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희망에게 힘을 실어주는 사람

김인규 에디터를 만나다
글 입력 2024.01.18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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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글을 읽는다는 건 그 사람의 내면과 맞닿은 지점들을 살피는 일이다. 글을 읽는 독자의 상황과 그 지점이 일치하는 순간 ‘공감’이라는 감정이 고개를 내민다. 공감하는 글을 찾기란 퍼즐 조각을 맞추는 것과 같아서, 좀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표면적인 공감 말고, 내면까지 깊게 파고드는 일종의 뾰족한 공감 말이다.

 

대부분의 글은 일방적인 편이라, 그 건너편의 독자를 굳이 끄집어내려 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어느 제품의 사용 설명서만 봐도 그렇다. 딱딱한 언어로 보는 사람을 경직되게 만든다. 인터넷을 보다 보면 많은 글을 읽게 되는데, 참 다양한 감정이 밀려온다.

 

왜 썼는지 모를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들로 모호한 반응을 이끌어내는 글도 있고, 정리되지 않은 문장으로 읽는 사람을 피곤하게 하는 글도 있다. 하지만 우연히 만난 어떤 글은 마치 내 마음을 적어놓은 것처럼 온전히 빠져들게 했고, 저자의 다른 글 또한 읽고 싶은 마음이 들게 했다.

 

김인규 에디터의 글을 읽다 보면, 그의 글이 아니라 ‘우리’의 글을 읽고 있는 것만 같다. 늘 화면 너머에 있는 독자들을 생각하는 그의 마음을 몇몇 글에서 찾아볼 수 있었기에. 앞서 말했던 뾰족한 공감을 가진 글이자 독자를 헤아리는 따스한 아량이 드러나는 느낌이랄까.

 

어떻게 하면 나의 글을 풍성하게 채우고 매끄럽게 다듬을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가지고 있는 나와는 조금 다른 결이 느껴졌다.

 

그렇기에 그의 이야기와 현재의 고민들이 더욱 궁금해졌다.

   

 
안녕하세요, 김인규 에디터님. 24기 에디터 김민지입니다. 에디터님을 오프라인 모임에서 처음 뵈었지만 제대로 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없어 아쉬운 마음에, 이렇게 인터뷰라는 좋은 기회로 똑똑 문을 두드려 봅니다. 인규 님의 세계가 궁금해졌달까요. 진솔하고도 즐거운 이야기로 채워질 시간이 될 것 같아요. 모쪼록 긍정적인 회신 기다리겠습니다. 잘 부탁드려요. :)
 

 

좋은 기회가 생겨 똑똑 문을 두드렸고, 다행히도 그는 인터뷰 요청에 긍정적인 화답을 해주었다.

 

맑고도 추웠던 어느 겨울날, 수원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아낌없이 들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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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안녕하세요, 이렇게 만나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자신을 표현하는 색깔과 함께 자기소개를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글 쓰는 김인규이고요. 저를 소개하는 단어가 많지만 오늘은 그냥 글 쓰는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싶어요. 최근에 사람의 본심이나 진심 혹은 본모습에 관련된 대화를 한 적이 있었어요. 사람이 살다 보면 되게 많은 모습이 있잖아요. 이런 모습이 있고 저런 모습이 있고, 어느 누구와 만났을 때 내가 또 다르고. ‘내 진심은 뭐고 나는 어떤 사람이지?’에 관한 이런 대화를 했었는데요.

 

저는 사실 그 전부가 다 나라고 생각해서 정해진 본모습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그 모든 게 저인 것 같아요. 그 순간 순간에 내가 있고, 오늘은 그중에서도 글쓰는 사람의 면으로서 저를 소개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좀 했고요. ‘글 쓰는 사람’이 비록 제 전부는 아니겠지만 여전히 저를 잘 보여주는 어떤 면이라고 생각해요.

