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스스로 원하고 결정한 죽음, 연극 비Bea

글 입력 2024.03.03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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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죽음을 선택함으로써 진정한 자유를 얻고자 한 젊은 여성과 주변 인물들을 통해 삶과 죽음, 스스로 행복해질 권리와 존엄, 공감 등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를 밝고 경쾌하게 풀어냄으로써 관객들에게 충격과 여운을 안긴 연극 <비Bea>(제작: 크리에이티브테이블 석영)가 5년 만에 세 번째 시즌을 확정 짓고 2024년 2월 17일(토)부터 3월 24일(일)까지 LG아트센터 서울U+ 스테이지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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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의 뜻이 궁금했다. 꿀벌도, Rain도 아닌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시작과 함께 우리의 ‘비Bea’가 등장했다.

 

 

 

1.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것

- 안락사에 관한 이야기


 

비는 면접을 보기 위해 방문한 레이에게 한 가지 부탁을 청했다. 대신 편지를 써달라는 부탁이었다. 그녀가 말하기를, 8년 동안 모든 각도에서 꼼꼼히 들여다보고 생각한 결과, 두 가지가 확실하다고 했다. 첫 번째는 가능한 한 빨리 죽고 싶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주저하는 이유 하나가 마음 아파할 엄마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세상에 죽는 것보다 끔찍한 일이 있다고 말했다. 비가 부탁하여 그 죽음을 도와야 할 사람이 그녀의 엄마라는 사실이 제삼자임에도 불구하고 암담했다. ‘안락사’, ‘죽음’에 관해 생각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몇 해 전, 소설에 관한 강의를 듣게 되었다. 해당 강의에서 정영수의 『내일의 연인들』에 실린 단편 「더 인간적인 말」을 다룬 바 있다. 「더 인간적인 말」에 등장하는 ‘이모’의 말이 ‘나’와 ‘해원’이 결혼 생활을 이어가기 위해 택한 침묵을 깨버린다. 이모는 스위스에 갈 것이며, 그곳에서 죽을 것이라고 말한다. 비의 편지 내용을 듣는 순간 「더 인간적인 말」에 등장한 이모의 말이 떠올랐다. 이야기의 마지막 장을 넘기는 순간까지도 이해할 수 없었다. 가능하다면 삶을 이어가고자 하는 마음은 인간의 본능이 아니었나. 이모와 비처럼 죽음을 결정한 이들의 마음을 이해하고자 하는 다짐을 새겼다.

 

두 시간의 공연은 설득의 연속이었다. 연극 <비Bea>의 목적이 설득에 있었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그들의 결정을 이해할 수 없는 사람으로서 설득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비는 가능하다면 삶을 이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지난 8년처럼 침대에 누워서 다른 이에게 모든 것을 맡긴 채 눈을 끔벅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무의미한 것을 넘어서 죽는 것보다 끔찍한 일이다. 그 어떤 자극도 없는,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삶은 더 이상 온전한 ‘삶’일 수 없다. 「더 인간적인 말」의 이모가 그저 그것을 원하기 때문에 죽음을 결정했던 것처럼 비 역시 삶보다 죽음을 원할 뿐이었다. 감히 공감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들의 결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제삼자로서 이해하는 것과 가까운 이의 선택을 받아들이는 것은 다르다는 걸 안다. 어느 날 내 가족이 안락사를 결정하고 계획한다면 그것을 온전히 이해할 자신이 없다. 캐서린처럼 이성적인 거절조차 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으로서는 비를 이해할 수밖에 없다. <비Bea>는 어쩌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것’이 ‘죽음’이라는 사실을 느끼게 하는 것은 아닐까. 연극 <비Bea>가 전하는 것은 이해와 설득이 전부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밌다

- 무겁지만은 않은 이야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Bea>는 재밌다. 침대 위에서 미친 듯이 음악을 즐기는 비의 행동으로 시작한 이야기는 그 에너지를 지닌 채 진행된다. 그러한 에너지의 많은 부분을 레이먼드가 채우고, 그의 말과 행동이 무거운 분위기를 환기한다. 레이는 많은 말을 쏟아낸다. 등장 후 면접을 보는 장면에서도 레이는 필요하지 않은 말까지 꺼낸다. 말이 많고 욕설도 서슴지 않는 레이 덕분에 비의 편지는 이따금 잊힌다.

