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양미숙과 함께 생생한 어른으로 살아남고 싶다 [영화]

영화 <미쓰 홍당무>, 찐따들에게 보내는 편지
글 입력 2022.01.07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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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찐따 같은 면면이 많은 사람이다. 울기도 잘 울고, 삽질도 잘한다. 고백했다 차인 이력만 수 십 번이고, 부끄러운 말실수도 잘한다. 무엇보다 그런 나의 과거들을 성실히 들여다보고, 한참을 곱씹는다. '그때 왜 그랬지'는 내 삶의 몇 없는 테마 중 하나다.

 

그래서 예전에는 담백한 사람들을 부러워하기도 했다. 무슨 일을 하든 과장되지 않고, 무던하게 일상을 사는 사람들. 살면서 단 한 번도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을 것만 같은 침착함을 겸비한 사람들.

 

그러나 요즘은 다르게 생각한다. 나의 부끄러운 과거들이 쌓이고, 쌓여 시간이 아주 많이 흐른 뒤 그때를 생각하면 당시의 내가 너무나도 생동하다.  뜨겁고, 투명한 한 시절처럼 느껴진다. 그런 내 모습이 귀엽고, 웃기고, 사실 조금 좋다.

 

부끄러운 기억이 오래가는 이유는 찐따적 면모의 남다른 깊이 때문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생생하게 우리 삶에 각인되는 기억들은 솔직하고, 통통 튄다. 종종 '흑역사'가 되기도 하지만 그럼 어떤가, 이렇게나 생생한 기억을 품고 사는 것만큼 커다란 자산은 없다고, 그렇게 내 찐따적 면모를 합리화해본다.

 

 

 

양미숙의 찐따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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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에서 찐따 같고, 사랑스러운 면모를 가득 품은 인물들을 만날 때면 힘찬 기운이 샘솟는다. 오늘도 조금 더 힘을 내 유쾌하고, 솔직하게 살아봐야지 다짐하게 되기도 한다.

 

영화 <미쓰 홍당무>의 '양미숙'은 찐따가 되기 위해 힘을 내는 사람처럼 보인다. 하루하루 한 뼘씩 더 찌질해지기 위해 패달을 밟는 사람처럼 매일 열심히 흑역사를 생성한다.

 

그런 양미숙이 참 좋다. 차원이 다른 삽질과 놀라운 사건 진행으로 관객들을 두 손 두 발 다 들게 만든다.

 

 

 

아이들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어른들의 서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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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쓰 홍당무>의 배경은 학교다. 그리고 아이들의 공간인 학교에서 어른들의 서사시가 펼쳐진다.

 

어른들이 '학교'라는 공간에서 공유하는 펄펄 끓는 감정은 낯설면서도 신선하고 기분 좋다. 단조로운 일상의 탈피를 넘어, '학교'라는 무대에서 어른들이 다 같이 공연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영화 속 어른들의 에피소드는 모두 어른들만이 공유하는 별거 아닌 서사일 뿐이다. 양미숙은 피부과 병원에 갈 때마다 피부과 원장 선생에게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을 말하곤 했다. 그리고 피부과 병원이 사라진 것을 눈앞에서 확인한 미숙은 이렇게 말한다.

 

 

"이걸 언제 다시 다 말하냐."

 

 

그녀의 망연자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별거 아닌 서사가 미숙에게는 별거 아닐 수 없다는 걸 보여준다.

 

나는 매주 초등학생 아이들을 만나 그들에게 국어 과목을 가르쳐주는 일을 한다. 초등학생 아이들은 옆 반의 누가 누구를 좋아하고, 옆 반의 누가 누구에게 고백했다는 이야기로 수업 시간 두 시간을 꽉 채워 떠들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그들에게는 남의 연애 사건조차 그들의 일생을 좌지우지할지도 모르는 커다란 사건처럼 받아들여지는 모양이다. 나는 아이들의 그런 모습을 '귀엽다'라고만 생각한다. '귀엽다'고만 생각해서 아이들의 연애 사건을 별거 아닌 일로 만들어 버린다.

 

아이에게 별것인 일이 어른에게 별거 아닌 경우는 많다. 어른들의 삶이 아이들의 삶보다 생동감이 부족하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그러니까 <미쓰 홍당무>를 보고 "별것도 아닌 일에 왜 저래"라고 생각하는 어른들은 생동하게 펄떡이는 날것의 감정을 공감할 수 없는, 너무도 단단하고, 낭만 없는 어른이 되어 버린 것은 아닐까.

 

 

 

종희 같은 친구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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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미숙에게 서종희는 좋은 친구다. 둘은 여러 프로젝트를 함께 한다. 서로를 도덕적이지 않은 방향으로 이끌기는 하지만 늘 옆자리를 지켜준다. 종희에게도, 미숙에게도 서로에게 그들이 필요했겠다는 생각이 든다.

 

미숙과 종희는 '고도를 기다리며' 연극 무대를 오랫동안 준비해왔다. 그렇게 준비한 무대에 오르기 전, 서종희는 무대 뒤에서 양미숙의 손을 꽉 붙잡아주며 이렇게 말한다.

 

 

"선생님은 다 괜찮은데 왜 그러세요!"


 

시종일관 자기 자신을 부끄러워하는 양미숙에게 서종희는 아무렇지 않게 크나큰 위로를 전한다. 우리의 찐따력은 대부분 많은 순간, 소수의 이들에게는 쉽게 용인된다. 찐따력을 다 들킨 뒤에도 내 옆에 있는 이들이 있다. 그들과 그냥 그렇게 친구 하며 살면 된다.

 

 

  

생생한 어른으로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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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쓰 홍당무>는 찐따들에게 보내는 편지 같은 영화다. 나는 가끔 양미숙처럼 찐따력을 가미한 행동으로 낭패를 본다. 대부분은 양미숙처럼 행동은 하지 않고, 속으로만 품고 있다가 내가 찐따라는 사실을 자각한다.

 

양미숙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까지 낭패를 보기를 택하는 사람이었다. 용기와 끈기가 대단하다. 공효진의 사랑스러움이 더해져 양미숙의 끈질긴 구애와 삽질이 귀엽게 느껴졌다. 우리는 공효진이 아니라는 사실에 주의하며, 조금은 양미숙처럼 행동해도 되지 않을까.

 

오늘도 양미숙처럼 생생한 어른으로 살아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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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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