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중요한 건 예술이야. 그게 우릴 지켜주는 거지” [영화]

<마네의 제비꽃 여인-베르트 모리조>
글 입력 2022.06.27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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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꽃의 꽃말은 “나를 기억해 주세요”다. <마네의 제비꽃 여인-베르트 모리조>의 마지막에 자신의 동생과 결혼할 베르트에게 마네는 ‘제비꽃과 부채’라는 그림을 선물하는데 미술평론가 이주은 교수의 책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해》는 모리조와 제비꽃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마네에게 있어 모리조는 정말로 여리고 귀여운 제비꽃 같은 여자였다. 스승과 제자였고 마네의 그림 속 화사한 모델이기도 했으며 때로는 앙증맞은 여자친구이기도 했다. 마네를 무척이나 따르고 존경했던, 그리고 이미 결혼한 마네의 곁에 어떤 방식으로든 머물고 싶었던 소녀는 결국엔 마네의 모습이 느껴지는 다른 남자와 결혼했다. 마네 동생의 부인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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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보니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을 상징하는 표현으로 그림이 읽혀진다. 그림을 받은 베르트의 표정에서 다양한 감정이 느껴진 장면이라 기억에 남는다. 실제로 마네와 베르트가 어떤 관계였는지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당사자들 뿐이겠지만 ‘제비꽃과 부채’에서 연애소설 한 편이 뚝딱 그려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영화는 프랑스 인상파 최초의 여류화가인 베르트 모리조와 에두아르 마네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쳐 나간다. 두 사람의 불분명한 관계가 사랑으로 부각되어 그려진 경향이 있다. 이야기 초반에서 베르트는 명화를 모사하는 아마추어 화가의 느낌이 강했다면 마네를 만나고 시간이 흐르며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확립한 화가로 점차 성장하는 모습이 보인다. 마네를 만난 25세부터 마네의 동생과 결혼을 결정하기까지 7년 동안의 이야기가 영화에 녹아 있다.

 

당시 베르트는 ‘여성’으로서 거의 불가능했던 미술 살롱과 전시회에 빠짐없이 참가하며 모네, 르누아르, 드가 등 뛰어난 인상파 화가 그룹에서 주도적으로 활동했는데 그 내용까지는 담겨 있었더라면 당시 미술계 이야기를 훨씬 더 풍성하게 느낄 수 있을 텐데 아쉬운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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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미술학교 입학도 불가능했던 시대였다. 하지만 베르트와 그의 언니 에드마는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난 덕에 풍경화가 코로에게 그림을 배우며 평생 결혼하지 않고 화가로 살 것을 맹세할 정도로 그림에 열정을 보였다. 이러한 배경 덕에 자매가 사회적으로 차별 받고 있는 느낌을 강하게 느끼지 못할 줄 알았으나 루브르 박물관에 방작을 하러 간 장면에서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마네와의 첫 만남 장면이기도 했는데 마네는 벽에 걸린 수많은 작품을 가리키며 여기에 여자들이 그린 그림은 하나도 걸려 있지 않다고 말한다. 이는 여성을 소외시키는 당대 미술과 권력의 실태를 보여준다.

 

여성에게는 남성이 전부가 되는 시기였다. 결국 평생 화가로 살겠다던 맹세를 져버리고 베르트의 언니 에드마는 결혼을 선택한다. 당시 사회의 요구에 굴복한 것이다. 결혼한 에드마의 표정과 이를 바라보는 베르트의 반응을 통해 사랑을 기반으로 한 결혼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결혼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보이는 베르트에게 마네가 ‘결혼은 평화’라고 반박하는 모습은 당대 사회제도가 여성에게 부과하는 ‘자연스러운’ 역할이 아내와 어머니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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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계의 이단적 반항아이자 천재인 마네조차도 나이가 찬 여성의 결혼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을 보며 당대 사회에서 미술과 성에 대한 편견이 얼마나 뿌리깊게 박혀있는 지 알 수 있다. 언니까지 시집을 가버리자 베르트에게도 결혼에 대한 압박이 가해지는데 이에 굴하지 않는 태도가 인상적이다. 결국 과거와 현재를 통틀어 보아도 여성이 특정 분야에서 경력을 쌓고자 한다면 어느 정도 탈관습적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술계에서 성공하고, 계속 성공적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것이 가족에 대한 반항이든 사회에 대한 반항이든 어떤 경우에도 흔들림 없는 마음이 필요하다.

 

그래도 유복한 가정환경과 훌륭한 동료인 마네를 곁에 둔 베르트는 운이 좋았다. 마네에게 배우고 본인만의 색채를 찾아가는 베르트를 보며 창의성이란 천재성, 또는 재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제도적이고 교육적인 지원을 통해 길러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결국 작품의 제작이란 미술가 개인의 발전, 그리고 작품의 결과물 모두가 사회적 상황 속에서 형성된다는 사실을 무시할 수 없다.

