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헤다가블러'에서 '슈미'가 되기 까지

연극 <슈미>
글 입력 2021.11.16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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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변환]슈미 포스터.jpg


 

항상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며 우월감으로 가득 차 있는 슈미와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전임 교수 임용을 앞둔 경만은 신혼여행에서 막 돌아왔다.


이들의 친구 애경은 슈미와 경만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영국에서 깜짝 귀국한다. 그리고 유완이 영국에서 책을 발표해 큰 인기를 끌었으며, 곧 나올 후속작은 자신이 집필을 도왔다고 이야기한다.


한편, 도규는 슈미와 경만을 호시탐탐 자극하며 슈미를 손에 쥐려 하는데...

 


 

다섯 인물들의 동상이몽


 

<슈미>에서 인물들은 욕망해선 안되는 것들을 욕망한다. 주인공 슈미는 자신이 가지고 싶은 것은 모두 가져야 하는 성격이다. 따라서, 돈이 많은 남편과 결혼한 데다가, 자신의 남편인 경만과 사귄 적이 있으며, 자신의 것이라 생각했던  유완과 함께 작업하여 최고의 역작을 만들어낸 애경이 탐탁지 않다. 또한, 유완의 사랑과 콤플렉스를 악용하여 자살을 종용하기도 한다. 자신의 남편인 경만과 오랜 친구인 도규를 하인처럼 부리는 것은 덤이다.


애경은 이미 결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유완을 사랑한다. 그리고 런던에서 방탕한 생활을 하며 알코올 중독에 걸린 그를 가정 교사로 포장하여 집에 들이는 것도 모자라 유완이 한국으로 떠나자 가정을 버리고 쫓아 오기까지 한다.


경만은 정교수 임용을 앞둔 슈미의 남편이다. 그는 슈미를 위한답시고 분수에 맞지  않는 큰 집을 사고 그 안을 사치스럽게 꾸미고, 6개월간 신혼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유완의 원고가 역사에 남을 위대한 것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태워버린 슈미의 행위를 묵인한다.


유완은 엄청난 논문을 들고 런던에서 서울로 돌아왔다. 유완은 슈미를 사랑하여 그것의 모든 영감은 슈미로 부터 나왔다고 고백하지만, 슈미에게 유완은 슈미의 나르시시즘을 채워줄 장난감일 뿐이었음을 알고 절망한다. 그러나 유완 또한 자신을 충실히 보필하던 애경의 사랑을 논문을 위한 도구로써 이용하고 버린다.


마지막으로 도규는 슈미와 경만 부부의 오랜 친구로, 직업은 검사이다. 도규의 아버지는 슈미의  아버지의 운전기사였기에 자신과 태생부터 다른 슈미는 그에게 애증의 대상이었다. 따라서 도규는 슈미 곁에서 그녀를 수족이 되어 자신의 입지를 점점 넓히고 그녀에게 받은 수모를 대갚음해 줄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

 

 

 

각자의 욕망 그리고 테이블


 

이때, 세트의 중앙에 위치한 테이블은 인물들의 욕망을 투영한다. 미니멀한 세트의 중앙에는 한 쪽에 꽃이 놓인 긴 테이블이 있다. 플롯이 진행됨에 따라 그 플롯과 관련된 인물들은 테이블을 앞으로 밀고 나오는데, 슈미는 샹들리에가 있는 쪽을, 다른 인물들은 꽃이 놓인 쪽에서 각각 힘을 준다.

 

그리고 결말부에서 그것은 관객들의 발끝까지 오게 되고 그 순간 슈미는 권총으로 자신의 머리를 겨눈다. 이는 슈미가 자살에 이르는 과정 모두가 그 스스로 자초한 일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테이블은 새로운 각도를 만들어 내어 슈미와 다른 인물들 사이의 격차를 보여주기도 한다. 가령, 애경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유완이 경만의 총각파티에 가는 장면 같은 경우 테이블이 꽃이 없는 쪽으로 완전히 기울어져 있는데, 이는 애경과 슈미와의 기싸움에서 슈미가 승리했다는 것을 암시한다.

 

즉, 테이블은 연극 속에서 욕망의 수레바퀴이자 시소로서 작용하는 것이다.

 

 

 

<헤다 가블러>에서 <슈미>가 되기 까지


 

<슈미>는 "개인에게 가해지는 시스템의 폭력"이란 원작의 플롯을 그대로 따라가는 대신 개개인의 욕망 그리고 그에 따른 파국에 대한 내용을 중심으로 채워진다. 이는 시대적 흐름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세트에서 찾을 수 있었다.


가블러 장군의 초상화 - <헤다 가블러>에서는 중요하게 다뤄지지만 <슈미>에서는 등장하지 않는 오브제가 하나 있다. 바로 가블러 장군의 초상화이다. 가블러 장군은 헤다의 아버지다. 헤다는 아버지가 사랑할만한 자질을 모두 갖추었으나, 아버지에게 사랑받지 못한다. 헤다의 재능은 당시 사회에서 용인되지 않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헤다가 직접적으로 행동하는 대신 다른 사람들을 통해 대리만족하거나,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가블러 장군의 초상화는 누구보다 주체적이고 싶어하지만 아버지의 그늘 아래서 자신의 뜻을펴지 못하는 헤다의 콤플렉스 그 자체이다. 그러나, 포스트 모더니즘의 시대가 도래하고, 사람들이 모두 자기만의 방에 갇히게 되며, 혁명의 대상도 목적도 잃어버린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슈미>에서는 이 초상화가 사라지게 된다.

 

사치스러운 피아노 - 비슷한 맥락에서 피아노의 생략 또한 흥미로웠다. <헤다 가블러>의 결말은 강렬하고 화려하다. 헤다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꾸려갈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마저 사라지자 피아노 앞에 앉는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좋아하지 않지만 자신이 사랑하는 무곡을 열정적으로 연주한 후 아버지의 유품인 권총으로 생을 마감한다. 그에 반해 슈미는 환영 속에서 아직 도착하지 않은 피아노를 입으로 흉내 내며 연주하는 시늉을 하다가 자살한다. 실패자의 참담하고 처절한 마지막이다.


그 밖에도, 유비쿼터스 기술이 상용화된 세상과 스캔들과 관련된 서브플롯의 축소, VIP 클럽에서 메타버스의 도입 등 대담한 시도는 플롯을 망치지 않는 선에서 현시대상을 잘 반영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이러한 변경점들로 인해 <헤다 가블러>에서 입센이 구축한 헤다의 배경들이 사라지게 되었고 주인공이 가진 힘의 원천이나 사건의 전개가 모호해진 점은 조금 아쉬웠다.

 

 

 

신동하.jpg

 

 

[신동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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