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치밀한 전략가 아니면 특별한 신비주의자 - 영화 '베네데타'

글 입력 2021.12.07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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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문화 매체에서 활용되는 성직자 여성 캐릭터를 좋아한다. 정갈한 옷매무새와 신념, 꼿꼿하게 서 있는 자세가 좋은 것만은 아니다. 그들은 여성 차별적 시대에서도 지식에 접근할 수 있었으며, 신앙의 이름으로 남성들에게 조언할 수 있는 위치에 섰다. 성스러운 것을 섬겨야 한다는 직업적 소명,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여성에게 허용된 권력. 이 미묘한 부분들이 수녀 캐릭터를 좀 더 복잡하게 만든다.


영화 `베네데타`는 사실 그런 기대를 하고 자리에 앉은 작품이었다. 그들에게는 당대 여성과 비교해 권력과 자유가 있었다. 그래서 `수녀원`과 `레즈 스캔들`라는 단어는 대조적인 것처럼 보이는 동시에 어울리는 부분도 있다. 우선 수도원이라는 배경 속에서 남성과의 성적 관계를 부정하고 여성만이 남아 긴밀하게 소통하는 그들 사이엔 언제든 비밀스러운 사랑이 싹틀 수 있었다.


그리고 수녀가 된다는 것은 단순한 종교적 의미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남성적 영역`인 지식과 권력에 영원히 접근하지 못하고 아이를 낳다 죽는 것이 일상이던 중세 여성의 삶에서 수녀가 된다는 것은 `철학`, `신학`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특히 수녀원장은 여성의 위상을 온전히 인정받을 수 있는 최고의 지위였다.


물론 그녀들 역시 당시 `남성적 영역`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이들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여성 신비주의자가 된다는 것은 여성 억압적인 사회에서 유일한 돌파구를 찾는 길이었다. 그런 점에서 여성 수도원장이지 동성애자였던 베네데타의 삶을 충실히 쫓는 것은 아주 재미있는 소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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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영화 <베네데타>를 보고 나오면서, 여러가지 복잡한 생각들을 쉽게 정리할 수 없었다. 내가 가장 먼저 이 영화와 관련되어 말하고 싶은 것은 어떤 관음증적 시각이다. 영화가 포스터를 통해 선전되는 방식과 퀴어 성행위를 담는 장면들은 표현하는 의미를 고려할 때 지나치게 오랜 시간, 자세하게, 두 여성의 성행위를 렌즈에 노출하는 방식으로 장면을 담아낸다.


사실 카메라의 구도보다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구체적으로는 그 내용적 맥락이 그렇게 만들었다. 포르노와 같은 카메라 구도를 사용하더라도, 그 맥락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것이라면 특별한 연출로 남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곳에 어떤 맥락보다는 `행위`만이 남았기에 이러한 아쉬움이 남는다. 영화에서 비추어진 주인공 `베네데타`를 보다 보면, 당대 배네데타의 의도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는 베네데타의 환시, 동성애 성행위, 부자연스러운 기적의 재현을 보여준다.


즉, 영화는 그 원인이 되는 베네데타의 심리를 조명하기보다는 그 결과를 비춘다. 이러한 표현방식을 쫓다 보면 표면적으로 베네데타는 이해할 수 없는 광신도처럼 느껴질 가능성이 있다. 이는 결과만을 보여주면서 베네데타의 감성을 추측하려는 감독의 의도로 이해할 수 있지만, 그러기엔 베네데타의 정서가 극도로 정제되어 표현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그녀의 행동은 명확하지만, 반사적으로 관객으로서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그래서 당대의 여성 권력과 성욕이 기존 기독교사회의 여성 차별적 권력 구조의 충돌하는 과정을 보고 싶었던 나에게는 아쉬운 일이었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영화에서는 종교적 맥락에 초점을 맞추고 여성 차별적 맥락이 아주 제한적인 방식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이러한 영화의 관점은 그녀의 동성애 애인이 붙잡는 것을 뿌리치고 돌아가는 베네데타와 마지막 문구에서 드러난다. 최소한 무신론에 기반을 둔 여성 관람객으로서 영화에서 표현된 베네데타는 이해할 수 없는 신비주의자로 비추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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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역사를 쫓아가다 보면 베네데타는 권력욕이 충분했던 전략가에 가까웠다. 베네데타의 실제 모습을 담은 책, `수녀원 스캔들`에서는 베네데타는 영리하면서 자신의 입지를 높이는 것에 집착했던 인물로 평가한다. 그녀가 가진 기이한 권력욕을 전제로 깔면 그녀가 행했던 신비 행위들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었다.

 

여성이 기적을 재현하는 것은 당대 사회에서 남성 주도적 권력을 수호하게 위한 목적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들은 `성녀`로서 추앙받고, 그리고 `마녀`로서 불태워지면서 기존 기독교 체계를 수호해왔다.


