. 공연 장소로 가는 동안 이 공연만의 재해석 지점, 관점이 무엇이고 극 안에서 어떤 연출 방식으로 그것을 소화해 내었는지가 궁금한 상태였다.

 

 

퓨전국악 뮤지컬 ‘심청날다’ 포스터(5.31,서울 국립국악원 예악당).jpg

 

 

예전에 본 창작 판소리 공연이자 퓨전 국악 뮤지컬로는 <적벽>이 있다. 판소리 다섯 마당 중 적벽가를 재해석한 <적벽>은 판소리와 현대무용의 만남, 젠더 프리 캐스팅을 해당 공연의 특징으로 내세웠었다. 퓨전 국악 뮤지컬 작품이라는 공통점 때문에 <적벽>과 <심청날다>를 비교해 보며 <심청날다>만의 특징을 더 잘 알아볼 수 있었다. <적벽>이 보다 정극 분위기였고 ‘배우들의 공연’이라는 점이 두드러졌다면, <심청날다>는 ‘국악 크로스오버 밴드의 공연’임이 여실히 드러났다.


<적벽> 역시 라이브 연주로 진행되었지만 무대 위는 판소리와 뮤지컬 발성으로 노래와 연기를 하던 배우들이 담당했었다. 반면 <심청날다>는 국악 크로스오버 밴드인 ‘밴드날다 (NALDA)’의 인원들이 모두 무대 위에 올라 있었다. 밴드 보컬이자 소리꾼인 오단해, 서진실, 그리고 색소폰과 키보드 등의 서양 악기를 연주하는 밴드 연주자들이 모두 무대 위의 구성원이었다. 소리가 필요한 배역은 두 명의 소리꾼이 도맡았지만, 극의 전개를 위해 들어가는 감초 같은 역할(선장, 용왕, 심봉사의 도움을 받는 여인 등)은 밴드날다의 연주자 등 다른 세션이 소화하기도 했다. 또한 극의 중간중간 연주 세션이 무대 앞으로 나와 열정적인 독주를 펼치기도 했다. 국악 뮤지컬을 표방하고 있지만 배역 교체의 유동성과 자연스러움은 역시 판소리에서 온 것이었다.


원전의 시대상을 살린 <적벽>과 달리 <심청날다>는 심청전이 펼쳐지는 시공간을 많은 부분 현대의 것으로 교체했다. <적벽>에서 전쟁은 약화시키거나 다른 것으로 대체하기 어려운 소재이고 전쟁은 예나 지금이나 참혹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지만, 효에 대한 관념은 옛날과 지금에 매우 큰 차이가 생겼기 때문일 것이다. 아버지가 충동적으로 약속한 공양미 삼백석을 대신 책임지기 위해 인당수에 몸을 던진 10대 정도의 딸이라니 요즘 관점에서 보자면 자녀에 대한 학대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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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청날다>는 고전의 스토리라인을 크게 변형하지 않는 대신 극에 현대성을 입혀 전근대적 효의 개념을 약화시켰다. 현대극 <심청날다>에서는 심청이 효녀 심청이 아닌 ‘그냥 소녀 심청’임을 강조한다. 그냥 소녀인 심청에게는 도화지 같은 미래가 있다. 아기 심청을 안은 심 봉사는 공부 잘 시켜서 좋은 데 시집 보낼 거라고 말했다가 ‘요새 그런 말 하면 꼰대 소리 듣는다’는 마을 지인의 말에 곧바로 자기 말을 고친다. 그냥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네가 하고픈 건 다 해보거라. 그런 현대적인(?) 심 봉사 아래서 자란 요즘 아이 심청은 가수를 꿈꾸며 아버지에게 반찬 투정도 하는 평범한 10대 소녀다.


이번 공연에서 의외였던 점은 생각보다 더 어린이 관객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저녁 8시에 시작한 공연이라 관람자 나이대가 있을 거라 예상했는데 극을 다 본 후에는 기획의도와 홍보 대상이 보다 어린 친구들, 가족 단위 관람자에 맞춰져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유소년 관객들의 호응도는 높았다. 심청의 반찬 투정에 당황한 심 봉사가 요즘 애들은 뭐 차려줘야 좋아하냐는 말에 어린 관객들이 서브웨이, 마라탕, 탕후루를 외쳤다. MZ하다 못 해 아주 young한 대답이랄까... 퓨전 국악 기반의 공연을 몇 번 관람했는데 이러한 반응을 듣기도 처음이었다. 만약 지금 만들어진 음악 콘텐츠가 먼 미래에 옛 음악로 분류되어 재현된다면 그 노래 가사에는 '친구와 함께 스테비아 방울 토마토 탕후루 들고 걷던 하교길~' 같은 표현이 있어 미래 노년층의 향수를 자극할지도 모르겠다.


