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혼자 산다는 것 [문화 전반]

글 입력 2022.03.13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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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자취 2년 차에 접어들었다.


이제는 아무도 없는 공간의 적막을 깨며 늦은 밤 더듬더듬 스위치를 찾아 켜며 집에 들어가는 일도 제법 익숙해졌다.


재작년 이맘때쯤 나는 자취를 시작했다. 1년간의 휴학이 끝나고 복학과 개강, 자취, 그리고 장거리 연애까지. 완전히 다른 생활의 시작이었다. 애인은 혼자 자게 될 내가 외롭겠다고 했지만 나는 홀로 텅 빈 집안에 돌아와 짐을 담았던 종이 박스들을 내버리며, 그리고 고요한 가운데 노트북을 두드리며 내가 이 홀로됨을 얼마나 사랑하게 될지를 일찍이 깨달았다. 그렇게 혼자 잠든 첫날은 마치 여행지에서의 잠자리처럼 묘하게 설레었다.


달콤한 자유가 시작되었다. 야심한 시각에 집에 들어가도, 해가 중천에 뜨는 시각에 눈을 비비며 일어나도 아무도 뭐라 할 사람이 없었다. 밥을 안 먹어도, 내가 먹고 싶은 것만 먹어도, 야식을 먹어도 마찬가지였다.


자취를 시작하며 처음으로 요리란 걸 하게 되었다. 워낙 해본 적도 없고 덜렁대는 성격이라 몇 번이나 손을 베기도 했지만, 나를 위한 밥상을 차리는 일은 생각보다 즐거웠다. 무엇보다 내 식단을 내가 온전히 선택할 수 있어 본격적으로 채식을 하기 시작했다. 요리를 할 때면 나 자신이 <리틀 포레스트>의 주인공이 되었다고 상상하기를 즐겼다. 혼자지만 씩씩하게 꿋꿋하게, 건강한 밥상을 차려 먹는 주인공처럼 살고 싶었다.


혼자 살아보면 집안일이 그야말로 얼마나 끝이 없는지를 알게 된다. 예를 들어 한 끼를 차리면, 요리한 주방의 뒤처리를 해야 하고, 먹고 난 후에는 식탁을 닦아야 하고, 설거지를 해야 한다. 설거지를 하고 나면 식기들을 정리해야 하고, 음식물 쓰레기를 치워야 한다.


집안을 적어도 더러워 보이지 않게, 어제와 같은 상태로 현상 유지를 하는 데에만 해도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든다. 혼자 사는 집도 이 정도인데, 4인 가족이 함께 사는 집을 관리하는 건 어느 정도일까 생각해보면 절로 한숨이 나온다. 일본 드라마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라는 드라마에서 남자주인공과 여자주인공은 집안일을 공식적인 노동으로 보고 그 가치를 책정하여 계약을 하는데, 그 모습을 보며 꽤나 합리적이라고 생각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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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혼자 산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을 때는 따로 있다.


자취를 하면서 나의 덤벙거림을 몇 번이고 다시 마주하게 되는 순간이 있었는데, 나는 컵을 많이도 깨버렸다. 몇 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하루는 가장 자주 쓰던, 매일같이 커피나 차를 담아 마시던 머그컵을 깼다. 없는 살림살이에 또 컵을 깨버린 나를 자책하며 깨진 잔해를 치우고 있자니 문득 조금 처량해졌다.

 

나는 어릴 때부터 물을 잘 쏟고 그릇이나 컵을 잘 깨곤 했다. 덕분에 함께 식당에 간 엄마의 바지는 마를 날이 없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나는 여전히 컵을 깨 먹고 있지만 달라진 게 있다면 이제는 깨진 잔해를 치우고 바닥을 걸레로 닦고, 남은 유리 조각이 없는지 꼼꼼히 바닥을 살피는 일도 온전히 내 몫이 되었다는 것이다. “위험하니까 저쪽에 가 있어”라고 말해주던 어른은 이제 없다.


며칠 전에는 갑자기 많이 아팠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고 오한으로 몸이 떨렸다. 그날 하루는 배달로 시킨 죽을 먹고 종합감기약을 복용하고, 다시 자고를 반복하며 집에서 푹 쉬었다. 다음 날 상태는 다행히도 좋아졌고, 혹시나 해서 해본 신속항원검사의 결과도 음성이었다.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 아직도 조금 지끈거리는 머리와 무거운 몸을 이끌고 하루 동안 어지럽혀진 방을 치우고 밀린 설거지를 할 때, 널부러진 배달 음식 쓰레기와 빈 약병들을 모아 버릴 때 그때 비로소 혼자 산다는 것, 혼자 선다는 것의 의미를 알게 된다.


*

 

어른이 된다는 건 무엇일까?


많은 대답들이 존재한다. 술을 살 수 있게 된다는 것, 투표를 할 수 있게 되는 것, 뒷좌석에만 앉다가 운전대를 잡게 되는 것, 교복 입은 학생들이 그저 예뻐 보이기 시작하는 것, 세뱃돈을 주는 사람이 된다는 것. 모두 그럴듯한 대답이다.


예전에 <나이트인더우즈>라는 게임 스트리밍을 보다가 주인공 메이가 “엄마 저 20살이에요.”라며 다 컸다는 어필을 하자 “그래. 그건 감옥에 갈 수 있는 나이라는 뜻이란다.”라고 대답하는 부분이 있어 크게 웃었던 기억이 난다. 메이 어머니의 요는 성인이 된다는 건 커진 자유만큼 그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한다는 것이다.


혼자 살림을 꾸리면, 온전한 생활의 자유를 누리면 나는 조금 더 어른이 되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했다.


확실히 나는 혼자 살며 그간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다. 그러면서 나의 어떤 부분은 성장했고 동시에 어떤 부분은 죽었다. 아니면 적어도 어린 나는 그 자리에 두고 뒤돌아 걸어 나가야 했다. 그걸 알게 되는 순간순간이 조금은 서글펐다.


*

 

작년에 나는 혼자 자취방에 살고 있을 때 1, 2차 백신을 맞았는데, 매번 부모님께서 먼 길을 올라오셨다. 나는 팔이 조금 아픈 것 외에는 멀쩡했고, 철없는 딸은 내 공간의 고요함이, 평온함이, 자유가 깨지는 게 왜 그리도 싫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그만 어서 내려가라고 잔뜩 짜증을 부리고서 부모님이 모두 떠난 뒤에 냉장고에 채워진 반찬이며 과일들을 볼 때 그제서야 그 감사함을 알게 되는 나는 과연 얼마나 성장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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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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