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기후비상사태 : 리허설>은 디바이징 연극이자 다큐멘터리 연극이다. 디바이징 연극이란 텍스트를 기반으로 하는 기존의 연극 방식이 아닌, 소재를 중심으로 여러 요인들을 합쳐 만든 공동창작 작품으로서 포스트모던한 연극이다. 다큐멘터리(documentary) 연극은 그 일환으로 공식 문서, 사진, 증언 등의 자료를 기반으로 역사적 혹은 동시대적 사건들을 다루는 형식의 연극을 말한다. 본 극은 ‘기후 위기’를 주제로 이와 관련된 다양한 내용들을 다루고 있다.

‘리허설’이라는 제목처럼 지구가 기후 위기로 멸망하기 1분 전으로 되돌아가본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저명한 인사들의 연설, 저명한 학술지의 연구 결과 등 수많은 기후 문제와 관련된 것들이 나열된다. 그리고 기후 문제가 자본주의와 연결되어 극이 진행된다. 여러 가지 사실들과 자료들을 이용해서 이것들을 ‘기후 위기’라는 하나의 주제로 묶고, 이것에 관한 개인의 경험이나 생각을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c) 국립극단

기후 위기를 ‘Black Elephant(검은 코끼리)’라고 이야기한다. 검은 코끼리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을 알고 있지만 모른 척하면서 해결하지 않는 문제를 말한다. 즉, 무분별한 환경파괴로 인한 기후 변화가 큰 위기로 다가올 것을 알면서도 모두가 외면한다는 것이다. 무대 위의 배우들도 말한다. 기후 위기 중요한 것도 알겠고, 문제인 것도 알겠는데 와닿지 않는다고. 자신만 그러냐고. 아마 대부분 공감할 만한 이야기이지 않을까 싶다.

산업혁명의 결과물로 만들어진 현대사회에서 환경오염은 가속화되고 있으며, 우리는 기후 위기로 인해 인간이 멸종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수없이 많이 들으며 생활하고 있다. 최근 정부에서는 플라스틱 및 일회 용기 줄이기 캠페인을 적극적으로 실시하고 있으며, 그 일환 중 하나로 카페 매장 내에서 일회용품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기후 위기를 조금이라도 막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해야' 한다. 하지만 사실 기후 위기는 일상생활에서 그다지 감각적으로 가깝게 느껴지지 않으며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단지 개인의 생활에서 의식주 같은 기본적인 생활 요건이 훨씬 더 가깝고 중요하게 여겨질 뿐이다.

“나는 왜 유류세 인하로 인한 주유비를… 인류세 인하로 읽었을까?” 이 말이 반복되며 기후 위기는 자본주의와 결부된다. 우리의 성장은 기후 위기를 가속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장 또는 성공하기 위해서는 남들보다 빠르게 나아가야 하며 절대 멈춰 서는 안된다. 수많은 물건들이 생산되고 버려진다. 이것과 관련해서 광주 서구 화정아이파크 붕괴 사건, 가덕도 신공항 사건 등 현실에서 벌어진 사건이 나열된다.

작가로 변한 배우는 기후 위기 연극 대본을 쓰기 위해 직접 이 사건의 현장에 발을 딛는다. 기후 위기와 자본주의가 결합되자 더 많은 것들이 우리의 삶 속으로 들어온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ESG 경영과 ‘그린(Green)’을 강조한 상품 판매 등에 대해 논의가 이어진다. 기업이 선두에 서서 환경을 망치고 있었는데, 기업이 환경을 다시금 아이템화하여 돈을 벌고 있는 모순된 상황을 지적한다.

“우리는 그 죽음을 연료 삼아서 살았고,

이제는 그것 때문에 우리가 죽게 될 거라고.

그게 화석연료라고. 난 화석을 연료로 쓰는지 몰랐어.

