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문제적 작품 '티탄', 성 착취인가 탈젠더인가? [영화]

'불쾌감'을 다루는 감독, 줄리아 뒤쿠르노의 두번째 장편
글 입력 2021.12.16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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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쾌함.’ 젊은 여성감독의 영화에 늘 따라붙는 수식어다. 비건 소녀의 식인 행위로 화제가 됐던 <로우>(2016)의 감독 줄리아 뒤쿠르노는 두번째 장편작 <티탄>(2021)에서 역시 특유의 불쾌감을 서슴없이 보여줬다. 감독 스스로도 제 작품을 “괴물”이라 부를 만큼, 파격적이고 강렬하며 그만큼 비위가 역해지는 영화였다.


<티탄>은 서른 두 살의 여성 알렉시아를 주인공으로 한다. 어릴 적 불의의 사고로 두개골을 갈라내 티타늄을 이식받은 그녀는 자동차에 매료돼있다. 자동차를 마음껏 쓰다듬을 수 있다는 이유로, 성인이 된 그녀는 차 앞에서 춤을 추는 모터쇼 댄서가 된다. 이후 알렉시아는 이상한 충동으로 연쇄 살인을 벌이고, 경찰의 눈을 피해 신분을 가장한다. 머리를 밀고 가슴을 붕대로 감아 오래 전 실종된 소년 아드리앵이 돌아온 척 연기한다.

 

그(녀)는 아드리앵의 아버지 뱅상과 함께 그의 아들인 척 살아가려 하지만, 점점 터질 듯 배가 불러온다. 영화에서 그녀가 인간과 성관계 맺는 장면은 없었으며, 알렉시아가 교미한 것은 모터쇼장의 자동차뿐이었다. 이제 그녀는 기계의 태아를 밴 티타늄 임산부다. 아이는 세상 밖으로 나오기 위해 점점 어미의 배를 찢는다.


<티탄>의 중심 소재는 역시 ‘젠더’다. 이분법적 성별 논리, 성 지향성이나 정체성, 그것을 한참 지나 사회적 인간으로서의 ‘몸’에 대해 얘기한다. 오늘은 <티탄>의 신체적 젠더에 대해 논의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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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결한 인간의 존엄성을 끌어내려 동물로서의 몸뚱어리 인식케 하기.’


지난 작 <로우>에서부터 뒤쿠르노 감독이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수법이자 유구히 이어가는 태도이다. 감독은 인물의 몸에서 형식적, 사회적, 관습적 흔적을 지우려 한다. 남녀의 구분, 미적인 기준, 열망과 욕정까지 다 소거하고 남는 것은 근육과 뼈, 그리고 장기로 이뤄진 살덩이 뿐이다.


벌거벗은 여성의 몸을 보며 수치를 느끼지 않고, 그저 괴기하게 몸이 부푼 암컷의 짐승이라는 생각이 들 때까지 영화는 자신의 수법을 밀어붙인다. 정확히는 알렉시아를 가학한다. 선망 받는 이상형의 여성이었던 알렉시아가 ‘외적 남성’으로 거듭나기 위해선 그녀에 대한 신체적 폭력이 필요했다.

 

막무가내로 머리카락을 가위질 하는 건 물론 면도기로 눈썹을 밀어야 했고, 직접 얼굴을 부닥쳐 코뼈를 으깨야 했다. 부러진 뼈의 으적거리는 소리에 이어 붕대로 그녀의 상체를 압박해야하기도 했다. 여성으로서 남은 거의 유일한 증거―가슴과 임신한 배―를 가리기 위해 그녀는 숨 쉬는 것을 포기하며 온몸을 단단히 옥죈다.


하지만 영화는 그녀의 몸을 더 극한으로 망가뜨린다. 빠르게 팽창한 자궁은 결국 알렉시아의 뱃가죽을 찢는다. 후반부, 삭발 머리에 수염이 거뭇한 ‘남성의 얼굴’로 출산 직전의 배를 부여잡고 기는 ‘여성의 몸’은 남녀 이분법으로 나눌 수 없는, 굳이 나눌 필요도 없는 그저 하나의 몸뚱어리다.

 

건강하고 육체미 넘쳤던 ‘섹시한 여성’의 몸은 어디에도 없고 그저 괴로워하는 몸만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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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탄>은 ‘신체 변형 호러’라는 말로 수식된다. 몸을 절단하거나 재배치하면서 괴기함과 공포감을 주는 하위 장르다. 여타 바디 호러에선 불구를 만들거나 인공 보형물을 삽입·부착했지만 <티탄>의 호러는 성적 매력을 없애는 것에서 비롯된다.

 

콧대 높고 섹시했던 여성, 속된 말로 ‘꼴렸던’ 여성의 몸을 더 이상 ‘꼴리지 않게’ 망가뜨리며 ‘괴로운 몸’으로 바꾸는 과정이 바로 <티탄>식 신체 변형이다. 성적 잣대를 세우지 않고 그저 하나의 ‘인간 몸’으로 보이기 위해, 영화는 자발적인 학대를 서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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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약하게나마 무너지는 아드리앵의 아버지 뱅상 또한 마찬가지다. 그는 젊고 강인한 육체를 유지하고자 하는 욕심에 스테로이드 약물을 습관적으로 주입한다. 종국엔 무리한 양으로 쇼크사 할 뻔하기도 한다. 그의 엉덩이엔 멍이 가득하고 아파하면서도 늙는 것을 두려워한다.


