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자꾸만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사람

글 입력 2023.10.10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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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새삼스레

보고싶은 얼굴들을 떠올리며 글을 쓴다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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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에는 한강에 다녀왔다. 텐트를 치고 돗자리를 깔고 누웠다. 처음이었다. 비 예보에 흐린 날씨였지만 기분은 흐리지 않았다. 처음이 주는 설렘에 상기된 얼굴을 하고 강아지가 되어 강가 풀밭을 뛰어다녔다. 곧 하늘에서 비가 쏟아지고, 라면에 빗물이 들어가 한강라면이 됐지만, 비에 다 젖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고 또 누군가가 소중해지면 같이 누워서 음악을 틀어놓고 하루종일 물멍, 하늘멍을 해야지 다짐했다.


요즘의 나는 기분 좋았던 카톡과 작은 순간들에 너무 마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마음을 다잡고, 좋아하는 책들을 다시 읽고, 졸음이 오면 ‘불안의 서’를 읽으며 페소아의 잠과 불안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는 내일도 오늘만큼 평화롭기를 당분간은 이런 안온함이 유지되기를 바라며 눕는다.


그러다 결국 잠 못 들고, 밤을 지새우고 또 날이 밝아와 아침이 오면 아침산책을 하고 커피와 간식을 먹는다. 어느 날엔 계획없는 낮잠을 자고 충분한 잠과 카페인을 빌려 다짐하고, 또 다른 밤에는 전부 다 집어던지고 싶은 충동과 우울과 피곤과 불안을 베게 밑에 넣어둔 채 무거워진 머리로 밤새 눌러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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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만족과 피곤과 우울을 재료로 일기를 쓰고, 그 속에서 피어올린 희망과 긍정을 재료로 좋은 마음을 눌러담아 블로그에 적는다. 그러고는 일기와 블로그와 메모장에서 살아남은 문장들을 긁어모아 살을 붙여 이곳에 적는다. 이 글을 보는 사람들을 떠올리며 우리가 특별한 관계가 된 것 같다는 실없는 생각을 떠올리면서.


이제는 많은 기대를 포기할 줄 알고, 이상을 꿈꾸면서도 땅에 발 붙힐 줄 알고, 누군가를 떠올리며 너무 아파하지 않는 법도 안다. 지나간 기억에 그럴듯한 꼬리표를 달아줄 줄도 알고, 내 마음대로 해석하고 마음대로 뒤섞지 않는 법도, 무던한 마음으로 두 손에 새로운 마음을 담는 법도 조금은 알 것 같다.


다들 지나간 기억들에 너무 오래 매여있지 않길. 그리고 다가올 날들이 언제나 더 좋을거라는 근거없고 맹목적인 기대에 모르는 척 힘을 실어줄 수도 있기를 바라면서 나는 자꾸만 크리스마스를 기다린다. 그런다고 해서 변하는 건 없겠지만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마음이 더 많은 것을 기다릴 수 있게 해줄거라는 예감에 기대어 영문도 모른채 산타와 루돌프와 트리를 상상한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산타의 선물같은 소식들이 찾아올거야, 루돌프의 코처럼 빛나는 무언가가 앞길을 밝혀줄 거야, 갖가지 장식품이 매달린 트리처럼 지나온 과거를 장식할만한 순간들을 알게 될 거야. 그때가 되면 통나무 모양 케이크 부쉬 드 노엘을 만들고 따듯한 초코라떼를 한 잔 마셔야지.


고작 그 정도의 기대로도 하루는 살아지는 것이었다.


나는 기억하기 위해 글을 쓴다. 잊지 않기 위해 글을 쓴다. 그건 역설적으로 비로소 잊을 수 있는 조건이 된다. 클라우드에 백업해둔 사진들은 핸드폰에서 안심하고 지울 수 있는 것과 비슷하다. 결국 한 번도 그 사진을 꺼내보지 않아도, 언제가 열화되어 사라지는 데이터가 되더라도 아프게 소중했던 순간을 포착해두는 억지는 내가 항상 부리는 것이었다.


나 외에는 볼수도 없고 아무도 관심 가지지 않는 데이터 쪼가리, 종이 위에 잉크 더미가 되어서야 놓아줄 수 있는 지난날의 환상. 지나간 순간들도 이 우주 어디선가는 떠돌아 그 나름의 시간을 가지고 아직 살아 있을 것이다. 크리스마스가 오면 산타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보내야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곳에서 오래오래 살아 숨쉴 수 있게.




고작 이 정도의 평화가 오래 지속되길



나는 요즘 별로 좋은 일을 기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일이 없으면 좋겠다. 그 좋은 일이 쉽게 지속되지 않을 거라는 걸 너무 잘 알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면 평화롭던 일상이 권태롭게 느껴지니까. 그 낙차를 경험하고 싶지 않다. 잠시라도 맛본 즐거움에는 켜켜히 쌓인 불안과 우울을 이자로 되갚아야 한다. 너무 찬란하게 피고지는 건 당분간은 좀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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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이 정도의 평화가 오래 유지되길. 얼마 전엔 누군가에게 잠시 흔들리던 마음을 겨우 제자리로 돌려두고, 낮에 오래 자고 일어나서 케이크와 커피를 마시며 그런 생각을 다시금 했다.


