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반오십 INFJ의 인턴 일지 Ep 2. 아무튼 출근

글 입력 2021.11.10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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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2-1. 옷이 없어



출근까지 D-5, 가장 중요한 것은 옷이었다.

 


옷.jpg

 

 

본가에 내려가기 전, 가볍게 옷장을 훑어보았다. 취준 생활에 코로나까지 겹쳤으니, 옷장 상태는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늘 입는 기본 면티에 면바지, 청바지 몇 벌로 겨우 연명하는 신세였으니.


그래서 본가에 내려간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쇼핑이었다. 돈을 벌기 위해 돈을 써야 하는 아이러니가 느껴졌지만 그때는 그런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모 기업에서 두둑이 받은 면접비가 수중에 있었고, 엄카찬스까지 허용되었기 때문이다.


다만 평소와 달리 고민거리가 있었으니, 바로 ‘어떤 옷을 사야 하는가’였다.


면접 날 흘깃 본 회사의 분위기는 상당히 자유로운 편이었다. 어느 직원 분은 쪼리를 신고 있었고, 하물며 인사담당자님이 반바지를 입고 있었으니 격식 있는 옷차림은 필요 없으리라고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주변에 정규 직장인이라곤 공기업에 다니는 친언니와 초등학교 선생님인 S가 전부인 난, ‘자유로운’의 범위를 어디까지 넓혀도 좋을지 감을 잡기가 어려웠다. 그들은 공(公)이라는 틀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으니, 청바지도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K사에 다니는 동기가 있지만 그 친구와는 당시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으니 제외한다.)


따라서 쇼핑의 기준은 ‘캐주얼하면서도 단정한 옷’이 되었다. 풀어서 말하면 출근룩으로 손색이 없되, 언제 어디에서라도 입을 수 있는 편한 옷이 되겠다. 쇼핑 시 가격과 디자인, 세탁 여부 등만 따지던 나에게 기준이 하나 더 추가된 셈이다.


그렇게 이것저것 따지며 쇼핑을 하니 얼떨결에 티셔츠 부자가 되었다. 그리고 훗날, 회사에 적응할 때쯤 살펴본 직원들의 옷차림은,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자유분방했다.


더운 여름 날, 하루는 한 여직원분이 민소매를 입은 것을 보았다. 나로서는 놀랄 일이었고, 공기업에 다니는 언니 또한 “우린 절대 불가능”이라고 말한 반면 K사에 다니는 동기 L은 “나도 많이 입었다”고 답했다. 내가 꽤나 보수적인 편이라는 걸 문득 깨닫는 순간이었다.

 

 


Ep 2-2. 갑자기 포스트를 쓰게 되었다



출근 전날 상경한 후, 본격적인 출근이 시작되었다.


정규 출퇴근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로, 지옥철 타임은 피할 수 있었다. 출근 후반부에는 요령이 생겨 거의 매일 앉아 가기도 했으니, 꽤 운이 좋은 편이었다.


첫 출근 날 회사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9시 45분. 도착하자마자 면접을 봤던 팀장님 T님이 반겨주셨다.

 

 

“왜 이렇게 일찍 왔어요ㅋㅋ”

 

“아ㅋㅋ 첫날부터 늦을까봐 여유롭게 나왔어요.”

 

 

출근 10~15분 전에는 오는 게 맞다고 생각했는데, 일찍 왔다는 말에 사뭇 놀라기도 했다. 훗날 알게 된 사실은 많은 직원들이 5분 전, 혹은 10시에 딱 맞춰서 출근하는 일이 다반사였고, 나도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지옥철이 아닌, 헬리베이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었다.)


아무튼 T님과의 인사 후, 나는 할 일이 없었다. 같은 팀원이자 사수 역할을 해준 J님은 그날 12시 출근이었고, 마찬가지로 같은 팀원인 E님은 휴가였던 것이다.


