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현실을 초월한 사람들의 이야기 - 초현실주의 거장들

현실, 그 너머의 어떤 것
글 입력 2021.12.17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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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현실주의 거장들 : 로테르담 보이만스 판뵈닝언 박물관 걸작전>은 유럽 전역에서 가장 큰 초현실주의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는 네덜란드 로테르담에 위치한 보이만스 판뵈닝언 박물관의 소장품들을 만나볼 수 있는 전시다.

 

초현실주의는 1920년 이미 인정된 가치와 이성에서 벗어나기 위해 예술가의 모든 심리적인 상황(꿈, 무의식, 심리적인 자율성)을 총동원하여 금기시된 자신의 생각과 사고를 그대로 표현하려는 운동이었다. 대부분 몽환적이고 기이한 작품들이 주를 이루며, 대표 예술가로는 문학가 앙드레 브르통(André Breton)을 중심으로 폴 엘뤼아르(Paul Eluard),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트리스탕 차라(Tristian Tzara),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 만 레이(Man Ray) 등이 있다.

 

 

 

"현실을 넘어서다"



[꾸미기]이미지11_폴 델보-붉은 도시.jpg
폴 델보 (Paul Delvaux, 1897-1994) 붉은 도시 (La ville rouge), 
1944 캔버스에 유채 110 x 195 cm

 

 

초현실주의 예술가들은 20세기 산업화와 전쟁을 겪으며 괴로운 현실과 이상 사이의 괴리와 감정적 갈등을 겪었다. 불안한 사회적 배경 속에서 예술가들은 나름대로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자 하였고, 그 해결책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초현실주의가 탄생하였다. 이러한 모습은 마치 전통적이고 이성적인 것을 거부하고 즉흥적, 감정적, 공상적인 것을 추구했던 낭만주의와도 매우 닮아있다.


총 6가지 섹션으로 나뉜 이번 전시는 초현실주의의 시초가 된 다다이즘 운동부터 초현실주의 이후의 추상파 운동까지 전체를 아우르는 밀도 높은 전시다. 또한 <초현실주의 혁명>, <다다와 초현실주의>, <꿈꾸는 사유>, <욕망>, <우연과 비합리성>, <기묘한 낯익음>과 같이 섹션의 주제만 보아도 현실에서 더 나아가 '그 너머에 있는 어떤 것'들을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하고, 갈망하고, 쫓으려 했던 예술가들의 정신세계를 자세히 엿볼 수 있다.


이들이 추구하는 가치가 '비'현실주의 라는 표현보다 '초'현실주의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이유는 바로 이렇게 순수한 예술가들의 정신 때문이며 더불어 현실을 부정하려 하기보다 그것을 초월하여 넘어서고 싶어 했던 예술가들의 진심이 담겨있기 때문일 것이다.


 

 

"길들여지지 않은 내 안의 '무의식'을 마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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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바도르 달리 (Salvador Dali, 1904-1989) 아프리카의 인상 (Impressions d'Afrique), 
1938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91,5 x 117,5 cm

 

 

길들여지지 않은 생각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과 같다. 1920년대 후반 살바도르 달리는 편집증적 사고에 기초한 새로운 기술법을 시작했는데, 이러한 편집증적 사고를 'Délired'interprétation(해석의 광란)'이라고 표현하였다. 또한, 정신세계와 무의식에 관심을 보이며 자신의 환각과 망상을 실체화하여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정신 착란적 이미지들을 그대로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이러한 노력 때문인지 전시된 달리의 작품 중 <아프리카의 인상>은 마치 작가의 환각과 망상의 한 가운데 서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게다가 '해석의 광란'이라는 그의 표현답게 관객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끊임없이 해석해 볼 만한 부분들이 작품 안에 잘 녹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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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일린 아거 (Eileen Agar, 1899-1991) 앉아있는 사람 (Seated Figure), 
1956 캔버스에 유채 184 × 163 cm

 

 

초현실주의자들은 자신의 내면 깊숙이 자리한 '무의식'을 작품으로 표현해내기 위해 수많은 시도를 했다. 그 일환으로 문학가 앙드레 브르통(André Breton)이 정의한 자동기술법인 '오토마티즘(Automatism)을 사용하여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와 단어들을 표현하였는데 이는 이성, 도덕성, 미학으로부터 자유로운 무의식적 사고의 표현을 의미한다.

 

우리가 초현실주의자들의 작품을 관람하면서 깊은 울림을 얻는 것은, 그들이 자기 생각을 작품 속에 표현하기 위해서 극단적이거나 인위적인 방법을 택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자연스러움을 추구했기 때문이 아닐까.


 

[꾸미기]이미지17_만레이-복원된 비너스.jpg
만 레이 (Man Ray, 1890-1976), 복원된 비너스 (Vénus restaurée), 
1936(1971) 혼합재료 plaster, rope, wood, paint 74 x 42 x 39 cm

  

 

'무의식'이란 일반적으로 각성(覺醒)되지 않은 심적 상태 즉, 자신의 행위에 대하여 자각이 없는 상태를 뜻한다. 초현실주의자들에게 있어 인간의 신체는 성에 대해 얌전한 체하려 했던 사회의 인식을 허무는 좋은 도구였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에 따르면 무의식의 심적 내용은 억압된 관념 및 본능으로 이루어진다고 하였다.

 

또한 본능 중에서도 성적 본능이 가장 주를 이룬다고 보았는데, 이 같은 맥락에서 다섯 번째 섹션인 사랑과 욕망은 좀 더 '무의식'에 깊이 다가가고자 하는 초현실주의 예술가들의 무던한 노력을 짐작하게 한다.

 

 

 

"뒤틀리고, 변형되고, 파괴된 끝에 찾아온 자유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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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마그리트 (Réne Magritte, 1898–1967) 그려진 젊음 (La jeunesse illustrée), 
1937 캔버스에 유채 184 x 136 cm

 

 

전시를 관람하다 보면 '우연'이라는 말이 반복된다. 어쩌면 우리에게 익숙하고 낯익은 물체들이 '우연'하게 만나 기묘한 어울림을 이루는 것이야말로 일상이 예술이 되는 순간이 아닐까 싶다.

 

사실 나는 마지막 섹션인 <기묘한 낯익음> 섹션에 도착하고 나서야 간신히 숨을 돌렸다. 왜냐하면 이 전의 섹션들에서는 내가 관람 전에 기대했던 초현실주의 작가들의 위트와 유쾌함보다 어둡고, 스산하고, 황량한 느낌이 나를 짓눌렀기 때문이다. 다행히 마지막 섹션에서 기대했던 그 위트와 유쾌함을 느낄 수 있어서 기뻤다.

 

더불어 묘한 해방감도 찾아왔다.

 

밤마다 갖가지 생각과 걱정으로 잠 못 이루는 나는 전시를 관람하며 조각조각 뒤틀리고, 변형되고, 파괴되고, 뒤엉키는 작품들 속에서 상상과 망상의 한계를 뛰어넘는 순간들이 괴롭지만 즐거웠다. 그리고 그 어떤 생각이라도 용납되고 인정받을 수 있겠다는 기분이 들어 자유로움과 동시에 깊은 위안을 받았다.


부디 이 전시가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는 위로와 위안이,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신선한 자극이 되어 모두가 다양한 상상으로 더 즐겁고 풍요로워지길 기대해 본다.

 

 

 

에디터_서은해.jpg

 

 

[서은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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