 

저를 소개하는 색으로는 보라색을 골랐습니다. 왜냐하면 좀 신비로운 느낌이 있다고 할까요. 색을 따뜻한 색 차가운 색이라고 나눌 때가 가끔 있잖아요. 보라색이 항상 그 중간쯤 속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도 좀 그런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어느 부분에서는 되게 냉정하지만 어느 부분에서는 되게 따뜻하려고 하는 부분이 저에게도 있거든요. 그런 모순된 저의 모습들이 잘 섞여 있는 색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가끔 나로부터 빠져나와서 멀리서 나를 바라보면, 엉망진창이지만 그래도 살고있다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이러다 진짜로 좋은 날도 있겠지. 나도 내가 뭐가 될지 모르겠지만 뭐라도 하다보면 내가 찍어놓은 점들이 자기 맘대로 살아 숨쉬고 연결되는 순간도 있을 것이다. 인생은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하는 롤러코스터, 내려가는 시기를 잘 보내야 더 좋은 날을 기대할 수도 있다.
 

 

Q. [자꾸만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사람]이라는 글을 통해 인규 님을 처음 알게 되었어요. 위의 구절 말고도 ‘나는 기억하기 위해 글을 쓴다. 잊지 않기 위해 글을 쓴다. 그건 역설적으로 비로소 잊을 수 있는 조건이 된다.’라는 문장이 기억에 짙게 남았는데요. 인규 님에게 글이란 무엇인지, 글을 쓰시는 원동력이 무엇인지 궁금해요.

 

저번 인터뷰에서도 한번 말한 적이 있지만 문화예술은 다양한 형식과 표현 기법을 가진 언어라고 생각해요. 다양한 방식으로 저의 마음을 솔직하되 너무 노골적이지 않게 표현하는 수단인 거고요. 최근에 글에 대한 생각들을 좀 많이 하는데, 그중에 하나는 약간 배설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가지고 있는 감정의 고리들을 꺼내와서 되새김질하고 씹고 삼키는 과정들도 있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글이더라도 마음에 들지 않는 감정이더라도 그냥 이렇게 흘려보내는 의미라고 할까요. 어떻게 보면 마음에 변비가 생기지 않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글이라는 게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역할들을 해야 한다고도 생각하지만, 자신의 마음을 정화하기 위해서 써내려가는 글도 충분히 의미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곤 했어요. 엄청 대단한 것을 하고 싶은 욕구도 있는 반면에 그냥 내가 지금 이 시기에만 쓸 수 있는 글이 있다고 믿거든요. 돌아보면 내가 쓴 글이지만 내 마음 같지 않을 때가 있고, 나는 이제 이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느껴질 때도 있고요. 근데 그걸 지금의 눈으로 봤을 때 고치려고 들기보다는 그때 그 순간이어서 쓸 수 있는 글이라고 여기는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생각들이나 고민들을 글의 형태로써 풀어나가고 그저 기록해 두는 것 자체가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대단한 걸 쓰고 싶지만 대단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래서 요즘에 저의 글들은 좀 일기장에 많이 가까운 면이 있는 것 같고, 언제나 대부분 나의 삶을 버티기 위해서 쓰는 글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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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음의 시차를 생각한다. 다만 어긋나버린 것이 아닌, 조금 다른 시간에 도착해버린 마음들에 대하여. 시차를 두고 전달되는 마음에 대하여.
 

 

Q. 최근에 기고하신 손편지에 관한 글을 인상 깊게 읽었어요. 인규 님의 글을 읽으면서 어쩌면 스쳐 지나갈수있는 보통의 감정들을 따뜻하고 섬세한 시선으로 표현해주신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인규님이 생각하는 본인의 글은 어떤 분위기인지 여쭤보고 싶어요.

 

스쳐가는 보통의 감정이라고 하셨지만 사실 저에게는 스쳐 지나가지 않는 감정일 때가 많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못박아두는 행위이기도 하고요. 저는 제 글이 약간 ‘조화’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화분에 담겨 있는 가짜 꽃이죠. 그러니까 표면에 전시되어 있는 감정이나 이런 톤들은 어떻게 보면 가짜일 수도 있지만, 저는 가끔씩 제가 되고 싶은 모습을 그려놓고 글을 쓰거든요.

 

나는 이렇게 밝고 희망적인 사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실은 누군가에게 정말 듣고 싶었던 그 말들을 글이라는 방식을 통해서 쓰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나 자신을 대상화 해놓고 글을 쓰곤 하는거죠.