… 난 내가 죽음을 연료 삼아서 살고 있는지 몰랐어”

하지만, 우리는 소비자로서 기업이 만들어낸 수많은 물건들을 자연스럽게 소비함으로써 삶을 영위했고, 환경 파괴의 주범이라는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과연, 우리는 환경을 위해 성장을 멈춰야 하는 것인가? 끊임없이 성장하는 사회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환경을 지키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일까.

(c) 국립극단

본 극에서는 암전과 특정 어구가 계속해서 반복된다. 암전이 반복되는 것에 있어 연출의 인터뷰를 인용해 보고자 한다. 본 극이 진행되는 동안 수차례 암전이 진행된다. 그리고 그 암전은 다른 극들과 달리 짧고 빠르게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꽤 오랫동안 진행된다.

 

전강희 드라마투르그 | 보내주신 대본에서 ‘암전 장면’이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암전은 공연이 시작되기 직전의 상태로, 어떤 연극을 보게 될지 기대도 하고, 살짝 긴장도 하게 되는 그런 시간이잖아요. 그런데 이 연극에서는 인류가 다 죽고 난 후의 암전, 비극이 시작된 상황의 비유 등등으로 읽혔어요.

 

전윤환 연출 | 지금은 불을 꺼야 하는 절망적인 상황이죠. 어떤 불을 꺼야 한다는 감각이 극장 안에서는 암전으로 만들어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전력이 끊기거나 끊어야 하는 상황을 극장 언어로 치환한다면 암전 상태이지 않을까. 연극에서 극적 대전환이 필요할 때 암전하고 전환하는 것처럼요. 그렇다면 실제 세상의 암전은 무엇이어야 하는 걸까. 다음으로 넘어가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와 같은 고민을 감각의 차원에서 나누고 싶어요. (이하 생략)

 

- 프로그램 북 ‘작/연출가의 인터뷰’ 중

 

이처럼 하나의 큰 하위 주제가 변환될 때마다 암전이 사용된다. 그리고 관객으로 하여금 지금까지 본 장면과 주제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한다. 이때 배우들이 이렇게 물어본다. “도대체 이 많은 사람들은 어둠 속에서 무엇을 믿고 움직이지 않는 걸까?” 이 말을 듣는 순간 관객으로서 암흑 속에 가만히 앉아있으면서 전혀 불안해하지 않는 필자의 모습은 어떤 믿음에 의해서인 것인가에 대해 고찰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부분은 곧 팬데믹으로 인해 문을 닫은 극장으로 연결되는데, 이 지점이 기후 위기와 직접적으로 어떤 연결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었다. 우리가 겪은, 아직도 겪고 있는 코로나19라는 팬데믹 또한 기후 위기의 일환이며, 기후 위기를 우리가 가장 가깝고 직접적으로 신체적으로 겪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자 한 것일까?

다큐멘터리 연극인만큼 수많은 소재들이 병렬적으로 사용되고, 이것을 하나로 취합하는 것은 관객의 몫으로 남게 된다. 그리고 지구를 위해 자신은 어떻게 행동에 변화를 이끌어 낼 것인가에 대한 답 또한 관객 스스로 찾아야 할 뿐 아니라 스스로 결심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다큐멘터리 연극은 막을 내리고 나서도 관객과 함께 공존하며 끊임없이 관객의 삶과 가치관에 영향을 끼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기후 위기에 대한 본 연극은 심각한 기후 위기에 직면한 현 상황에 있어 의미를 가진다. 다큐멘터리 연극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무대 위에 서는 배우들이 1인칭 화자가 되어 자신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본 연극에 있어서 모든 배우들의 역할이 ‘작가/나’라고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작가의 이야기를 대변하고 있다는 느낌이 주고 있어 아쉬움이 남았다.

덧붙여 필자가 관람한 공연은 수어 및 한글 자막 제공을 하는 회차였다. 이에 수어 통역사가 배우와 항상 함께 등장하였고, 두 명의 수어 통역사가 배우들과 함께 움직이며 무대 위에 존재했다. 이렇게 더 많은 사람들이 제한 없이 자유롭게 공연을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방식들이 시도되어 예술이 누구에게나 평등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