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처음의 비망록-손석희의 저널리즘 에세이 '장면들' 1편 [도서/문학]

손석희 앵커만이 열 수 있는 새로운 장막을 기대하며
글 입력 2022.01.23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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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 양말이 눈에 띄었다. 장목의 그것이 조금 흘러내려 주름이 잡힌 것을 보아하니 중력에 단련되다 못해 익숙해진 고정 기능이 신축성에 압도되었으리라. 혹자의 양말을 유심히 지켜볼 일은 없거니와 스튜디오 데스크 위 가지런한 두 손이 가장 동적이라고 감각했기에 카메라를 응시하지 않고 여타 사람들처럼 타인과 대화를 이어가는 그의 온전한 두 발이 아무런 막힘이나 가려짐 없이 장면으로 담긴 것은 내가 기억하는 또 한 번의 처음이다. 그러므로 나에게만큼은 손석희는 천생 뉴스(News)다. 이를 깨닫게 해준 손석희 앵커와 북토크(Book Talk) 시간을 마련해준 출판사 창비에 대한 감사를 표하며 비망록을 쓰려 한다.

 

예전과 같은 화면에서 그를 볼 수 없게 되었지만 슬퍼하지 않으련다. 당대에서 신뢰할 만한 언론인과 공존하여 안도하는 만큼 시청자로서 냉철함을 잃고 수동적으로 앵커의 말에 수긍하게 되는 타성에 젖을 무렵이었으니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여태껏 접한 말과 글은 대부분 그로부터 파생되었다. 영아기부터 청소년기 중반까지는 문화방송 <손석희의 시선집중>과 함께했고 이십 대 초반 말석을 지키는 현재 그의 행보가 종합편성채널의 도약기를 견인했음을 목도하며 그간 누려온 순로에서 벗어나 산재하는 언론에 대한 의심에 내 것도 보태야 하므로 손 앵커의 부재가 이기(利己)의 관점에서 더 철저한 안타까움은 부정하지 못하겠다.

 

평범하지만 지극히 낯선 단상들에 부딪혀왔고 불가항력으로부터 견뎌온 궤적으로 그의 몸집은 부단히 커졌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좁은 장내에서 구획의 기준을 알고 싶을 만큼 더 넓은 곳으로 나아감은 마땅하다. 최소한 누구나 신을 법한 양말이 그에게서 달리 보이기에 더욱 응당하다. 그의 후광은 그림자를 드리우지 않는다는 특별함이 뇌리에 깊이 내재되어 있어서가 아닐까. 그래서 환상 동화적 존재가 되어버린, 그 자체만으로 뉴스 소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반복적으로 유념하면 그에게서만 들을 수 있는 이야기를 들을 차례다. 나에게만큼이 아니라 독자인 당신에게도 처음일 이야기. 이미 그래왔음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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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분의 1


 

 

“이미 레거시 미디어(매스미디어라고 해도 된다)의 저널리즘적 가치가 흔들리고 무너지는 상황에서 이 보도는 또 하나의 화두를 던진 셈이었다. 우리가 원칙이라 부르는 전통적 저널리즘은 아직도 유효한가?” 『장면들』, 2021, 창비, 131면.

 

“미디어가 지속적으로 화두를 던지면 시청자들은 이를 서로 주고받으면서 네트워킹을 하게 된다. 이것이 JTBC 「뉴스룸」이 지향하는 것이다. 때로는 지루하다는 인식도 있어서 반성하고 있다. (중략) 모든 것이 빨리 바뀐다고 해도 저널리즘이 미래적 가치로 지켜야 할 것이 어젠다 키핑이다." 『장면들』, 2021, 창비, 73면.

 

“인터뷰와 토론이 선거 저널리즘의 가장 좋은 방법론이라는 것은 이미 오래전 「손석희의 시선집중」과 「100분토론」을 맡았을 때부터 깨달은 것이었다. (중략) 그렇게 축적된 경험들은 2002년은 물론 그 이후의 모든 선거 국면에서 왜 인터뷰나 토론이 어젠다 키핑에 효과적인 방법인지를 알게 해주었다." 『장면들』, 2021, 창비, 152면.

 

 

1%의 확률에 불과하다는 표현은 시청자로 하여금 통상 매우 낮은 가능성을 인식케 한다. 반대로 백분율 기호를 지우고 확률을 1 앞에 명시하면 이는 항상 발생함을 의미한다. 뉴스는 반드시 일어날 법한 일과 드문 일이 점철된 인간사를 비춰 보는 거울이다. 전통적 저널리즘은 비교적 최근까지 의제 설정의 불연속성을 중립이란 명목으로 고수해왔다. 매일 전국 각지로부터 온 각각의 소식을 내보내는 것은 어쩌면 중립을 이루는 공평의 하나였을지도. 그러나 우리는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오늘이 과거를 추인하고 이로써 내일이 결정되기도 하는 연속성의 시차를 마주하고 있음으로 양산되는 정보 가운데 중요한 의제를 지켜낸다는 손 앵커의 어젠다 키핑(Agenda Keeping)은 오래 기억해야 할 공정(工程)으로 중립의 공정함에 안착한다.

 

단 1%의 확률이라도 진실의 이면이 실재할 가능성이 있다면 작금의 방송사는 수요를 증명하는 시청률의 1%를 포기해서라도 내막에 집중해야 한다. 이제는 가공과 추상을 의미하는 메타(Meta)의 시대이며 가상현실(VR)이 현실의 실체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텔레비전의 지상파와 종편 방송사는 정보의 양적 한계로부터 자유로운 디지털 플랫폼의 양면성을 활용해야 한다. 온라인 문화 속 숨겨진 사실을 발굴하는 이른바 역주행은 정보의 소비자들이 어젠다 키핑에 동참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를 뉴스에 적극 적용하면 재론을 거듭하여 올바른 공론화의 기준을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이로운 통신의 새로운 지평이 그저 역성의 장(場)에 그치지 않도록 100분의 뉴스룸이 노력했듯이 지리멸렬한 사안들을 하나의 상관관계 속에 깊게 머금는 편이 전통적 저널리즘의 구제책일 것이다.

 

전술한 내용의 전제는 주관 없는 중도는 없다는 것이다. 정보의 유통이 활성화될수록 정론의 정의에 대한 각축이 거세져 그 어떤 방송사도 프레임(Frame) 논란을 피해갈 수 없다고 전망하는 나도 방송 주체의 관점이 시청자에게 여실히 전이되는 일을 용인하지 않을 것이다. 한편 개념이라고 일컫기엔 복잡다단한 논리의 중추가 흔들릴수록 심층 보도에 대한 갈증이 심해짐을 느끼고 있노라면 "적어도 사실관계가 틀린 것이 아니라면 사안을 바라보는 관점은 모두의 이익에 좀 더 가까이 가는 것이 옳다"는 손 앵커의 시선에 좀 더 머무를 수밖에 없다. 그가 견지하는 ‘합리적 진보’에는 문제로 삼을 만한지 경중을 고려하는 합리적 태도와 현상을 변화시키는 추동력 그리고 반론을 포용할 만한 이해와 인간적인 배려가 서려 있다. 단 1%의 확률이 결정짓는 선거에서 인터뷰와 토론으로 그의 저널리즘은 더욱 저력을 발휘했다. 형식이 아닌 실질로.

 

 

*다음주 월요일에 2편이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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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하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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