 

그래서 밖으로 전시되어 있는 모습은 내 마음보다는 내가 되고 싶은 모습에 가까울 때도 있어요. 그 화분 안에 다른 미생물도 살고 지렁이도 살고 하는 것처럼, 그 속에 슬픔과 우울이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표현할 수 있는 희망들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 글이 화분 안에 담겨 있는 조화 같은 분위기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 봤어요.

 

그리고 하나 더 말하자면 제 글이 재미있는 글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우울함, 그리움이 항상 기저에 깔려 있는 글이라서 재밌게 읽을 수 있는 글은 아니다라는 생각을 항상 해요.

 

제가 쓴 글 중에 <기억해볼만한 장면>이라는 에세이가 있어요. 내 글은 항상 왜 이 모양이지? 왜 이렇게 항상 우울하고 이렇게 슬픈 글들밖에 못 쓰지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제 좋았던 내 삶에 좋았던 장면들을 한번 찾아서 나열해보자 라는 마음으로 쓰기 시작했던 글인데 그것도 비슷한 톤이 되긴 하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나의 스타일이기도, 나의 본체이기도 하고 제가 만들어 오려고 노력했던 것이기도 하고 그렇기에 사랑하는 부분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한계이기도 한 느낌이에요. 앞으로는 좀 재밌는 글을 쓰고 싶어요.

    

저도 사실 에디터님과 정말 비슷한 생각인데, 희망차고 밝고 읽기만 해도 왠지 기분이 좋아지는 글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그런데 저도 모르게 글을 쓰다 보면 항상 결론은 우울함, 불안함으로 귀결되는 느낌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방금 말씀 주신 부분에 정말 공감이 됐던 것 같아요.

최근에 만났던 분이 본인은 자기 자신의 음악을 들으면서 사람들이 좀 위로받기를 바랐었는데, 요즘에는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좋은 사람, 밝은 사람, 행복해 보이는 사람 옆에 같이 있으면 같이 행복해지는 것처럼 사람들이 위로도 받을 수 있겠지만 나를 보면서 함께 행복해 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하셨는데요.

 

제가 거기서 ‘그럼 우리가 먼저 더 행복해야겠네요’라는 얘기를 했거든요. 그게 중요한 것 같아요. 저도 남들에게 행복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고, 그러려면 내가 좀 더 잘 살아야 되겠다 이런 마음도 항상 있는 것 같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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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2020년의 한 인터뷰에서, ‘부끄럽지만 글에서만큼은 조금 더 솔직해져보고 싶어요.’라는 말씀을 하셨어요. [일기장]이라는 제목의 에세이 두 편을 쓰기도 하셨고요. 지금은 어떠신가요, 조금 더 솔직해진 것 같으신가요?

 

진짜 많이 솔직해진 것 같아요. 최근에 제 글들을 보면 아마 아시겠지만 그 당시에 하고 있는 생각들을 좀 많이 담아내려고 노력하고 있고요. 인터뷰했던 그 시점이 20년도 3월이죠, 제가 에세이를 쓰기 시작했던 때였을거예요. 아마 그전에는 그런 글이 하나도 없었을 거예요. 항상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쓰거나 어떤 문화 현상에 대한 이야기를 항상 쓰려고 노력했는데, 그때를 기점으로 이제 나에 대한 이야기를 좀 꺼내놓기 시작했던 것 같달까요. 사실 편하게 쓰는 글이죠.


지금도 분석하는 글, 비평하는 글 많이 쓰고 싶은데 좀 어렵다고 해야 될까요? 여러 번 읽고 깊이 있게 읽어야 된다라는 부담감도 있고, 누군가가 만든 콘텐츠에 대해서 말을 얹는다는 게 전보다 더 조심스러워진 부분들이 있어서요. 왜냐하면 저도 뭐 쓰고 만들고 하니까 잘 봐주고 싶다라는 마음도 있고요. 좋은 얘기만 해주고 싶다기보단 정확하게 봐주고 싶은 욕망이 있기 때문에 그러려면 정말 여러 번, 깊이 있게 봐야 하는데 그만한 시간과 노력을 쏟는 게 좀 어렵기도 하고요. 쓴다는 것 자체가 좀 부담스러운 날도 있는 것 같아요.

