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오늘의 모든 죽음을 위해 [사람]

오늘 죽은 노동자들을 가슴 아프게 새기며
글 입력 2022.05.26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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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플랫폼을 통해 알게 되어 찾아간 SNS 계정은 죽음으로 가득했다. 사망한 사람의 숫자와 그 사람이 사망한 날짜 그리고 간단하게 언급된 죽음의 이유. 그리고 그 사람들은 다름 아닌 '노동자'였다.

 

우리는 하루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목도하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듣게 될까. 그리고 그중 노동자들의 죽음은 얼마나 많은 수를 차지할까. '오늘 일하다 죽은 노동자들' 계정과 매일 올라오는 뉴스들을 비교해 보고,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비교해 보자. 우리가 알고 있는 죽음은 극히 소수이고, 수많은 뉴스에 올라오는 죽음조차 하나의 죽음을 반복할 뿐이다.

 

오직 당사자들만의 일로 남겨졌던 노동자의 죽음이 하나의 SNS 계정을 통해 수면 위로 올라왔다. 오직 노동자들의 죽음을 기록하기 위해 만들어진 계정은 모든 사람들이 그 죽음에 관심을 기울이길 바란다. 그리고 그 관심이 사람들 간의 연대를 만들어내기를 바라고 있다.

 

 

 

노동자는 누구인가


 

지난 19일.

 

53일간의 굶주림이 끝났지만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체중이 20kg 빠지고, 몸 안의 장기는 망가졌다. 그에 어쩔 수 없이 굶주림은 멈췄지만, 싸움은 그 이후로 60일째 계속되고 있다.

 

자신의 몸이 망가지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싸운 것은 다름 아닌 사람들의 관심을 위해서였다. 지난해 일을 하다 죽은 노동자의 숫자는 얼마나 될까. 무려 529명이다. 하지만 기록된 죽음만 529명일 뿐, 기록되지 않은 죽음이 더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앞서 이야기한 노동자들의 죽음을 기록하는 계정이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도 '정말 이렇게 많나요?'라는 이야기였다고 한다.

 

우리는 알지 못하는 것에 관심이 없다. 관심이 없다면 찾아보지도 않는다. 자기 자신이 노동자일지라도 말이다.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노동자는 정말 몸으로 일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다. 하지만 사전에서 나와 있듯이 노동자란 직업을 가리지 않는다. 자신의 노동력을 제공한다면 그 사람이 바로 노동자이다. 불과 몇 달 전 누군가는 과로사로 숨졌다. 그리고 이에 대한 관심은 누가 바라기라도 한 것처럼 빠르게 사그라들었다.

 

우리는 2018년부터 주 52시간 근무제를 실시하고 있다. 사람들은 그 실효성에 대해서 논하지만, 노동자들이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한 아주 작은 방패이다. 이것에 기대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것마저 빼앗는다면 그들을 지킬 수 있는 건 무엇이 있는 걸까.

 

'오늘 일하다 죽은 노동자들'을 운영하는 사람의 인터뷰를 보면서 몸을 굳게 만들었던 것은 "지금이 영상을 보는 노동자들은 오늘 죽지 않은 노동자들"이라는 말이었다.

 

 

 

오늘 일하다 죽은 노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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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고 있는 지금(5월 24일), SNS 계정에 올라온 게시물은 2건이다. 즉 24일 일을 하다 사망한 노동자는 2명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본인은 이 게시물을 보기 전 두 죽음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당사자가 아닌 이상 한 노동자의 죽음은 그저 텍스트와 숫자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계정을 운영하는 사람의 바람처럼 하나로 연대한다면, 한 노동자의 죽음은 모든 노동자의 슬픔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직업이 있는 이상 모두 노동자다. 또한, 결과적으로는 노동자가 되기 위해 10년이 넘는 교육과정을 밟는다. 그렇게 노동자가 되고, 그 끝이 죽음이라면 우리는 죽기 위해 노동자가 되는 것일까. 지난해 취업준비생은 무려 86만명이었다. 이들이 바란 것은 직업을 갖는 것이지 텍스트로도 남지 못하는 죽음이 아닐 것이다.

 

EBS에서 방송되는 위대한 수업이라는 프로그램에 리하르트 프레히트가 나와 노동에 대한 이야기한 것을 보았다. 그가 말하기를 노동의 본래 모습의 첫 번째는 자기실현이었다. 노동을 통해 자기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최대한 발휘하는 것이다. 그러나 노동의 의미는 점점 남들이 하니까 하는 것으로 변해갔다고 한다. 이 변화에는 노동 환경이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기대도 할 수 없게 만드는 환경들 말이다.


우리는 버릇처럼 다음 세대를 위한다는 말을 한다. 그러나 우리에게서 희망을 찾지 못한다면 다음 세대에도 희망은 없다. 그저 끊임 없이 희망이라는 허상을 쫓을 뿐이다. 이것이 우리가 오늘 일하다 죽은 노동자들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이며, 우리가 연대해야 하는 이유이고, 우리가 먼저 희망을 찾아 행복해야 하는 이유이다.


모든 사람들이 오늘 죽은 노동자를 기억하고, 추모하고, 같이 슬퍼하기를 바라고 싶다.


 

내일 죽을 노동자는 내가 될 수도 있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우리 가족이 될 수도 있단 말이에요.

각자의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찾아보고

비참한 현실을 바꿔나가는 일에 같이 연대하셨으면 좋겠습니다.

 

- 크랩과의 인터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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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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