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시차를 두고 전달되는 마음, 손편지

우리가 주고받은 진심에 대한 이야기
글 입력 2023.12.31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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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에는 시차가 있다


 

최근 누군가의 졸업공연에 다녀왔다. 공연시간은 저녁 7시반. 처음 가는 길이고 공연에 늦어서는 안 되니 7시까지 도착하기로 하고,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는데 넉넉하게 2시간, 근처에서 꽃다발을 사는데 30분, 또 나의 걱정 30분을 더해 3시간 반을 앞두고 집에서 나왔다.


그 말은 곧 나에게 3시간 반어치의 생각 시간이 주어졌다는 것이다. 지하철에 몸을 싣고 이동하면서 다른 무언가에 집중하기는 어려우니, 나는 에어팟을 귀에 꽂고 좋아하는 음악들을 틀어놓고 주변을 돌아보며 생각을 반복한다.


생각은 어제 먹은 식사와 지나가버린 여행계획과 언젠가 봤던 영화 내용을 지나고도 정처없이 여기저기를 떠돌다 오늘의 메인이벤트인 졸업공연으로 다시 돌아오고, 나에게도 있었던 비슷한 행사들에 갑자기 와줬던 누군가들의 얼굴과 훈련소에서 생각하지 않았던 사람에게 받았던 편지에 다다른다.


편지, 그래 편지가 있었다. 최근에는 받아본지 오래되어 까먹고 있었지만 이 세상에는 종이에 손으로 직접 글을 써서 마음을 전하는 손편지라는 문화가 있었다! 그리고 내 방 한켠에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받아온 편지를 모아둔 상자가 있다. 절절한 흑역사의 무덤처럼 보이는 종이더미에는 많은 사연과 추억이 담겨있다.

 


손편지.jpg

 

 

이제는 군에서도 핸드폰 사용이 가능하고 인터넷편지가 활성화되어 손편지를 쓰는 경우는 많지 않다. 하지만 내가 처음 후보생으로 기초군사훈련을 받을 당시에는 아직 핸드폰을 쓰지 못했고 육군학생군사학교는 신병교육대와 달리 우편만 가능한 시스템이었기 때문에 나도 종종 손편지를 썼고, 받기도 했다.


일과가 끝난 저녁시간이면 우리는 모두 두근대는 마음으로 그 날의 우편함을 기웃거렸다. 4주 남짓한 시간동안 매일같이 편지가 날아오는 동기는 주변인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고, 기다리는 편지가 오지 않는 동기들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생활관에 돌아왔다.


여자친구에게 너무 오래 편지가 오지 않거나 생각과는 다른 내용이 적혀있던 친구들은 아무래도 여자친구가 바람이 난 듯 하다며 밤새 상담을 요청했고, 지루한 훈련에서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찾은 이들은 불침번을 자처하며 조그만 후레시에 의지해 밤을 지새웠다.


나 역시 자주는 아니었으나 그 시절 만나던 여자친구에게 온 편지와 가족들의 편지를 집어들고는 의의양양한 표정으로 생활관에 들어오곤 했다. 사부작대는 모포 위에서 꾹꾹 눌러쓴 잉크로 새겨진 손편지를 읽는 순간의 낭만이란. 돌아가고 싶지는 않으나 다시 느껴보고 싶은 그런 감정이다.


그곳에서는 사뭇 진지하고 감동적이 된 가족들의 오글거리는 편지를 읽으며 약간의 부끄러움과 뭉클함을 느끼고, 나와 떨어지기를 너무 싫어하던 당시 여자친구의 힘든 편지를 읽으며 고마움과 심란함을 느끼기 일수였다. 놀릴 기회를 놓쳤으나 남몰래 눈물을 훔치던 동기들도 있었고, 새벽까지 펜을 눌러쓰며 복잡함을 숨기던 동기들도 있었다.


그 작고 집약된 공간에서 이렇듯 수많은 서사와 복잡한 감정이 휘몰아치곤 했는데, 그 사이에서 내가 발견한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편지에는 시차가 있다는 것이다. 편지는 쓰는 시간과 읽는 사람의 시간이 다르다. 오늘 쓴 편지는 우표를 붙여 보내면 며칠 뒤에나 도착하고, 지금 받은 편지 역시 며칠이 지나버린 날짜가 새겨져 있었다.