 

하나 더 얘기하자면, 콘텐츠를 그냥 보는 게 좋을 때가 있는 것 같아요. 음악하는 사람들도 취미일 때는 좋았는데 일이 되면 그거를 그렇게 못 즐긴다고 하더라고요. 분석을 하려고 하다 보면 내가 처음에 좋았던 감정들을 잘 정리된 형태로 표현하고 정리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지만, 언어의 한계라는 게 분명히 있기 때문에 그 언어를 포획하는 동안 사라지는 어떤 설명되지 않은 감정들이나 그 외의 것들이 휘발되는 게 좀 안타깝더라고요. 걱정 없이 오롯이 즐겼을 때만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이 있어서 그런 마음에서 요즘은 더 솔직한 마음들을 풀어나가려고 하고 있지 않나 싶어요. 근데 이제 다시 쓰려고요. 공부하면서 쓰려고요.


   

Q. 지금까지 아트인사이트에 100편이 넘는 글을 써오셨어요. 그 중 가장 애착이 가는 글이 있다면요?

 

정말 어려운 질문이네요. 이게 글이란 게 다 내 새끼 같은 거라서 그렇죠. 어느 날은 너무 사랑스러워 보이다가 이제 어느 날은 미워 죽겠고. 아마 다들 글 쓰시는 분들이라면 공감할 테지만 아트인사이트에 수정이나 삭제 기능이 있었다면 아마 어느 날 모든 글들이 없어져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래서 좀 고민을 해봤는데, 저는 제가 쓴 사랑에 관련된 글들을 참 좋아해요.

몇 편이 있거든요. <사랑으로 살자>, <어쨌든 사랑>, <가망 없는 희망에 대처하는 법> 등등. 최근에 쓴 글 중에도 첫사랑 관련된 글도 있고 찾아보시면 한 대여섯 개 될 거예요. 그 글들을 되게 좋아하고 그중에서도 좀 고르자면 <어쨌든 사랑>이라는 글을 오늘은 말하고 싶네요.


되게 좀 불가해한 순간들이나 어쩔 수 없는 순간들이 종종 있잖아요. 우리 삶에 있어서 알면서도 그럴 수밖에 없는 찰나도 있고, 어딘가를 향해 나아가야 되는 그런 막막함에 대한 이야기들이 있잖아요. 그런 마음들과 그런 순간들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 썼던 글이었고, 제 글이 항상 저는 그래야 된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저도 어떤 고민이 될 때 그 글을 읽을 때가 있거든요.

 

우리가 지향해야 하지만 닿을 수 없는 어떤 것들에 대한 것들에 다가가려는 노력이 지레 포기해버리면 아무 의미없는 것이 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걸 향해서 시간과 마음을 쏟고 노력하기 때문에 우리가 사는 삶이 의미가 있는 게 아닐까요? 

 

저는 그렇게 믿는 사람들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나간다고 믿기 때문에 그런 마음들과 그런 순간들에 힘을 실어줄 수 있어야 하는 게 글이 해야 하는 역할이라고 생각해요.어떻게 보면 잘 안 되겠지만 안 되니까 해야지 하는 마음이랄까요. 근데 그건 제가 잘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니까요.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서 차를 엄청 사고 싶어 하는 인물이 나오는데, 그 얘기를 하거든요. “내가 차를 사고 싶어 하는 건 내가 차를 살 수 없다는 반증이다. 내가 편의점에 가서 음료수 사듯이 그냥 차를 살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차를 사고 싶다는 생각을 안 할 거다. 근데 나는 차를 사고 싶어 함으로써 차를 가질 수 없는 사람이라는 걸 증명하는 거다.” 이런 뉘앙스의 이야기를 하는데, 어쩌면 내가 추구하는 지향점들도 다 그런 게 아닐까 싶을 때가 많아요.