이야기는 심 봉사가 자신을 구해준 스님에게 덜컥 삼백석을 약속한 것에서 뱃사람의 등장으로 흘러간다. 고전과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성난 바다를 잠재울 제물이 아니라 색소폰 불기를 좋아하는 용왕을 위해 옆에서 노래 불러줄 가수를 구하러 마을에 선장이 왔다는 점이다. 심청은 공양미 삼백석도 해결하고 가수의 꿈도 이룰 수 있을 것 같아 선장의 제안을 수락한다. 뉴진스처럼 될 수 있나요? 낯선 사람의 제안 앞에서 심청의 물음은 솔직하고 천진하고 다소 철없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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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당수에 빠질 제물에서 용궁 노래자랑에 나가기 위해 바다로 빠진다는 각색된 상황 설명으로 극의 어두운 분위기는 타개했다. 문제는 주요 대목과 대목 사이의 이음새는 바꿨지만 판소리 가사 자체는 바꾸지 않아 후반부를 보는 동안 자꾸만 감상에 혼란이 생기더란 점이다. 예컨대 심청이 인당수 빠지는 대목에서 청이 인당수에 빠져 죽을 것이란 가사는 그대로였기 때문에 이전의 상황극에서 애써 지운 죽음과 비극적 분위기가 다시 나타나곤 했다. 이미 전반부에서 판소리 심청가에는 없던 노래 ‘그냥 소녀 심청’을 만들어 넣었던 만큼 개사를 할 수는 없었나 의문이 들었다.


사실 이후의 전개가 거의 고전의 귀환 내지는 고전의 재현으로 흘러갔기 때문에 인당수 대목의 가사를 고쳤어도 일관성의 문제는 발생했을 것이다. 용궁 노래자랑에 참가했던 심청은 환생을 하고 한 나라의 황후가 된다. 공양미 시주 문제를 해결하고도 아직 눈을 못 뜬 심학규, 아버지의 소식을 알 길이 없는 황후 심청이. 심청은 아버지와 만나기 위해 맹인 잔치를 열고 마침내 두 부녀는 상봉한다.


전반부에서는 오늘날 불합리하게 느껴지는 ‘달리 선택지 없는 심청이 택한 효행이라는 이름의 희생’을 물려받지 않기 위해 극은 ‘그냥 소녀 심청’을 전면에 내세우며 현대 배경의 부모자식 관계나 현대 문화 속 단어들을 활용했으나 ‘인당수에 빠지는 심청’은 너무나 존재감이 큰 전개 사항이었다. <심청날다>는 용궁을 아예 인당수 장면 전에 언급함으로써 극의 비극성을 희석시키고, 동시에 현대적 요소가 차용된 극의 배경과 후반부 ‘용궁-환생-주인공의 신분 상승’으로 이뤄지는 환상적 전개 사이의 격차를 흐려 놓으려 했다. 아쉽게도 이런 시도는 인당수 장면에서 죽음이라는 상황이 노랫말로 그대로 언급됨으로써 다소 무화된 감이 있다.


극의 일관성이나 논리적인 선후 관계에 조금은 의문을 품게 되더라도 결국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야기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부분이 감상자에게 얼마나 큰 감동 내지는 전율을 전해줄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마치 로맨스물에서 주변인물들의 코믹한 장면이 큰 재미가 없더라도 주연 둘의 로맨스 장면이 애달프고 달콤하기를 잘 해낸다면 그 작품이 수작이라고 여겨지듯이 말이다. 절절함. 그렇다. 작품의 핵심이 절절하게 잘 전달된다면 우리는 감동을 느낀다. 그리고 감동을 느끼게 해 준 작품은 우리 안에서 소중해진다.


<심청날다>의 클라이맥스는 ‘맹인 잔치에서의 부녀 상봉’이라고 느꼈다. 각각 심청이와 심 봉사를 연기한 두 소리꾼의 듀엣은 상봉이 주는 긴장감도, 극적인 감정선도 어디 하나 가감할 것 없이 균형이 완벽했다. 절절하게 느껴지는 부녀의 감정에 두 사람이 이렇게 해후하였으니 다행이라는 감상이 절로 들었다. 소리꾼 듀엣으로 그려진 상봉 장면은 극의 모든 것에 한층 호소력을 입혔다고 할 수 있다.

 

 

24.3.30 심청날다 LJH_0984.jpg

 

 

다시 관객층으로 돌아와 극의 흐름을 고려해 보자면 두 가지 기획 의도가 느껴진다. 첫째, 어린 관객들에게 너무 무겁지 않으면서 고전의 기본적인 기승전결을 전달하며 고전을 알리는 것. 둘째, 판소리라는 낯선 장르의 가사 틀과 창법, 발성 등을 재미있게 접하게 해 국악에의 진입장벽을 낮추는 것. 이쯤되면 밴드날다의 <심청날다>를 유쾌하고 활기찬 ‘퓨전 국악 입문작’으로 불러도 좋지 않을까.


아이들의 웃음 소리와 높은 호응도를 보며 내가 고전을 재해석한 작품에 흥미를 가지는 세 가지 이유 중 마지막 이유가 떠올랐다. 바로, ‘옛것의 아름다움이 앞으로도 지속될 생명력을 얻는 과정을 보는 것’이다. 5월 말일 밤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울려퍼진 실력 있는 소리꾼의 창과 열정적인 밴드 연주, 댄서들이 더해주던 활기, 그리고 어린 관객들의 웃음 소리는 심청전에 담긴 아름다움에 계속해서 생명력을 더하는 자양분이 되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2022년 현황 조사에 따르면 기업이 국악 장르를 지원하는 비율은 2퍼센트에 그치는 실정이니, 메트라이프생명 사회공헌재단과 한국메세나협회가 문화예술 사회공헌 ‘The Gift’의 일환으로 선보인 <심청날다> 공연은 프로젝트 이름대로 선물 같은 공연이 아닐 수 없다. 이런 공연, 이런 문화예술 사회공헌 프로젝트가 있음을 알게 되어, 퓨전 국악을 애호하는 이로서 큰 선물 하나 받은 마음으로 귀가한 밤이었다.

 

 

[신성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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