알렉시아의 몸이 성별로부터 벗어나려는 탈젠더였다면, 뱅상의 몸은 강박적 젠더다. 그는 남성적 매력이 있는 몸을 갖기 위해 기꺼이 신체를 자학하는 사람이다. 젠더에서 벗어나려는 이와 그 관습에서 퇴출되고 싶지 않은 이. 견고히 쌓아진 사회적 성性의 장벽에서 여성 알렉시아는 완벽한 약자고 남성 뱅상은 완전한 강자다.

 

성별에 따른 젠더 탈피 여부만으로도 누가 그것의 수혜자였는지 명확히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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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티탄>은 약간의 윤리적 논의가 필요하다. 알렉시아에 대한 신체적 착취가 적절했는지, 필요 이상은 아니었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영화에서 알렉시아는 분명 ‘욕본다.’ 성기 노출을 포함한 나체씬이 많고, 가슴과 성기에선 까만 자동차 오일이 흘러나온다. 자동차 벨트에 자발적으로 묶인 채 허리를 흔들며 성관계를 하고, 나신으로 출산을 하며 퇴장한다. 와중에 무력으로 인한 폭력―코뼈 깨짐―이 포함되기도 한다. 알렉시아가 전라를 보여줄 동안 뱅상은 주사를 놓기 위해 살짝 내린 바지 사이로 엉덩이 골 정도가 보일 뿐이다.


칸 영화제 역사 상 두 번째 황금종려상을 받은 여성감독. 이 컨텍스트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만약 남성 감독이 <티탄>같은 영화를 만들었다면 비판과 비난이 제기되었을 것이다. 남성 스토리텔러가 고안한 폭력적 시나리오, 남성 결정권자에 의해 억지로 연기해야 했던 여성 배우가 문제됐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요즘 시대엔 더.


하지만 이런 영화를 여성 감독이 만든다면, 여성착취를 여성이 한다면 그런 논쟁은 수그러든다. 자발적 의지는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때문에 영화 속 학대가 해방을 위한 탈젠더였는지, 아니면 여전히 메일 게이즈(male gaze, 남성의 시선)가 혼재된 ‘자기 대상화’였는지를 논의해야 한다.

 

후자의 경우 이것은 대부분이 남성 위원으로 이루어진 명망 높은 영화제에 이점이 될 수도 있다. 남성의 관음증적 시선으로 소비된 성도착물이 여성 감독이란 방패를 쓰고 찬동될 수 있기 때문이다. 확실한 건, 여성이 극한으로 망가지는 모습을 보며 쾌락을 느끼는 남성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이다. 엇나간 자기 대상화가 남성 권력을 더 공고히 하는데 일조하진 않았는지, 우리는 더 바짝 긴장하고 정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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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난 <티탄> 속 신체 학대의 도가 지나쳤다는 입장이다. 불쾌감과 혐오감을 잘 못 견디는 성격 때문일 수도 있지만 같은 여성의 몸으로서 그 착취 과정이 생생히 다가와 고통스러웠다. 그럼에도 <티탄>이 탈젠더, 페미니즘적 성격을 갖고 있다고 보는 이유는 소재의 선택이다. 다른 바디 호러 장르에서 몸을 자르고 붙이고 녹이고 다른 종과 교합시킬 동안 <티탄>이 선택한 방법은 아주 일상적이고 자연적인 행위, 바로 임신이었다.


알렉시아가 막달에 가까워질수록 그녀의 몸은 점점 해괴해진다. 축 처진 가슴과 찢어질 듯 부푼 배는 스토리 속 장애물이자 시각적 호러로 작용한다. 다만 그것은 여성이라면 필연적으로 겪을 임신일 뿐이다.


대부분의 미디어는 임신을 성스럽고 고결하며 행복한 것이라 취급한다. 이전과 달라지는 몸에 두려움과 무력감을 느끼는 여성의 공포는 크게 주목되지 않는다. 오히려 태아 건강에 충실치 않은 임산부의 모성애를 지적하는 게 현실이다.

 

임신으로 인해 변형되는 몸, 이것은 굳이 바디 호러 장르가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여성이 느끼는 실존하는 공포다. 임신이 호러처럼 보일 정도로 기괴한 일이라는 걸 보여줬다는 점에서, 그것을 피력하고 형상화했다는 점에서 <티탄>은 페미니즘 영화로서의 가치를 지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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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티탄>에 대한 논쟁은 앞으로 더 많아질 것이다. 이 안엔 무수히 많은 쟁점거리가 있다. 오늘 이 글은 감상자의 개인적인 불쾌감에서 시작되었다. 한 명의 여성으로서 알렉시아에 느끼는 공감대와 그렇기에 더 생생히 다가오는 학대의 고통에서 출발되었다.

 

<티탄>이 주는 불쾌감은 섹스(생물학적 성)과 젠더(사회적 성), 성 정체성과 성 지향성, 그로 인한 개별 경험에 따라 모두 다를 것이다. 이 영화가 각각에게 어떤 불쾌감을 선사할지, 문제적 작품인 만큼 더 많은 이견들이 나오길 바란다.

 

 

<티탄 Titane>, 줄리아 뒤쿠르노, 2021, 프랑스, 벨기에.

 

 

[박태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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