 

노력하는 마음들에 힘을 실어주고 싶지만 사실 가장 쉽게 절망하고 슬퍼하고 고민하는 건 나 자신이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제 글이 그런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Q. 현재 PRESS로도 활동 중이신 인규 님. 그만큼 많은 문화 예술을 접하셨을 텐데요. 다양한 문화 예술 장르 중, 각별히 애정 하는 분야가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저는 잡식을 하는 편이어서 다양하게 다 보고요. 그래서 전문성은 떨어질 수 있지만 각각이 왜 재밌는지 알고 있고 왜 중요한지 정도까지는 알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 다양한 문화예술 콘텐츠가 할 수 있는 표현 기법에 관심이 많고, 그게 트랜스 미디어 스토리 텔링 되면서 어떤 식으로 변하며 어떤 차이점이 있고 같은 서사와 맥락을 어떤 기법을 통해서 표현하는가에 대한 관심도 되게 많은 편이에요.

 

예를 들어 단편 소설은 돌이킬 수 없는 어떤 삶의 시점에 그어지는 파열음을 포착해서 보여주는 장르이고, 시는 어떤 형식적인 파괴나 형식적인 구조물을 통해서 하고 싶은 말들을 좀 다른 방식으로 전달하는 형식인 거고요.

 

애니메이션 같은 경우에는 프레임 단위까지 다 보통 게임처럼 진짜 자연스러운 건 60프레임, 일반적으로 쓰는 게 한 30프레임, 연출적으로 일부러 떨어뜨린다면 한 8~15프레임까지 쓰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많이 쓰면 1초에 30장 아니면 뭐 60장까지도 그림이 한 번에 지나간다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그 프레임이 아주 우리가 실제 일상생활에서 인식할 수 없는 짧은 단위까지 개입할 수 있다는 뜻인 거고요.

 

이제 영화 같은 경우에는 어떤 장면에 대한 그런 미학적인 걸 미장센이라고 부르잖아요. 또 편집해서 숏과 숏을 연결하는 장르이기 때문에 편집하는 부분에서 장면을 연결할 때, 되게 자연스럽게 티가 안 나게 연결하는 경우도 있고 일부러 부딪히게 만들어서 표현하는 경우도 있고요. 그런 조각들의 부딪침을 만들어내는 건 또 몽타주라고 부르니까요. 게임 같은 경우에는 다양한 인터랙션이 가능하기 때문에 거기서 발생하는 지점들이 흥미롭게 느껴져요.

 

그리고 같은 이야기더라도 요즘은 웹툰이 영화화, 드라마화 되는 것들도 많잖아요. 각각의 매체가 자신의 이야기를 어떤 방식으로 하는지 그런 것들에 관심이 많아요. 그만큼 다양하게 보고 싶어 하고요.

 

특별하게 한 장르에 애정이 있다라기보다는, 각각의 특징이나 차이점에 관심을 두신다는 거군요.


그중에서 그래도 하나를 꼽자면 단편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짧은 시간 안에 일상 속에서 언제든 읽을 수 있으니까. 그 파열음이 그어진 이후부터 어떻게 삶이 변해가는지를 그려내는 건 장편의 영역이지만, 돌이킬 수 없어지는 순간을 보여주는 작품이 단편 소설이라고 생각을 하는 편이에요. 솔직히 하루에 한 편 짧게 읽기도 좋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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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글을 쓴다는 건 머릿속에 있는 수많은 언어들을 조합해 지금에 맞는 문장을 만들어내는 일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가끔 이게 잘 되지 않을 때가 있어요. 저를 포함해 아마 많은 이들이 고민하는 지점일 텐데요. 인규 님께선 글이 내 마음대로 써지지 않는 상황을 직면할 때, 해결하는 방법이 있으신가요?

 

글이 마음대로 써지지 않는 건 매일이기 때문에. (웃음) 예전에 저는 손으로 필기하거나 메모하는 걸 별로 안 좋아했어요. 왜냐하면 생각의 속도가 내 손의 속도로 훨씬 빠르기 때문에, 그걸 손이 못 따라오는 동안 생각이 날아가는 게 싫었어요. 컴퓨터로 쭉 받아 적으면 생각의 흐름대로 일단 다 써내려갈 수 있는데 손으로 쓰는 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니까요. 저는 글이 써지지 않을 때 산책을 많이 해요. 공부를 할 때도, 글 쓸 때도 가만히 앉아서 하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그럴까요. 그냥 걷고 돌아다니면서 하는 거죠. (웃음)

 

결국에는 내가 하고 싶은 말과 맥락에 정확하게 맞는 문장이나 단어를 계속해서 찾아내야 하는 거 같아요. 여러 가지 단어들의 상황의 경우의 수를 돌려보고 가장 적확한, 다른 걸로 교체될 수 없는 문장과 단어를 찾아야 된다고 생각을 하고요.

