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우리들의 아버지에 대하여 - 연극 '가족같이'

창작집단 우주도깨비의 연극 '가족같이'를 관람하고
글 입력 2021.11.01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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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자 본인 촬영

 

 

약 100석 남짓의 작은 소극장. 서울시 성북구에 위치한 극단 여행자가 운영하는 극장인 여행자 극장에서 2021년 10월 15일부터 31일까지 공연되는 창작집단 우주도깨비의 연극 <가족같이>(김헌기 연출)를 관람하였다.

 

연극 <가족같이>는 올해 서울문화재단 예술창작활동지원사업 선정작으로, 2021년 춘천연극제 코미디 럭키세븐에서 대상, 연출상, 연기상을 수상하며 3관왕에 올랐고, 2020년 월드 2인극 페스티벌에서 대상과 연기상 모두를 수상하는 영예를 얻은 작품이다.

 

창작집단 우주도깨비는 과학의 영역인 '우주'와 판타지의 영역인 '도깨비'의 합성어로, 논리와 비논리, 복제와 창작 사이에서 '우주도깨비'만의 언어를 찾아내 이 시대에 위로가 되는 작품을 만들고자 하는 집단이다. 음악가이자 작가, 연출가로 활동하는 김헌기를 비롯하여 연극, 음악, 전통 예술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하는 이들이 모여 꾸린 집단이며, 2020년부터 연극 <가족같이> 작품을 제작하였고 2021년에 정식으로 창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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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가족같이> 포스터 이미지 © = 창작집단 우주도깨비

 

 

작품 소개

 

연극 <가족같이>는 한국의 가족상을 그리는 작품이다.

 

'나'는 한국의 적당히 평범하고, 적당히 사연 많은 집안에서 태어났다. 태어나 처음 만난 가족이라는 사회는 별과 별 사이만큼 거리가 멀다. '나'는 가장 자신을 불편하게 만들었던 '아버지'라는 존재를 탐구하고 이해해봄으로 괴로움을 극복하고자 한다. 연극 <가족같이>를 통해 자신의 가족이 거울처럼 비춰 보이는 순간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가족의 이야기를 돌아보며, 코로나로 인해 닫혀있던 마음을 두드리는 가슴 따뜻한 공연이 될 것이다.

 

© = 창작집단 우주도깨비

 

 

연극 <가족같이>에서는 두 명의 배우(김다영, 정회권)만이 등장하여 약 75분 남짓 한 시간 동안 작은 소극장을 가득 메꾸는 2인극 공연이다. 공연이 시작되고 배우는 "친구들~ 안녕!"이라는 아동청소년연극을 관람할 때의 인사말 같은 것을 관객에게 건넨다. 이후 마치 수학여행 레크리에이션 시간처럼 손뼉을 치는 짤막한 소통의 사간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연극 <가족같이>의 공연이 시작된다. 밝고 다정한 시작으로 관객들은 잔뜩 긴장한 어깨의 힘을 조금은 내려놓은 채 작품에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두 대의 스탠드 조명, 그리고 두 개의 의자. 간결한 무대 위 캐주얼한 의상을 입은 배우들은 빨래집게와 책과 같은 일상적인 물건을 움직이며 마치 인형극을 벌이듯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으로 작품의 시작을 연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간단하면서도 난감한 질문을 시작으로 진행되는 이야기에서 '나'는 바닷속과 하늘 위를 오가며 근원에 대해 탐구한다. '나'는 물고기이기도, 새이기도 하다면서, 마치 동화 속 이야기 같은 장면이 펼쳐진다. 마침내 만난 '별님'에게서 "너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라는 조언을 듣는다. 스탠드 조명에 의해 맺히는 그림자, 그리고 그 안에서 움직이는 다양한 오브제를 통한 두 명의 배우가 진행하는 인형극 같은 이야기. 비밀스럽고 동화적인 분위기는 관객의 몰입도와 흥미를 높이고 작품은 자연스럽게 본격적인 이야기를 진행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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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가족같이> 공연 이미지 © = 창작집단 우주도깨비