그렇게 어영부영 시간을 보낸 후, 출입 지문과 이메일 등록, OS 설치 등 업무에 필요한 기본적인 사항을 처리하고 간단한 인수인계를 받다보니 어느덧 점심시간이 되었다. 멍하니 눈치만 보던 내게 T님은 밥을 먹으러 가자고 했고, 또 한 번 어영부영 T님과 단둘이 식사를 했다.


밥을 먹으면서 무슨 대화를 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평소 낯가림도 심한데다 첫 출근의 긴장이 지속되었기 때문에, 궁금한 점만 이것저것 여쭤봤던 것 같다. 호칭은 OO님이라고 부르는 게 맞냐는 등 회사 생활에 대한 질문이었다.


어떻게 보냈는지도 모를 점심시간이 지난 후에는 본격적인 첫 업무를 하게 되었다. 바로 오늘자 네이버 포스트를 업로드하는 것으로, 앞으로 계속 같이 일하게 될 J님께서 알려주신 업무였다.

 

 

“대충 무슨 요일에 이러한 주제나 저러한 주제로 포스트를 쓰는데, 오늘 한 번 써보시겠어요?”

 

“네? 지금 바로요? 정말 아무 주제나 되나요?”

 

“네네 괜찮아요!”

 

 

첫 출근부터 뜬금없이 공식 업무를 할 줄은 몰랐으니, 당황했던 마음이 컸다. T님으로부터 간단한 업무 내용만 들었지,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자면, 같은 인턴이었던 J님에게는 그것이 최선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대표적인 업무인 여러 SNS 관리 중 가장 간단한 것이 포스트인 만큼, 일단 한 번 시켜보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을 테니.


하지만 그날 엉거주춤 작성했던 포스트는 게시하지 못했다. 그때는 게시할지 고민해보겠다는 T님의 말씀에 고개만 끄덕이고 말았는데, 시간이 조금 흘러 회사의 색을 조금씩 알아차릴 때쯤에야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작성했던 포스트는 뜬금없었다는 것을.


여건 상 체계적인 교육이 불가능한 만큼, 그 외 이어진 다른 업무들도 마찬가지였다. 한두 번씩은 완전히 폐기되는 쓰라림을 겪으며, 끊임없이 몸으로 부딪치고 실수해가며 배우게 되었다.

 

 


Ep 2-3. 저녁이 있는 삶



오후 7시 정각, 얼른 가라는 T님의 말씀에 칼퇴를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는 밀린 카톡에 답장을 하느라 정신없었다. Ep 1에서 말했듯이 첫 출근 날은 나의 생일이었고, 고마운 친구들과 지인들의 축하 카톡을 받았기 때문이다. (오전에 뵈었던 인담자 분도 오늘 생일이냐며, 서류 정리하다 깜짝 놀랐다고 하셨다.)


생일이지만 딱히 약속을 잡지는 않았었다. 친구들이 바쁜 것도 한 몫 했고, 나 또한 첫 출근 후에는 지쳤을 거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생일을 이렇게 보내는 건 억울했던지, 퇴근길에 조각케이크를 포장했다. 그리고 시원하게 에어컨을 틀어놓은 자취방에서 당시 좋아하던 드라마를 보며 달디단 케이크를 먹고, 친구들과 카톡도 하고, 황폐해진 SNS에 게시물도 올렸다.

 

 

생일.jpg

 

 

문득 이 시간이 휴식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취준 시절에는 저녁을 넘어 때로는 늦은 밤까지도 할 일을 붙잡고 있었으니, 저녁을 온전히 쉬어보는 게 오랜만이었던 것이다. (물론 작정하고 쉬러 가는 본가 시절은 예외다.)


이래서 저녁이 있는 삶이 중요하다고 하는 걸까. 3개월이 지나 다시 백수가 되어도 이 생활 패턴이 유지될지 궁금하기도 했다. 이 글을 쓰는 현재는 본가에 있어 알 수 없지만, 다시 서울로 돌아가도 내일의 추진력을 얻게 해주는 저녁의 휴식은 쉽사리 놓지 못할 것 같다.

 

 

[주혜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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