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예술과 사회는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 [문화 전반]

글 입력 2021.12.29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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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odor Wiesengrund Adorno, 1903-1969

 

 

테오도어 아도르노(Theodor Wiesengrund Adorno, 1903-1969)는 독일의 철학자이자 미학자로 막스 호르크하이머, 에리히 프롬, 발터 벤야민, 위르겐 하버마스 등으로 구성된 프랑크푸르트학파*의 구성원이다.

 

*프랑크푸르트학파: 1924년에 개설된 독일 프랑크푸르트 대학 부설 ‘사회 문제 연구소’에 참가한 사람들을 말함. 이 연구소는 마르크스와 프로이트를 기반으로 철학, 문학, 심리학, 경제학, 사회학 등 상이한 문화 영역의 상호 연관 속에서 현대 사회를 총체적으로 해명하고자 하였음.

 

그는 문화산업에 대해 논한 대표 학자로 그의 연구는 “영화와 라디오가 대중을 급진적으로 만들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라고 말한 발터 벤야민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출발한다. 즉 아도르노는 벤야민과 달리 기술이 관람자를 수동적으로 만든다고 주장하며 문화산업을 비판한 것이다.

 

이때 아도르노는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문화 산업은 예술조차 단순한 상품으로 만든다고 말하며, 마르크스주의적 입장에서 ‘상품’을 정의한다. 따라서 그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시장의 문제점을 보완하는 후기 자본주의하에서 상품의 유일한 사용가치는 그저 ‘교환가치’일 뿐이라고 말한다. 결국, 이러한 체제에서 소비자는 정치적 자의식이 저해된 객체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도르노는 상업화와 동질화에 반대하는 아방가르드 예술을 ‘진정한 예술(true art)’로 본다. 이는 어떤 것에 의해 대상화되지 않는 주체성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오로지 감각적인 욕구를 충족하는 환상을 제공하는 문화산업과 달리 진정한 행복과 연결되는 것이다.

 

이처럼 그는 문화산업을 기존의 체제에 예술을 종속시키는 것으로 본다. 즉 생산성을 향상하려는 목표로 예술에 실용적 기능을 부여하는 것을 문화산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예술은 문화산업에 종속되어 기존의 체제에 의해 관리되는 것을 피하고자 자율성을 획득해야만 한다.

 

따라서 예술은 사회를 비판하기 위해 그를 소외되고 물화된 것으로 인식해야 하며, 자신만의 고유한 특질을 가져야 한다. 즉 사회를 객체로 친다면 예술은 그에 대한 타자로 존재하며 모순적 관계를 맺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예술은 기존 체제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낯선 것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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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따라, 아도르노는 작곡가가 사회에서 해야 할 역할을 제시한다. 아도르노는 작곡가는 음악 재료와 변증법*적인 관계에 놓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쉽게 말하면 관습으로 대표되는 어떤 법칙을 그대로 수용하여 창작하기보다는, 스스로 법칙을 만들어내며 음악의 역사를 새롭게 쓰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 변증법: 모순 또는 대립을 근본원리로 하여 사물의 운동을 설명하려고 하는 원리. 하나의 논리, 하나의 지식, 하나의 이데올로기 등이 우세하면 사회는 이에 대응해 또 다른 논리, 지식, 이데올로기(권력)를 생성한다는 주장임. 따라서 이들 서로 모순을 지적하고 비판하며 결국 제3의 새로운 논리가 탄생함.

ex) 마르크스: 변증법적 역사관을 지님. “역사 발전은 사회 계급(자본가 vs. 노동자) 간의 투쟁이다.” 그렇기에 마르크스는 결국 노동자들이 혁명을 일으켜 역사는 발전하고, 종국에는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날 것으로 봄.

 

그러나 현실은 이처럼 시장을 비판하는 이론조차도 시장에 포섭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사회와 대립적 관계에 있음에도 역설적으로 예술은 내용 혹은 형식 속에 사회의 부산물을 포함하고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도르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이 사회에 직접적으로 관여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위의 말대로 사회에 도구화된 이성이 판을 치고, 그에 기반하여 사회가 합리적으로 돌아갈지라도 예술은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비합리성의 그늘에 있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에 대립하고 있을 때조차도 사회의 부분으로 남아있는 예술은 사회에 대하여 눈을 감고 귀를 막아야 한다. 다시 말해서, 예술은 비합리성의 그늘을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예술 그 자체가 비이성을 존재이유로 삼아 비이성에 호소하는 때, 예술은[이러한 비이성이라는] 저주를 신의 섭리로 받아들이는 신정론으로 전환시킨다. [...] 예술작품의 내용은 결코 작품들에 주입된 지성의 총합이 아니다. 오히려 아마 그 반대일 것이다. (1974, 93; 수정된 번역)

 


 

참고 자료

제이 에멀링 지음, 김희영 옮김(2015), 20세기 현대예술이론, 미진사, pp.85-93

문화일보, <서동욱의 지식카페> '용도' 벗어나 '자율'로... 현대예술, 추함으로 체제와 단절하다, 2020. 09. 08.

네이버 지식백과, 21세기 정치학대사전, ‘프랑크푸르트학파’

네이버 지식백과, 두산백과, ‘변증법’

 

 

[유소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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