물론 카톡도 흔히 말하는 ‘안읽씹’이 가능하니 비슷한 면이 있다고 할 수 있겠지만 편지의 경우와는 결이 다르다. 손편지는 우리에게 좀 더 깊은 마음을 꺼내게 하니까. 컴퓨터로 이렇게 빠르게 타자를 칠 수 있는 세상에 손으로 꾹꾹 눌러쓰는 글씨에는 더 많은 감정이 담기기 마련이다.


 

 

마음의 시차


 

훈련을 받을 때는 밥 먹는 시간이나 잠자는 시간을 쪼개서야 겨우 한 줄의 문장을 쓸 수 있었는데, 그러다보면 앞의 문장을 쓸 때의 감정과 뒷내용을 적을 때 나의 느낌이 달라져있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게다가 미리 써놓고 부치지 못한 편지를 뒤늦게 보내려다보면 써놓은 편지가 생경하게 느껴지는 날도 있는 것이었다.


여자친구가 속상하다는 내용의 편지를 써 며칠이나 골머리를 앓던 동기는 며칠 후 겨우 그녀와 통화를 할 수 있었는데, 그 서운함의 감정은 이미 희석된 후였다. 나도 늦은 밤 감성에 젖어 가족들에게 썼던 편지를 집에 와서 발견하고는 부끄러움에 당장 구겨버리고만 싶었다.


모아둔 편지를 발견해 다시 읽는 지금은 어떤가. 그때는 몰랐던 그 사람과 나의 감정선을 발견하기도 하고 그때는 절절했던 내용이 지금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기도 했다. 순간의 감정과 마음을 붙잡아 종이 위에 붙박아두는 행위는 그 자체로 미학적이지만, 시차를 두고 전달된 상대에게 그리고 어쩌면 그 글을 쓴 자신에게도 생경하고 엉뚱한 소리가 되어버릴 수 있다.


사람은 변하고 감정은 흐르니까. 이 당연한 진실이 서럽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어쩔 수 없지. 그래도 편지를 눌러쓰던 그 순간의 진심은 분명 진짜였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내가 편지를 한 뭉치 들고 내 침대로 돌아왔던 날, 편지봉투 위에 예상치 못한 이름이 적혀있는 날도 있었다. 나를 유독 예뻐해주던 선배가 갑자기 보낸 편지도 있었고, 대학 내에서 이런저런 사건을 거치며 따로 만나거나 연락하지 않게 된 친구도 있었다. 그리고 나를 놀라게 했던 또 다른 몇 개의 이름들, 그 편지를 보낸 당신은 어떤 마음이었으려나.


날짜까지 아로새겨져 있는 편지 속 그들이 건넨 마음을 당신들은 기억하고 있을까. 한때 건넸던 우리의 진심들이 여전히 어딘가에 살아있다는 걸 알고 있을까. 그리고 그 마음들이 여전히 나를 살게 하기도 한다는 것을.


그땐 몰랐고, 이제야 발견한 마음들을 보며 내가 쓸쓸하게 입맛을 다셨다는 것도. 너는 아마 알 리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너는 이런 순간을 예견했을지도 모르지. 마음의 관계에서 더 소중하게 여겼던 쪽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있고 반대로 시야가 좁아진 쪽에서는 보이지 않는 것이 있으니까. 나도 그 두 입장을 오가면서 마음을 주고 받았으니 누군가에게는 나쁜 사람이고 누군가에는 애틋한 사람일 것이다.


나는 마음의 시차를 생각한다. 다만 어긋나버린 것이 아닌, 조금 다른 시간에 도착해버린 마음들에 대하여. 시차를 두고 전달되는 마음에 대하여.


내가 하고싶은 말은, 비록 그때와는 다른 마음이 되었어도 당신의 마음을 기억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연락하지 않는 사이가 되었어도, 우리가 서로를 할퀴고 견디다 못해 떠나갔어도, 자연스럽게 멀어져 다른 길을 걷는 사이가 되었더라도, 나는 그때의 당신들을 자주 떠올린다는 것이다.


내 인생의 한 페이지를 장식해준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꼭 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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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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