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랑은 타이밍인가? [미술/전시]

Love is all about timing
글 입력 2022.01.29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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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아. 사랑은 진짜 타이밍이다!”

 

타이밍 문제로 시작도 못해봤던 사랑과, 기가 막힌 타이밍에 등장해 아무 장애물 없이 시작할 수 있었던 연애를 하면서 입이 닳도록 외치던 문장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뻔하게 강조하는 ‘타이밍’을 지루하다고 생각했었다. 한 발자국 차이로 어긋나는 주인공들, 서브 남주인공을 응원할 때마다 어디선가 어김없이 나타나는 눈엣가시 같은 메인 남주인공. 뻔하다 여겼는데 역시 개인의 특수성 앞에선 모든 뻔한 일들이 무력화된다.

 

막상 내 일이 되고 나니 지루하긴 커녕 최고의 타이밍을 찾느라 심장이 쪼그라들어 말라버리는 줄 알았던 날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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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때문에 전시가 궁금해졌다는 친구를 데리고 엘리펀트스페이스 재개관전인 [사랑은 타이밍이다]를 감상하러 갔다. 친구가 최근 ‘적당한 타이밍’에 좋은 사람을 만난 터라 재밌게 즐길 수 있을 것 같아 골랐다. 더불어 (조금 씁쓸하지만) 사랑에 빠진 사람과 ‘사랑비수기’인 나 사이 감상의 차이도 궁금했다.

 

한 눈에 작품들이 다 보이는 작은 전시장에서 시선을 빼앗은 작품은 분홍색 철제 트레이 위 거대한 씹던 껌 같은 분홍색 뭉텅이였다. 교정할 당시 치과에서 자주 보던 알지네이트가 그 재료였다. 입 안에 분홍색 찰흙을 마구 쑤셔 넣던 기억이라 썩 유쾌하진 않았지만 나름 반갑기도 했다.

 

치과에서 본을 뜰 때 사용하는 알지네이트는 시간이 지날수록 딱딱하게 굳는 성질이 있어 굳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수시로 물을 뿌려 촉촉한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이는 관객의 몫이다. 관객은 하트가 굳지 않게 철제 선반에 놓인 분무기를 뿌려줘야 한다.

 

그래서 작품 이름이 “우리노력” 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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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트는 이미 물기로 촉촉한 윤기를 띠고 있었다. 하트가 놓인 선반이 흥건했던 걸 보니 꽤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뿌린 후였다.

 

그 위에 내 수고도 더했다. 이미 촉촉한 상태인 알지네이트에 물을 뿌리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싶었지만, 분무기의 물이 떨어지자 바닥의 물이 일렁였다. 새로운 노력이 지나간 노력에도 영향을 미치는 순간이었다.

 

물을 뿌리다 보니 구석구석 물이 닿지 않아 건조한 상태인 하트의 굴곡진 부분들을 발견했다. 꼼꼼하게 수분을 더해주고 빈틈없이 윤기가 나는 하트를 보며 ‘내가 이렇게 섬세하다’고 자찬하며 으쓱했다.

 

하지만 하트는 언젠가 마를 것이다. 누군가 꾸준히 살펴주지 않는 이상 딱딱하게 굳어버릴 거다. 물론 타이밍 좋게 섬세한 관리인을 만나 두고두고 굳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이걸 보니 노력도 타이밍이다.

 

적절한 타이밍 속 노력의 과정 끝에 우리 사랑이 있다. 그래서 사랑의 형태는 늘 가변적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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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정말 사랑은 타이밍일까?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신에 의해 예정된 것이고, 따라서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게 일어나는 것이라면 사실 타이밍이라는 단어는 의미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생각하기에는 우리에게 주어지는 선택의 기회가 너무 많다. 그래서 적어도 운명이란 게 있더라도 바꿀 수 있다고 믿기로 했다. 그리고 이렇게 믿는 이상 타이밍은 꽤나 중요한 요소인 게 틀림없다.

 

SNS에 그 사람이 좋아할 법한 영화를 올리고, 혹시나 다시 볼 수 있을까 갔던 전시를 또 가곤 했다. 설마 하는 마음에 약속장소를 굳이 한 시간도 넘는 거리인 그 사람이 사는 동네로 잡았다가 정말 우연히 길가에서 마주치는 일도 있었다. 단지 얼굴을 보기 위해 정말 작은 확률도 지나치지 않는 것, 그게 내 노력이었다.

 

알지네이트가 굳지 않게 계속 물을 뿌렸던 것처럼 꾸준히도 노력했던 시간이었다. 이걸 모르는 친구들은 아직까지도 ‘와 정말 타이밍이 기가 막혔다’ ‘운명이다’라고 말하곤 한다. 우연을 노력하면 운명이 된다. 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은 ‘매 순간이 타이밍’이라는 거다.

 

사실 ‘적절한 타이밍’이라는 게 어떤 건지 모르겠다. 아마 영영 모를 수도 있다. 그저 내가 선택한 타이밍을 최고로 만드는 수밖에 없는 일이다. 실패한 첫사랑도, 좋았던 연애도, 임팩트 없이 흘러갔던 연애들도 전부 시기 적절한 사건이었다. 그리고 나는 운 좋게 그걸 그때 당시에도 알고 있었다. 어찌됐든 확실한 건, 사랑은 가만히 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왕 하는 거, 매 순간이 타이밍인 것처럼 사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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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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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  
  • 조누피
    • 사랑해요!
    • 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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