 

 

결국 펼쳐지는 이야기는 '나'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다. 특히 '나'의 가족 구성원 중 '아버지'라는 인물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가 펼쳐진다. '나'의 아버지는 귀하디 귀한 막내아들로 태어난 인물이다. 그는 괴팍한 기분파에 흥청망청 돈을 쓰며 술과 담배, 도박에 찌들어 산다. 가족의 생계를 이끌어나갈 경제 활동은 일체 어머니가 짊어진다. 더군다나 그는 술만 마시면 어머니에게 폭력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그럼에도 자신이 벌인 일련의 일들에 대한 반성은 물론이고, 변화의 모습은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는 아버지. 심지어 그는 가부장적인 생각으로 똘똘 뭉쳐, 낯부끄러움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 뻔뻔함의 극치인 인물이다.

 

그런 아버지 밑에서 자라왔던 '나'라는 인물. '나'와 아버지에 관련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하나를 꼽아보도록 하겠다.

 

'나'는 중학생 시절 동급생으로부터 괴롭힘을 당한다. 그리고 이를 아버지에게 털어놓는다. 평상시 가족에게 무심했던 아버지는 그 이야기를 듣고 매우 태연하게 반응한다. 그러고는 다음 날 그 아이들을 찾아가 술과 치킨을 사고,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가며 '친구끼리 사이좋게 지내'라는 말을 덧붙인다. 다음 날, '나'를 향한 괴롭힘은 사그라든다. 사랑의 표현이 서툴지라도, 아버지의 든든한 포용력이 나타나는 장면이었다. 그러나 이 장면이 나타나기 무섭게, 아버지로 인해 늘 위태위태했던 가정에 어느 날 갑자기 가정을 벼랑 끝으로 내몬 사건이 벌어진다. 어느 날, 어머니는 가장 노릇을 하지 못하는 이 아버지의 '기'를 세워주기 위해 '나'의 형이 다니는 학원비를 대신 전달해 줄 것을 부탁하며 아버지에게 학원비를 건넨다. 학원에 가기 위해 양복을 챙겨 입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멋을 낸 아버지. 그러나 그는 그 길로 학원비를 흥청망청 다른 곳에 다 써버린 뒤 집에 돌아오지 않는다. 그로 인해 '나'의 형은 대학을 포기하고, 아버지에 대한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다. 어머니는 집을 나가버리고, 할머니도 집을 떠나 따로 생활하시기를 선언한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찾아온 할머니의 장례식. 그동안 사라졌던 아버지가 쭈뼛쭈뼛 느지막이 나타난다. 이후 아버지는 '나'의 형으로부터 결혼 소식을 듣게 되고, 형은 청첩장과 함께 양복 맞출 돈을 그에게 건넨다. 아버지 얼굴에는 반가운 미소가 맺힌다. 그리고 이내 공연은 이렇다 할 결론 없이 열린 결말로 막을 내린다.

 

연극 <가족같이>는 '나'의 가족 구성원인 '아버지'를 중점으로 하여 펼쳐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공연 팜플렛에 적힌 설명에 의하면, '나'는 다름 아닌 이 연극의 작가이자 연출인 '김헌기'임을 알 수 있다. 어린 시절로의 회귀, 그리고 그 안에서 가장 납득하기 힘든 존재인 아버지에 대해 탐구함으로써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고민하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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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가족같이> 공연 이미지 © = 창작집단 우주도깨비

 

 

 

일인 다역의 역할놀이와 오브제의 활용을 통한 연극적 재미


 

연극 <가족같이>에서는 두 명의 배우만이 등장하는 2인극이다. 두 명의 배우가 '나'의 어머니, 아버지, 할머니, 형, 그리고 '나'와 같은 다양한 캐릭터들을 일인 다역으로 연기하며 무대를 채운다. 간단한 소품 착용의 변환을 주며 시시각각 변모하는 배우의 연기를 관람하는 재미가 있었다.