 

예술적 결과물은 개인의 천재성 이전에 개인의 지능과 재능이 상황에 따라 어떻게 결합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전통적으로 미술 제작은 기법과 기술, 순서를 익혀야 한다. 가정에서의 가르침은 한계가 있어 제도적 환경의 도움도 필수적이다. 각종 도상학적 의미와 모티프가 가진 상징적 어휘에도 익숙해져야 한다. 이러한 필요조건 속에서 베르트의 이름이 미술사에 남았다는 사실에 분명 남성 작가와 주변의 조력이 작동했다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러한 인상주의 화단에서 살아남았다는 것은 그녀가 분명히 유능한 여성 작가였음을 객관적으로 입증하는 사실이다.

 

<마네의 제비꽃 여인: 베르트 모리조>의 관람 포인트는 내용 뿐만 아니라 영상미에서도 찾을 수 있다. 19세기 후반 프랑스 사회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소품과 다양한 의상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특히 부드러운 색감이 눈에 띄었는데 영화 비하인드를 찾아보니 미술의 색채와 질감을 살리기 위해 디지털 방식을 거부하고 필름으로 제작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최근에 배운 20세기 이후 페미니즘 미술을 복습하다 보니 이러한 제작 기법이 이성과 기계, 기술로 대변되는 남성 이미지에 대한 여성 감독의 반발로 느껴졌다. 배운 만큼 느끼는 것 같다.

 

번역된 영화의 제목은 마네’의’ 제비꽃 여인으로 베르트 모리조라는 존재 이전에 마네라는 남성 작가를 부각시키는 것 같아 아쉬움이 남지만 내용적인 면에서 베르트의 내면을 잘 담아낸 점이 특별하다. 영화는 베르트가 인상파를 이끄는 화가로 성장하는 과정을 스크린에 풀어놓는다. 예술가로서 그녀의 고뇌는 심오하다기보다는 오히려 친근하게 느껴진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분야가 다를 뿐 그녀와 비슷한 고민을 하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베르트는 끝없이 그림을 그렸지만 나는 나만의 능력을 알고 이를 세상에 기여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이것저것 많이 시도했다. 박물관에서 도슨트를 하며 내가 재밌게 말하는 것에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학원에서 영어 강사로 학생들을 가르칠 때는 쉽게 설명하는 재주가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문화예술 플랫폼에서 에디터로 일하는 지금은 내 생각을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기술을 발전시키는 중이다. 베르트는 그림을 그렸고 나는 말하고 쓰는 중이다. 나만의 재능을 발견하기 위해서 말이다. 또한 베르트가 마네를 동경하는 동시에 질투하고 사랑하는 모습에서도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나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는 뛰어난 누군가를 보는 마음은 인간이 다 동일한 것 같다.

 

결국 영화에서 보여주고자 한 바는 자신만의 화풍을 찾기 위해 치열하게 그림을 그린 베르트의 행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마네다. 마네는 그녀에게 긍정적인 자극이자 영감이다. 그동안 마네의 뮤즈나 동료 화가로서 주목받던 베르트의 축소된 평가는 명작 뒤에 숨겨진 이야기를 통해 다시 재조명 될 기회를 얻는다.

 

<마네의 제비꽃 여인>을 통해 미술가로서의 여성을 생각할 때 ‘자연스럽다’는 전제를 의심하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것을 자연스럽다고 받아들이는 것은 치명적이다. 베르트는 당대의 결혼제도와 성, 미술계 내에 존재하는 권력을 의심하고 꿈을 위해 행동했다. 당대 사회의 흐름을 따랐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평상적인 것들은 본래 자연스러워 보이는 법이다.

 

영화 내용과는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지만 베르트를 보며 졸업을 얼마 남기지 않은 지금, 새내기 시절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2018년, 대학을 입학할 당시 국내외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는 ‘페미니즘’이었고 여성들의 중심인 이화에 들어오는 것이 겁이 나기도 했다. 여성학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고 페미니스트가 아닌 극단적인 여성우월주의자들을 보며 괜히 페미니즘에 대한 반감을 가지기도 했었다. 특히 공학이던 고등학교에서 느꼈던 ‘남자들과 있을 때의 즐거움’이 그리웠다는 사실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이 즐거움은 내가 그들의 잠재적 여자친구로서 얼마나 매력 있는 존재인가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오는 짜릿함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비판적 시각 없이 흘러가는 대로 살던 그 때는 남자들과 있을 때의 내 모습을 좋아했다. 하지만 이는 그들의 시선과 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한 채 꾸며진 모습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여자’로 여겨지던 공학에서 ‘학생’으로 남을 수 있는 지금, 진정한 자유를 느낀다. 베르트 모리조의 인생은 ‘진정한 나’로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된다. 사회적 관습과 부모님의 강요로 결혼할 상대를 찾는 언니 에드마에게 베르트는 이렇게 말한다. “중요한 건 예술이야. 그게 우릴 지켜주는 거지.” 나를 지키는 건 결혼, 남편, 가정이 아니라는 것, 스스로의 존재를 부정당하지 않고 스스로를 보호하고 독립적이며 주체적 정체성을 확인하게 하는 것을 베르트는 예술에서 길을 찾았다. 이를 내 삶에도 잘 적용시켜 여성이 아닌 한 명의 사람으로서 꿈을 위해 행동하고 싶다. 또한 이 과정에서 누군가의 무엇이 아닌 독립적인 주체로서 가감 없이 나를 드러내고 온전히 평가받을 수 있는 시대를 꿈꿔본다.

 

 

[신유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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