 

비가 그 어떤 것도 느끼지 못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비는 끝내 절망한 그 순간에도 레이를 생각하며 절망을 숨긴다. 그렇게 이어질 수 있었던 레이의 대사.

 

“설명이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비의 절망에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도 잠시, 레이의 예상치 못한 반응에 실소가 터진다. 안락사, 죽음, 삶처럼 가벼울 수 없는 것을 다루면서도 경쾌한 매력이 드러난다.

 

비의 옷을 입고 구두를 신은 채 춤을 추던 레이를 보며 즐겁기도 하면서 죽음보다 끔찍한 일을 겪는 비의 모습에 슬퍼진다. 웃다가도 울고, 아파하다가도 다시금 웃는다. 마치 우리의 삶을 닮았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 우울로 인한 자살이 아니다.


 

비의 결정은 어떠한 것에 떠밀려 택하게 된 것이 아니라 본인이 원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비의 언행뿐만 아니라 레이의 일화를 통해서 분명히 전한다.

 

레이는 소년원에 있던 시절 옆방에서 죽은 사람을 이해한 순간이 있다고 말했다. 쉽게 스스로 해할 수 없도록 조성된 환경에서 신발을 내려다보던 레이는 신발 끈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때 죽은 이를 이해했다. 그리고 동시에 그 충격이 본인을 살렸다고도 말했다. 모든 자살사고가 시도로 이어지지 않는 것처럼 모든 우울함이 죽음으로 이어지진 않는다. 모든 절망, 슬픔이 죽음으로 이어지지 않으니 스스로 결정한 죽음의 이유가 그러한 부정적 감정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비가 죽음을 결정한 이유는 우울과 절망뿐이라고 할 수 없다. 비는 때로 즐겁고 때로 무기력하고 때로 절망적으로 살아갔다. 마주한 절망 앞에서 충동적으로 결정 내린 죽음이 아니다. 과거의 레이는 살아가기로 결정했던 것이고 8년을 고민한 비는 약을 먹어 죽기를 결정한 것이다. 비의 결정이 그 어떤 것으로도 함부로 납득될 수 없도록 만든 부분이었다. 타자가 함부로 짐작할 수 없게 했다. ‘침대에만 누워있는 삶이 우울했겠지’, ‘움직일 수 없는 것이 답답하고 느낄 수 없다는 사실이 절망적이라 죽음을 택했겠지’라는 말로 넘겨짚을 수 없다. 단순히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 따위의 말로 단정 지을 수 없도록 만든다.

 

비는 충분히 이성적으로 죽음을 원했다. 그 올곧은 마음을 이해할 수밖에 없다. 비에게 죽음은 무언가로부터 도망치는 탈출구도, 해소를 위한 것도 아니다. 그에게 죽음이란 진정한 자유를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 비는 죽음 이후에야 침대 밖에 발을 디디며 자유를 만끽한다. 비의 공간을 이루던 방의 벽이 사라지고 나타난 들판을 뛰노는 비. 죽음으로써 비로소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만끽하는 비의 모습에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

 

오른쪽 벽을 장식하던, 수없이 반짝이던 귀걸이가 참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그 823개의 귀걸이가 거지 같다던 비의 말이 잊히지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예쁘지만, 누군가에게는 거지 같을 수 있다. 그것은 귀걸이도, 삶도, 죽음까지도 마찬가지다. 타인의 귀걸이와 삶, 죽음을 함부로 재단할 수 없다. 본인의 것을 어떻게 할 것인지는 오로지 본인만이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죽음에 관한 결정의 이야기. 연극 <비Bea>는 삶의 끝을 정한 자가 들려주는 죽음의 이야기다.

 

 

[박서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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