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문화 전반]

늘어나는 키오스크, 도태되는 이들
글 입력 2021.12.30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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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기 위해 갈 때 항상 들르는 곳이 있다. 학교 앞의 '빽다방'이 바로 그곳인데, 최근 오픈한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키오스크'를 도입했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면 바로 앞에 보이는 키오스크. 주문을 하기 위해 버튼을 연달아 누른다. 테이크아웃, TEA, 아이스티 빽사이즈, 간 얼음 말고 각 얼음으로. 이후엔 추가 토핑 등을 할지 말지, 적립을 할 것인지, 쿠폰은 있는지, 결제는 카카오페이인지, 신용카드인지까지. 모든 단계를 거치고 카드를 넣으면 주문 완료. 디지털화에 익숙한 나에게는 너무나도 당연스러운 과정이다.

 

키오스크는 언제부터인가 점점 우리 삶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다. 패스트푸드점은 이제 키오스크가 없는 매장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음식점에서도 키오스크를 도입하는 추세다. 영화관은 말할 것도 없다. 코로나19의 여파인지 비대면 주문을 받는 곳이 늘어났다. 사실, 나는 별 상관이 없다. 크게 체감하지도 못한다. 점원에게 주문하나 키오스크로 주문하나, 나에게는 거기서 거기니까. 어떨 때에는 사람보다 기계가 편하게 느껴질 때가 있기도 하다.

 

 

게티이미지 키오스크 사진.jpeg

 

 

그러나 무인주문기 사용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게는, 늘어나는 키오스크가 무섭고 답답할 뿐이다. 주문 완료까지 많게는 10단계를 거쳐야 하는데, 도중에 포기하거나 시도조차 하지 못할 때도 있다.

 

최근 SNS를 둘러보다가 글 하나를 보게 되었는데, 글쓴이의 어머니께서 햄버거가 드시고 싶어 매장에 갔으나 키오스크를 제대로 조작하지 못해 20분가량 헤매다가 포기하고 돌아왔다는 글이었다. 딸에게 그 이야기를 하며 설움이 복받치셨는지 눈물을 보였다고 한다. 이것이 그들의 잘못일까? 빠르게 변화해가는 세상에 적응하지 못한 탓일까?

 

직관적이고, 간편하고, 보편적으로 이용이 가능하기에 무인 주문기의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보편적'이라는 단어엔 큰 함정이 숨어 있다. 보편적이지 않은 이들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어를 모르는 사람들이 이용할 수 없게 테이크 아웃, 솔드 아웃과 같은 영단어들이 들어가 있다. 키가 작은 이나 휠체어를 탄 이들이 사용할 수 없는 높이에 주문 화면이 배치되어 있다. 눈이 안 좋은 이들이 보기 힘들게 글씨가 너무 작은 경우도 있다. 보편적인, 일반적인 사람들에게만 너무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무인 주문기 덕에, 힘없는 노인들은 자신감을 잃고 가게에 들어가길 무서워한다. '배우지 못한 자신의 탓'이라며 문화 센터에서 필기까지 해가며 세상에 적응하려 하지만 쉽지 않다.

 

당장 나의 할머님만 해도, 자식들이 지정해 준 단축 번호를 눌러 전화하는 것 외에는 휴대폰을 활용하실 줄 모른다. 나의 아버지는 온라인 뱅킹을 사용하지 못해 이체 등을 할 때 항상 전화를 이용하신다. 최근 식사를 하러 집 앞 음식점으로 갔는데, 전과 달리 키오스크가 배치되어 있었다. 아버지는 키오스크 사용에 꽤나 버벅대는 모습을 보이셨다. 얼마 전 패스트푸드점에선 키오스크 사용에 어려움을 겪으시는 할아버지 한 분의 주문을 도와드린 적도 있다. 재미있는 것은, 매장 안의 직원 그 누구도 키오스크엔 눈길을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주문 완료 후 주문서를 확인하고 음식을 조리하는 것만으로도 바쁘기에, 그 앞에서 누가 어려움을 겪는지 알 도리가 없다.

  

세상이 변해가는 주기가 점점 짧아진다. 앞으로도 편리한 디지털 기기들은 계속해서 나올 것이다. 그리고 이대로라면, 앞으로도 '보편적'이지 않은 노인들은 점점 소외되고, 도태되어 가는 것일까. 전자기기는 체온이 없다. 그래서인지, 키오스크로 도배되어 가는 도심지의 가게들을 보면 조금 추워진다.

  

사회적 노력으로, 모든 이들이 최소한 '주문만큼은' 평등하게, 편리하게 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이다. 주문을 '포기'하지 않도록, 기기가 '무서워' 가게에 못 들어가지 않도록.

 

 

 

 아트 인사이트 에디터 테그.jpg

 

 

[최원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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