 

그러려면 책을 좀 많이 읽어야겠다고 느낀 게, 한창 책을 많이 읽을 때는 그 재료가 많으니까 찾을 수 있거든요.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내가 가지고 있는 어휘와 단어 중에서 골라볼 수 있는데 이제 돌릴 수 있는 그 돌림판의 수가 너무 적어진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많이 읽어야 되는 것 같아요. 남들은 이 상황이나 이 감정을 어떤 식으로 표현하는가를 많이 봐야 하는 것 같고요. 그런 데이터들이 잘 쌓여 있다보면 언젠가 빛이 발할 순간이 오거든요.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선 좀 끈질기게 매달리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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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요즘 인규 님은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근황을 듣고 싶습니다.

 

사실 사람들이 제가 대단하고 엄청 많은 일을 하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저는 그리 많은 일을 하면서 살고 있지 않거든요. 특별할 거 없는 일상들을 살기 때문에 그냥 운동 열심히 하고요. 건강하고 행복하고 아름답게 살고 싶어서 노력하고 있고, 새해에는 저도 타인의 이야기들을 좀 많이 듣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 인터뷰를 하기로 했어요. 

 

조만간 며칠 후에 또 하나 올라올 텐데, 그리고 아마 사람들 만나러 많이 다닐 것 같아요. 또한 본격적으로 저의 거취와 해야 할 일들을 좀 진지하게 고민을 하고 있는 시기라서 제가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들을 찾아가려 합니다.


 

Q. 베이킹, 운동, 악기 등 다양한 취미로 삶을 찬란히 채워나가는 인규님. 혹시 앞으로 더욱 배워보고 싶은 무언가가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언어를 좀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에요. 지금은 영어랑 스페인어를 좀 하고 있는데 나중에는 5개국어를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그리고 문화 콘텐츠도 하나의 언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언어들의 다양한 표현 방식을 더 배우고 싶기도 하고요. 지금 하는 걸 더 깊이 있게 해서 무언가로 만들고 싶어요. 

 

내가 운동하는 것, 음악하는 것, 베이킹 하는 것, 글 쓰는 것. 이런 것들을 좀 의미 있는 무언가로 더 만들어 나가고 싶어요. 사람이 좀 깊어져야 하는 때가 있고 넓어져야 되는 때가 있다고 생각을 하는데, 최근에 저의 삶은 전역하고 좀 넓어지려고 노력을 했던 삶이었고, 이제는 좀 다시 깊어져야 될 때가 됐다는 느낌이에요. 하고 있는 것들을 잘 마무리하고, 유의미한 결과들을 만들어 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Q.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삶의 터닝 포인트가 될만한 경험이 있었다면 무엇인지 궁금해요.

 

진짜 어려운 것 같아요. 뭔가 뻔한 답을 하고 싶지는 않지만, 군 생활이 좀 컸던 것 같달까요. ROTC를 했고, 장교로 임관했고, 특전사 생활도 해보고 하면서 많은 것들을 느꼈어요. 이런 뻔한 것 말고는 결국에는 사람인 것 같아요. 저는 주변의 영향을 굉장히 많이 받는 사람이기 때문에 나를 지나온 사람도 있었고, 내가 지나쳐 간 사람들도 있었고.

 

그런 사람들이 나한테 많은 영향을 주고 터닝 포인트들을 심어주지 않았나 싶어요. 누군가에게 마음도 워낙 많이 주고, 만나면 영향도 많이 받는 스타일이라서 그런가 봐요. 제가 쓴 ‘사랑’에 대한 글들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그런 터닝 포인트들이 있었고요.