낮에는 이것저것 배우거나 스터디카페에서 공부를 하고, 밤에라도 잊지 않고 운동하고 공원을 뛰고 돌아오는 그런 일상. 별 일 없이 내 삶을 돌보고, 직접 구운 빵을 나눠먹을 가족과 가끔 만나는 한둘의 얼굴들. 읽을만한 책과 보고싶은 영화와 자격증 시험의 합격과 불합격. 특별할 일 없는 고작 이 정도의 평화.


 

 좋은 일은 그냥 그 자체로 두어라. 그리고 나쁜 일은 바꿔라.

 더 나은 것으로. 이를테면 시 같은 것으로

 


나는 보르헤스의 이런 격언을 신뢰한다. 그래서 내 모든 일기는 시다. 형식은 시가 아니더라도 시를 쓰는 마음으로 쓴다. 소화할 수 없는 마음들을 꺼내 새로 반죽하고 그럴듯한 것으로 바꾸려고 노력한다.


그러고 나면 박준 시인의 시집 속 화자처럼 쉽게 미열을 앓았고, 밥처럼 끼니마다 꼬박 떠올리고 약처럼 아플 때마다 곱씹었다. 그렇게 ‘당신의 이름을 지어 며칠은 먹었다.’ 한강에 비가 오는 날엔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면서, 비를 맞으며 또 당신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빌려적은 문장에 기대어 강 너머로 종이배를 띄워보냈다. 문학은 언제나 내가 빌려올 수 있는 공간이었다. 황현산 선생님의 책 제목처럼 ‘밤은 선생’이었고, 김연수 작가님의 소설 제목처럼 ‘이토록 평범한 미래’를 꿈꾸어 볼 수도 있었다. 김금희 작가의 짧은 소설처럼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 하며 점차 더 좋은 것으로, “고작 이 정도의 평화”들로 바꾸어 나갔다.




곁에 두고 싶은 일들은 멀어져 버렸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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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커피를 내리고 베이킹을 한다. 자격증도 따고 꽤 열중해 있지만, 당장 카페를 차리거나 제빵사로 취업을 할 것도 아닌 나에게 있어 베이킹과 커피는 실패를 즐기는 일이다. 다양한 변수를 조절하면서 다르게 실패해보고 최적의 결과를 찾아나가는 과정이다.


망해도 좋다. 새카맣게 타버린 빵이 나오면 또 무슨 좋은 일이 생기려나 생각하면 된다. 함께 맛보며 실패를 겪어줄 사람이 곁에 있고 우연히 만난 그럴듯한 결과에 떠는 너스레와 호들갑에 반응해줄 사람들이 있으니까. 그렇지 않은 날도 괜찮다. 분명 더 나아질 테니까.


얼마 전 크로스핏 트레이너 자격증도 땄다. 역도지도자 자격증도 나올 예정이다. 운동한다고 자주 손바닥이 까지고 쇄골과 허벅지에 온통 멍이 들어버린 내 모습을 보고 누군가 물었다. 그거 왜 하냐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어서라고 답했다. 잘하고 싶고, 내가 잘하는 걸 나누고 싶다고.  언제나 그런 마음이다. 빵을 만드는 것도, 운동을 하는 것도, 글을 적는 것도.


햇살 좋은 어느 날, 얼굴 모르는 당신들과 같이 운동을 하고 커피를 내려 직접 구운 빵과 함께 먹는 상상을 종종 한다. 지난한 불안과 잔잔한 절망과 빈번한 슬픔을 딛고 함께 먹고 마시고 몸을 움직이는 하루하루의 삶. 그리고 그런 마음을 차곡차곡 눌러담아 적는다.


가끔 나로부터 빠져나와서 멀리서 나를 바라보면, 엉망진창이지만 그래도 살고있다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이러다 진짜로 좋은 날도 있겠지. 나도 내가 뭐가 될지 모르겠지만 뭐라도 하다보면 내가 찍어놓은 점들이 자기 맘대로 살아 숨쉬고 연결되는 순간도 있을 것이다. 인생은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하는 롤러코스터, 내려가는 시기를 잘 보내야 더 좋은 날을 기대할 수도 있다.


그리고 언제나 그 과정에 당신도 함께 있으면 좋겠다. 액정 너머의 반짝이는 불빛으로 연결된 우리가 그 모든 것을 함께 겪을 수 있어 다행이다. 어떤 날은 일기와 같은 에세이로, 어떤 날은 문화예술 작품을 앞세운 오피니언과 PRESS로, 또 가끔은 이렇게 솔직한 마음으로 꾸준히 당신 앞에 서고 싶다.


우리에게도 곧 크리스마스가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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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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