앞서 아쉬움을 표현했지만, 사실 영화는 베네데타를 제외한 당대 수도원의 생활상을 잘 표현한다. 수녀원장과 주교는 베네데타의 기적을 전략적으로 이용해 수녀원의 권위를 높였다. 수녀원장이 된 베네데타를 마녀로 몬 주체는 교황청의 권력자로서, 그는 신성한 존재가 아니다. 그는 기독교 체계를 수호하는 관리인으로서 그녀를 평가하고 처형하려 했다.


감독은 베네데타를 무너뜨리려는 이들을 현실적인 인물 중 하나로 묘사하는 데 집중한다. 사실 이 부분에서 감독의 연구와 고찰이 아주 잘 드러나는 부부분이다. 수녀원장은 막대한 지참금을 요구하고, 교황은 신비를 믿지 않고 발을 닦는 베네데타로부터 창부를 떠올린다. 애당초 교황이 구원을 바라는 신부에게 주교 사제를 찾아보라는 대사 자체에서 이들이 신비가 아닌 현실에 몸을 담는 인물임을 보여준다. 이러한 역사적 재현이 영화가 가지는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다.


하지만 베네데타는 이와 달리 처음부터 끝까지 신비주의자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는다. 사실 당대의 시선에서 보았을 때, 그녀는 예수로부터 이상한 성적 긴장감을 느끼고, 기적을 꾸미는 사기꾼같은 모습에 그녀의 동성애 연인 바르톨레아를 향한 욕망을 숨기지 않는 이단자다. 하지만 그녀는 그녀 자신이 정말 예수와 한몸이 된 존재라고 굳게 믿는다. 그녀를 불태우려고 한 수도원에 돌아갈 수 있는 것도 그녀가 정말로 그녀 자신이 신의 사자라고 믿기 때문이었다.


바르톨레아는 그녀가 권력에 대한 욕망으로 사람들을 속인다고 비판하지만, 베네데타는 끝까지 그 믿음을 고수한다. 심지어 그녀는 바르톨레아를 버리고 떠나기까지 한다. 이 부분은 자신이 신비를 속였다고 말한 실제의 베네데타와 대조적인 부분이다. 이 부분에서는 주연 배우의 인터뷰가 좀 더 뚜렷한 이해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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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데타를 연기한 주연 배우는 이러한 베네데타의 횡보에 대해 모호함을 연기할 거야’라는 마음가짐으로 연기에 임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그녀는 이어 베네데타가 만약 자신이 무언가를 혼신의 힘을 다해 믿는다면 그건 정말로 존재한다는 방식으로 이해했다. 베네데타가 거짓으로 사람들을 조종하지만 그건 다른 이들을 속이려는 의도가 아니라 단지 자신의 신념을 전달하려는 것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베네데타의 행동에 대해 선악이나 정당성을 평가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녀는 그녀를 억압하고 파괴하려 했던 인물들처럼 현실적이지 않고, 어떤 뚜렷한 윤리적 기준에 의해 행동하지 않는다. 하지만 당대의 체계 자체가 비이성적이고 논리적이지 않은 만큼, 그녀의 행동을 그저 비현실적이고 나쁜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어렵다.


왜냐하면 바르톨레아와 사랑을 속삭이던 그녀의 모습은 현대의 시점에서 보았을 때 결코 죄책감을 느낄만한 일이 아닐뿐더러, 후반의 전개를 생각해보았을 때 그녀는 자신의 사랑을 버리고 하찮은 취급을 받더라도 진심으로 마을의 사람들을 구원하고 싶어했기 때문이다. 신비의 힘으로 무장한 여성 권력자가 `기독교 왕국`의 최고 권력자인 교황을 전복시킨 것은 -윤리적 평가를 떠나- 당대 여성의 어떤 전복이나 저항 처럼 보이기도 했다.


종합하면, 영화 베네데타는 개인적인 기대에 비추어서는 아쉬운 전개 방식으로 진행되었지만, 꽤 재미있는 메시지를 던진다. 개인적으로 영화를 본 사람들에게 베네데타를 어떤 인물로 평가하는지 물어보고 싶다.

 

이러한 관점에서 영화에서 던진 질문 `베네데타는 악녀인가, 성녀인가?`는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내 대답을 먼저 말해보자면, 그녀는 특수한 사회에 드러난 한 여성이었을 뿐이다. 그녀는 광기인지 신념인지 알 수 없는 것을 원동력으로 행동했지만, 그러한 행동을 통해 `당대의 여성` 이상의 존재가 될 수 있었다.


그녀를 무언가로 만든 것이 있다면, 그녀를 둘러싼 복잡한 환경이 원인일 것이다. 영화의 초반부에 나온 것처럼, 죽음과 바보가 방구를 뀌는 것이 당시 사회의 모습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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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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