 

 

Q. 인규 님에게 2023년은 어떤 한 해였는지, 2024년에는 어떤 한 해가 되었으면 하는지 듣고 싶어요.

 

작년에 제가 12월 23일에 쓴 일기가 있거든요. 아주 짧은 일기인데 그걸 다시 봤어요. 뭐라고 적었냐면요.

   

 
너무나도 많은 것들이 변화한 23년 대체로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는지 모르겠으나 여전히 행복한 일들이 있었고 나를 좀 더 알게 된 해였다
 


그랬던 것 같아요. 진짜 많은 일이 있었어요. 일단 전역의 해였기 때문에 상반기는 군인으로서 보냈고, 하반기는 이제 군인이라는 정체성을 넘겨두고 또 다른 나를 수식할 수 있는 단어들을 찾아나섰던 시간이었어요. 그동안 트레이너 자격증 따고, 데이터 분석 자격증 따고, 제과제빵 커피 자격증 따고, 글도 더 쓰려고 하고. 그렇게 살았던 것 같아요.

올해는 장난처럼 친구들한테 얘기했던 건데 ‘건강한 정신과 아름다운 몸, 그리고 의미 있는 성과를’이라는 모토처럼 살고 싶달까요. 무슨 건설 현장 슬로건 같긴 한데. (웃음) 정서적 안정을 좀 더 많이 찾으면서 단단하고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망이 있고, 건강은 당연히 챙기고 있으니 조금 더 멋진 외면을 만들어보자는 의미예요.

 

그리고 이제는 책을 좀 하나 써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어요. 요즘 어쩌다 보니 책에 하고 싶은 말들 적어서 많이 선물하는데, 어느 날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렇게 하고 싶은 말들을 적어서 줄 거면, 내가 쓴 책을 줘도 되지 않을까. 유명해져야 잘 팔린다는 건 알지만, 뭐라도 써야 유명해지지 않나라는 생각들도요. 가능하다면 직접 쓴 ‘나’의 책을 한번 준비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그리고 어떤 직업인으로서 사회인으로서 커리어를 다시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성공적인 취업도 올해의 염원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요즘 사람 만나는 게 재밌더라고요. 원래 덕질도 잘 못하는 스타일인데 어느 세계에 관심을 갖고 그걸 깊이 파헤치고 알아가는 게 흥미로운 일이라는 걸 느꼈거든요. 그래서 좀 아까 말했지만 새해에는 인터뷰를 하게 될 예정인데, 제가 인터뷰이로서 참여하게 될 줄은 몰랐고 그래서 고마운 마음도 있어요. 더 재밌는 마음도 있고요.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행복하셨으면 좋겠어요. 앞으로의 저의 글도 기대해 주셨으면 해요. 빈번한 절망과 잔잔한 슬픔을 딛고서도 사랑받고 사랑하면서 살아가길 바라요. 다들 그런 마음에 스스로 믿음이 안 가고, 내가 나를 지지해 줄 수 없는 순간에 제 글을 찾아와 주셨으면. 그런 마음들을 저도 믿지 않으면서 무조건적인 지지와 희망을 기르는 글을 아마 쓸 테니까요. 제 글은 나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언젠가 기회가 닿아 함께 내 글을 볼 당신들을 향해 있는 것이기도 하니까요.


건강하고 행복하고 아름다우시길.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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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것들을 이야기하는 눈은 반짝거렸고, 어떤 이야기로 물꼬를 틀지 고민하는 얼굴은 보는 이로 하여금 궁금증을 극대화시켰다. 그날 만난 김인규 에디터는 글솜씨 뿐만 아니라 말솜씨도 뛰어난 사람이었다. 임팩트 없는 질문과 조금은 어색한 반응에도 그는 개의치 않았다. 

 

많은 카테고리의 이야기들을 꺼내는 데에도 능숙해 인터뷰어를 편하게 해주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가 직접 들려주었던 무수한 언어들이 한동안 내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듯 하다.

 

무언가에 다가가려는 노력이 아무 의미 없이 느껴질 때, 나도 내가 싫을 때 그의 글을 슬쩍 꺼내 먹어야지. 읽었던 글이어도 괜찮다. 다시 봐도 분명 그 어느 것보다 효과적인 약이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으니까.

 


[김민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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