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세상을 향해 외치는 건배 [드라마]

티빙 오리지널 드라마 <술꾼도시여자들>
글 입력 2021.12.17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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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술을 좋아한다. 퇴근 후에 마시는 맥주의 시원함, 기분 좋은 날에 내일은 없는 것처럼 마실 때의 그 쾌감, 울적한 기분을 달래주는 약간의 몽롱함. 24살, 일찍이도 술의 맛에 눈을 떴다. 어렸을 때는 쓰디쓴 소주를 마시던 어른들이 이해되지 않았고 지금은 술 마시는 재미를 모르는 사람들이 안쓰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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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나의 취향을 저격한 드라마가 등장했다. 지난 10월에 공개된 국내 OTT 티빙(TVING) 의 오리지널 콘텐츠 <술꾼도시여자들>은 하루 끝 술 한잔이 인생의 신념인 세 여자의 일상을 그린 본격 ‘기승전술’ 드라마다. 미깡 작가의 다음 웹툰 ‘술꾼도시처녀들’을 원작으로 한다.


<술꾼도시여자들>의 주인공들은 사랑과 직장에서 맛본 실패를 끈끈한 우정과 술로 극복한다. 짧은 러닝타임으로 시청의 부담감을 덜어내고 에피소드마다 순탄하지 않은 삶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담아낸다. 드라마의 솔직한 스토리는 많은 이에게 공감과 위로를 건넸다. 역대 티빙 오리지널 콘텐츠 중 주간 유료 가입 기여 1위를 달성하며 올해 티빙 인기작으로 거듭났다.  뜨거운 인기에 힘입어 티빙은 <술꾼도시여자들> 시즌2 제작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

해당 글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기승전‘술’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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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티빙

 

 

제목에 걸맞게 세 명의 서른 살 동갑내기 주인공들은 하루도 빠짐없이 술을 마신다. 애주가의 영역을 넘어선 그들의 술 사랑은 대단하다. 포상으로 평생 술값 공짜가 걸린 댄스 경연에서 우승을 거머쥐는가 하면, 식당에서 소주 한 짝씩 들이키는 것이 기본이다. 다음 날 숙취로 고생해도 마르지 않는 술 사랑. 이들은 왜 그렇게 술을 먹는 걸까?


 

“술에 취하면 별것도 아닌 일이 다 별 게 된다. 그리고 진짜 별거였던 일은 순식간에 아무것도 아닌 게 된다. 이게 바로 우리가 술을 마시는 이유다.”

 

<술꾼도시여자들> 2화

 

 

2화에서는 저마다의 이유로 지친 주인공들이 하루 끝에 마주 앉아 술 한잔으로 분노를 씻어낸다. 맛있는 안주를 곁들이며 오늘도 수고한 자신을 위로한다.

  

인생을 내가 원하는 대로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애석하게도 신은 우리에게 위기를 극복해야지 성공을 얻을 수 있게 만든다. 이 과정에서 처참한 자신을 맞닥뜨리고 이유 모를 분노가 치밀어올라 급기야 모든 게 원망스러워진다. 술에는 망각의 힘이 있다. 고단한 삶에서 힘든 순간을 술과 함께 잠시나마 털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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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티빙

 

 

“술을 마시면 알딸딸해지면서 시야가 서서히 뭉개지고 마음이 뭔가 느슨해지잖아요. 저는 그런 순간을 너무 좋아해서 술을 먹거든요. … 그런 인간적인 면을 담고 싶었어요. 척박한 세상에서 술을 먹었을 때나마 느슨하고 허술해지면 어떨까 하고요. … 지나친 음주는 몸에 해롭지만, 인생을 살면서 술 앞에서 한 번쯤 지나쳐(과도해져)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인생을 완벽하게 살 수는 없으니까요.”

 

<술꾼도시여자들> 위소영 작가 인터뷰 중

 

 

과음 조장 드라마라는 논란에 드라마의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술을 즐기는 이들도, 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이 드라마에서 '공감'으로 하나가 된다. 주인공들의 끈끈한 우정과 사회의 쓴맛은 마치 누군가의 삶을 훔쳐보는 듯하다. 인물간의 통통튀는 케미와 욕설이 난무하는 대사도 완벽하게 소화하는 주인공들의 연기는 극의 재미를 더한다.

 

 

 

짠 내나는 인생살이만큼 찐한 그녀들의 우정


 

주인공들도 불확실한 미래를 걱정하던 때가 있었다. 막 사회생활을 시작하던 그들의 직업은 지금과 달랐다. 7년 전에 그들은 출판사 직원, 대기업 영양사, 고등학교 선생님으로 일했다. 셋이 직장을 그만두게 된 이유는 모두 지연(한선화)이 일하는 기업의 박 회장과 연관된다.


지연을 상대로 흑심을 품던 박 회장은 은밀한 거래를 제안한다. 박 회장은 이를 모른체 하던 지연을 자신이 운영하던 개농장에 좌천시킨다. 지연은 이를 복수하기 위해, 언론사에 박 회장의 실체를 고발하면서 속시원한 전개를 보여준다.


출판사에서 일하던 소희(이선빈)는 박회장의 자서전을 담당하게 된다. 인터뷰에서 말도 안 되는 소리만 나열하는 박회장에 분노했고 결국, 술의 힘을 빌려 속사포로 욕설을 뱉은 후 그 자리를 떠난다. 소희의 첫 직장은 이렇게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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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티빙

 

 

지구(정은지)는 고등학교 선생님으로 박 회장의 딸인 세진이가 반 학생이다. 세진이는 성소수자다. 박 회장은 그런 딸을 괴물 취급한다. 이 사실은 머지않아 학교에 알려져 세진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만다. 제자를 구하지 못한 후회와 슬픔은 지구의 인생에 큰 회의감을 주었다. 그 후, 오랜 시간 세상과 단절된 채 방 안에서 은둔생활을 한다.

