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잔해 속에서의 손짓. [문학]

한강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 & 단편소설 「작별」.
글 입력 2022.01.04 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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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에는 두 번의 조문을 다녀왔다. 죽은 자를 보내는 의식 속에 위치하는 건 매번 낯선 일이다. 몇 년 전 가까운 사람 둘을 떠나보내며 겪었음에도 여전히 장례 기간 중에는 머리가 멍해지는 종류의 둔중함 같은 게 자리한다. 세상을 떠나는 게 작별일까. 거기에 별다른 의심 없이 작별이라는 말을 붙일 수 있는 걸까.

 

인사를 채 나누지 못하고 멀어지는 건 작별이 아니라 일종의 망실 아닐까.

 

 

 

외진 곳에서 쌓아 온 시간을 듣기


 

처음에는 작별하지 못하는 사람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작별의 대상이 세상이든, 자신이든, 아니면 아득한 기억이든 그걸 쉽게 못 놓는 마음이리라 짐작했다.

 

하지만 건천에서 빠져나온 경하가 인선의 집에 도달하면서부터 그건 놓지 못하는 게 아니라 끝내 놓치지 않으려는 마음임을 서서히 믿게 됐다. 잃어버리지 않고 최선을 다해 껴안기. 그러기 위해 경하는 죽음마저 유예한 것처럼 보인다.


주목해야 할 건 인선과의 재회(2부 「밤」)가 지닌 환상의 성격이 아니라 섣불리 세상과 인사 나누지 않음으로써 여전히 여기에 머무는 경하가 외진 곳에서 인선이 쌓아온 시간을 만나는 과정이다. 거기에는 여전히 세상을 이해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


 

“작별 인사만 하지 않는 거야, 정말 작별하지 않는 거야? (...) 완성되지 않는 거야, 작별이? (...) 미루는 거야, 작별을? 기한 없이?”

한강, 『작별하지 않는다』, 문학동네, 2021, 192~193쪽.

 

 

경하가 인선의 부탁을 거절할 방법이 없었던 이유는 아직 그가 작별인사를 나눌 준비가 되지 않 았기 때문이다.

 

이런 미완의 작별에 앞서, 경하에게는 이별이 있었다.

 

 

 

(아직, 혹은 여전히) 인사하지 않은 사람



 

“어떤 사람들은 떠날 때 자신이 가진 가장 예리한 칼을 꺼내든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안다. 가 까웠기에 정확히 알고 있는, 상대의 가장 연한 부분을 베기 위해.”

 

위의 책, 17쪽.

 

 

상대는 경하를 떠나며 “살고 싶어서 너를 떠난다”고 말했다. “사는 것같이 살고 싶”다고 애원했 다. 경하는 인선의 갑작스러운 부탁을 받기 전까지 ‘살지 않기’를 해내기 위해 살기를 잠시 선택한 상태였다.

 

그런 사람에게 “사는 것같이 살”기란 어떤 의미였을까. 경하가 상대에게 줄 수 있는 건 없었다. 다만 경하가 집중하고 있는 건 ‘살지 않기’ 위해 착실한 인사를 준비하는 거였다. 인선의 무리한 요구에 제주도로 향한 건 어쩌면 그것이 다른 방식의 인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


인선은 “사랑이 얼마나 무서운 고통인지” 알았다고 했다. 이렇게 아득한 상흔을 이야기하는 소설이 왜 나에게 사랑과 작별로 기억되는지 여전히 알 수 없다. 하지만 동시에 이 이야기가 사랑에서 출발한 것임을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엄마를 떠나보내고 끊긴 다리 위에 서있는 인선은 엄마가 죽음으로도 작별하지 못한(않은) 기억을 이어받아 그 작별을 여전히 진행 중인 것으로 만들었다.


작별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신원 확인조차 되지 않은 수백, 수천의 지워진 몸에 안녕을 묻고 인사해야 하는데, 어떤 기회는 영영 없어진 것과 마찬가지였다. 끝나지 않는 기별과 작별을 재차 보내는 행위를 인선은 자기 속도로 해내고 있었다. 결국 성공의 문제가 아니라 시도의 문제라는 듯.

 

 

 

잔해 속에서의 손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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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대한 작가의 아득한 물음은 과거에도 지금도 여전하다. “그러니까 어디까지가 한계인지. 얼마나 사랑해야 우리가 인간인 건지”(한강, 「작별」, 『작별: 2018년 제12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은행나무, 2018, 46쪽)알기 위해 소설 속 인물들은 쉬운 이별을 하지 않고 있다. 그들은 “벽돌 들고 다니는 사람(브레히트)”과 닮았다.


 

“잔해 속의 벽돌 하나를 들고서 자기 집이 한때 어땠는지 기억하려는 사람. 무엇이 그 집을 부쉈는지 알고 싶은 사람...”

 

진은영, 「우리의 연민은 정오의 그림자처럼 짧고, 우리의 수치심은 자정의 그림자처럼 길다」, 『계간 문학동네 2014년 가을호 통권 제80호』, 문학동네, 2014, 424~425쪽.

 

 

잊히지 않는 기억들은 고통스럽지만 시도조차 되지 않은 기억은 절망적이다. 수천 개의 절망 앞에서 기억을 찾는 사람이 그곳에 있다. 이건 소설이면서 기억이고, 기억이면서 작별의 필수조건이다. 우리에게 아직 작별이 흐릿해 보이는 이유는 인사를 건네는 그들의 손짓이 여전히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덜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원용 컬처리스트.jpg

 

 

[조원용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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