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같은 하늘 아래 같은 시간 속에서 [문화 전반]

글 입력 2022.07.08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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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2009년 나의 라디오 연대기가 정식으로 시작되었다. 나이 차가 많이 나는 형제 관계로 남들보다 신문물을 쉽고 빠르게 접했다. 작은 오빠는 내게 ‘두시 탈출 컬투쇼’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추천해 줬고 그때부터 나의 라디오 인생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사실 내게 라디오는 익숙한 존재다. 학원 갔다가 돌아왔을 땐, 저녁 준비를 하며 라디오와 함께 깔깔 웃는 엄마의 모습을 볼 수 있었고 나도 엄마 곁에서 라디오를 듣곤 자연스레 광고 음악을 따라 부르기까지 했다.

 

가족 인원수가 많아 항상 북적였을 거라는 주변 사람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나는 집에 혼자 있는시간이 많았다. 바쁘신 부모님과 학업으로 바쁜 언니, 오빠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주말과 저녁에만 북적이는 집이 평일 오후에는 조용한 것이 낯설고 무서워 사람들의 활기찬 음성이 들리는 라디오를 크게 틀어놓았다.

 

 

 

시작은 달콤하게


 

2008년 즈음, 처음 라디오를 들었던 시절에는 스마트폰이 없었다. 나는 PMP와 전자사전을 대동해 라디오를 들었다. 오후에 듣는 라디오는 피곤에 찌든 허물을 벗게끔 해주었고, 자기 전에 듣는 라디오는 사연이 너무 즐거워 밤잠을 설치게끔 했다.

 

생방송으로 듣지 못한 라디오는 다시 듣기 버전을 다운로드해 듣기까지 했다. 나와 동시간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어떤 하루를 보내고 있는지, 얼마나 웃긴 사연을 겪었는지 아는 게 흥미로웠다.

 

 

 

생방송의 묘미


 

라디오란 본연 생방송의 묘미가 있다. 생생함과 방금 내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는 순간성, 나와 동시간대를 살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게 즐거웠다. 라디오 사연은 어른들이 많이 보내기 때문에 나는 미래에 어떤 직업을 가진 어른이 될까 상상하기도 했다. 동시에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가장 좋아했던 시간은 청취자와 통화할 때이다. 청취자는 자신의 목소리가 전국에 퍼진다는 떨림과 자신이 평소에 듣고 있었던 DJ와의 대화할 수 있다는 설렘이 그대로 내게 다가왔다. 듣고 있는 나도 덩달아 긴장되고 웃겼다.

 

 

 

라디오와 함께한 학창 시절


 

학창 시절은 라디오로 시작해 라디오로 끝났다고 볼 수 있다. 내게는 공부할 시간은 많았고 라디오 들을 시간은 없었다. 뭘 들으면서 공부하면 공부 못한다는 말이 있는데 나는 자연스레 공부를 못하는 대표적인 아이가 되었다. 초등학교 때는 영어 단어를 외우며 라디오를 들었다. 당연하게 주어진 영어 단어를 외우지 못해 항상 학원에 남아서 단어를 외우고 집에 갔다.

 

이는 중학교 때도 이어진다. 시험기간 전 자율학습시간이 주어지면 가방에서 전자사전을 꺼내 수학 문제를 풀며 라디오를 듣기 시작했다. 오전 시간에는 시사와 노년층을 위한 채널이 다수였기 때문에 정오 이후에 시작하는 라디오들을 기다렸다. 정오 이후에는 청취자 연령층이 한층 어려지고 오후의 햇빛에 걸맞게 DJ들이 생동감 넘친다. 친구들이 연예인에 꿰고 다닐 때 나는 라디오 편성표와 주파수를 꿰고 다녔다.

 

고등학교 때도 마찬가지다. 야간자율학습이 폐지되면서 야간자율학습을 원하는 소수의 학생들만 자습실에서 공부를 했다. 그때도 놓치지 않고 저녁 시간대의 라디오를 즐겨 들었다. 저녁 시간대는 사랑과 감성이 넘치는 시간이다. 어른들의 사랑 이야기에 공감하기도 했고, 나의 20대는 어떨지 기대하며 점점 어른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생각에 구체적으로 꿈을 꾸었다.

 

대학교에 올라와서 어딘가에 살고 있을 사람의 생동감이 잊히기 시작할 즈음에 자취를 시작하며 다시 라디오를 듣기 시작했다. 적적함과 아침을 깨워주는 생동감, 등교 준비를 하면서 들려주는 시사 이야기들.

 

*

 

이제 라디오는 내게 시곗바늘 없는 시계가 되었다. 어느 광고가 나올 때쯤에 내가 어디에서 무엇을 해야 하고, 집에 나가야 함을 간접적으로 알려준다.

 

나의 라디오 연대기를 돌아보니 어렸을 때는 손에 대지도 않았던 라디오를 지금은 즐겨 듣고 있고, 과거 즐겨 들었던 라디오에는 흥미가 떨어졌다. 항상 라디오를 들으면서 광고가 너무 많고 듣기 싫은 노래를 억지로 들어야하는 것에 실증이 났는데 팟캐스트가 보편화되어 더 많은 라디오를 광고 없이 내가 듣고 싶은 부분만 골라서 들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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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수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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