 

 

“묻지 않았다. 뭐가 그렇게 힘들어서 세상과 담을 쌓았는지.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친구라고 모든 걸 다 알아야 하는 건 아니니까. 그러다 보면, 또 다 알게 되니까.”

 

<술꾼도시여자들> 7화


 

친구들은 그런 그녀를 재촉하지 않는다. 지구가 충분히 슬퍼할 수 있도록 묵묵히 기다린다. 무슨 이유에서 도망쳤는지 물어보지도 않고 평소처럼 지구를 대한다. 항상 네 편이라는 것을 말하지 않아도 느끼게 해주는 존재가 있다는 것. 이들의 관계가 부럽기도 하면서 돈독한 우정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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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티빙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은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발생한다. 여느 때처럼 출근한 소희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셨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놀랐을 소희의 곁을 지연과 지구가 지킨다. 소희보다 일찍 도착해 장례식 절차를 미리 처리하고 조문객을 받기 위한 준비를 끝낸다.


누군가를 보내는 것은 힘든 일이다. 두 친구는 이성을 잃고 오열하는 소희의 모습에 함께 눈물을 흘리며 슬픔에 공감한다. 입관식에서 아버지의 얼굴을 보기 두려웠던 소희는 회사 일을 핑계로 회피하려고 한다. 이때 지구는 “너 없이도 회사는 돌아간다. 이제 가야 한다”고 용기를 주며 소희는 아버지와의 이별을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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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티빙

 

 

현실적인 장례식 묘사는 눈물샘을 자극한다. 장례지도사와 계속해서 논의하고 입관식과 운구차로 관을 옮기는 장면, 장지에서 고인과 마지막 인사를 하는 유족들의 모습까지 장례식장의 모든 절차를 세세하게 그려내며 마냥 슬픔에 빠져 있을 수 없는 상황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장례가 끝난 후 힘들어하는 소희의 모습을 통해 남겨진 이의 슬픔,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불행은 갑자기 나타난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과 직장에서 겪는 고충처럼 평온한 일상에 금이 가는 건 한 끗 차이다. 영원할 것 같은 우정이 두 번 다시 보지 않을 사이가 됐다가도, 위험에 빠지는 상황이 닥치면 가장 먼저 달려가 언제 그랬냐는 듯 둘도 없는 사이로 돌아간다. 어떤 상황에서도 끈끈한 이들의 우정에 나도 모르게 응원하게 된다. 그리고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는 인생에서 같은 고민을 나누고 함께 살아가는 친구들이 있음에 큰 위로를 받는다.


 

 

빠져들 수밖에 없는 <술꾼도시여자들>의 매력



바야흐로 OTT 전성시대다. 지난 11월에는 애플TV 플러스와 디즈니 플러스 코리아가 국내에 런칭되었다. 플랫폼들은 저마다의 승부수를 내세우며 경쟁을 펼치고 있다. 싸움의 관건은 누가 뭐래도 ‘콘텐츠’다. 기존 콘텐츠인 영화와 TV 프로그램의 선점과 더불어 플랫폼 자체 제작 콘텐츠가 시장에서 중요한 자산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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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티빙

 

 

<술꾼도시여자들>은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로 OTT의 속성에 맞게 기성 드라마들에서 볼 수 없던 소재와 표현 수위, 형식까지 갖춘 드라마다. 술이 주된 요소로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았지만, 거침없는 대사들과 신선한 소재는 OTT라는 플랫폼에 적합하다.


부도덕한 이에게 속사포로 욕을 쏘아대는 모습은 무례한 세상에 고하고 싶은 시청자들을 대변했다. 직장동료와 술에 취해 원나잇을 하는 모습에서 성적으로도 불편하기보다 유머러스하고 자유분방한 색깔을 보여준다. 한 화당 40분 안팎의 러닝타임으로 숏폼 콘텐츠에 익숙한 MZ세대를 공략했다. 옴니버스 형식으로 매화 뚜렷한 주제를 가지고 시트콤적인 상황을 속도감있게 풀어낸다.


이 드라마에 환상이라곤 없다. 사랑을 꿈꾸던 남자에게 섹스파트너 제안을 받으며 그 로망을 산산조각 낸다. 직장은 거지같고 가족과 연을 끊은 지는 오래다. 바람 잘 날 없는 인생에서 술만이 그녀들에게 진정한 힘이 된다.

 

드라마 속, 주변에서 볼 법한 술자리 풍경은 그 자리에 합석한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주변에서 볼 법한 술자리 풍경은 그 자리에 합석한 것 같은 착각을 들게 한다. 코로나로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그리운 지금, 술자리의 그리움을 해소하고 그 기쁨을 충족할 수 있다. 날 것 그대로의 솔직한 모습에 시청자들은 마음 놓고 웃게 된다.

 

*

 

앞으로 국내 OTT로서 티빙의 활약이 기대된다.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을 활발하게 진행하면서 점유율도 고공행진 중이다. 개성있는 색깔로 사람들을 사로잡은 <술꾼도시여자들>처럼 국내 시청자들에게 최적화된 시스템과 이들의 입맛을 사로잡을 오리지널 콘텐츠로 티빙이 국내 OTT의 선두주자로 발전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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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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