 

배우의 일인 다역을 통해서 캐릭터의 다양성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여러 공간의 변화와 상황의 설정 변화가 드러났다. 여기에 더해, 장면의 이해를 돕기 위한 해설자의 역할까지 배우들이 수행하였기 때문에 모든 장면은 유기적으로 이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으며 관객들에게 보다 친절하게 접근할 수 있었다.

 

 

 

밉고도 못난, 우리들에게 '아버지'란,



연극 <가족같이>에서는 괴팍하고도 무력한 아버지를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 속에서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각자만의 사정이 존재하지 않는 사람은 없겠지만, 작품 속에서 '나'의 아버지는 그 누가 봐도 납득하려야 납득할 수 없는 사정으로 똘똘 뭉쳐있다. 연극 <가족같이>에서는 이런 아버지의 싫고 미운 모습들과 더불어, 반면에 사랑을 주고받는 것에 서툰, 그리고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서툰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연극은 막을 내린다.

 

공연을 관람하던 필자는 머릿속에서 아버지에 대한 질문이 계속 따라다녔다. 필자는 현재 필자의 어린 시절부터 함께 숨을 내뱉으며 살아왔던 아버지에 대한 이해가 완전히 다 되지는 않는 기로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현재까지도 아버지를 향한 답을 내릴 수 없는 질문들이 맴돌고 있던 차였다. 아버지가 나 자신에게 상처를 줬던 시간들, 그리고 반대로 내가 아버지에게 상처를 줬던 시간들 사이를 비집고 생기는 물음표들은 단순히 대화만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것들이었다.

 

가족은 떨어져 있을 때 비로소 사이가 좋아진다는 말이 괜히 있을까. 가족이란 가장 오랜 시간을 나와 함께 한, 그리고 어쩌면 나의 일부를 구성하여 나와 가장 닮은 구석이 많은 존재임에도 가장 납득하기 어려운 존재이기도 하다. 필자도 그렇다. 늘 옆에 있어줄 것만 같은 것이 가족이기 때문에, 그 소중함을 깨닫지 못하고 가족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한 적도 있었고, 가족 구성원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않고 그가 가지고 있는 부분 중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들을 탓하고 바뀌기 만을 바랬던 적도 있었다. 연극 <가족같이>에서는 그런 가족의 존재를 그냥 있는 그대로 바라볼 것을 조언한다.

 

그렇지만 공연을 보고 나오는 길에 필자의 마음은 평온하지 않았고 오히려 복잡하게 소용돌이쳤다. 유쾌한 웃음과 여운을 지닌 작품이었지만, 관객석에 앉아 그것들을 바라보는 필자의 마음은 그야말로 싱숭생숭했고, 극장 밖을 나오는 순간까지도 이어졌던 것이다. 마음이 답답하고 해결되지 못한 부스러기가 쌓이고 쌓여 목구멍을 콱 막는 느낌이 들었다. 되려 작품 속 '나'의 아버지보다, '나'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해지기도 했다. 그런 '노답'인 아버지와 꾸역꾸역 살아가며 생계를 이끌었던 어머니의 이야기. 그런 이야기가 나는 더 궁금해졌다.

 

아버지의 못난 모습들, 그리고 그 이면에 숨겨진 서툰 사랑의 방식이나 쓸쓸한 아버지의 뒷모습과 같은 것들을 조망한 이 작품이 필자의 마음에 크게 와닿지 않았던 이유는 다소 틀에 박힌 전형적인 메시지에 지니지 않는 결말을 맞이했기 때문일 것이다. 혹은 필자 본인이 아직까지도 아버지를 받아들이는 과정의 기로에 서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해'와 '인정'은 다른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연극 <가족같이>에서는 밉고 싫은 가족의 존재를 '이해'보다는 한 발 더 나간 '인정'을 할 것을 이야기한다. 필자 또한 현재 그런 마음가짐으로 납득하기 힘든 지난 시간들을 받아들이고 있긴 하지만, 아직까지 힘든 것은 분명하다.

 

어찌 됐건 변하지 않는 사실 하나는 우리들의 아버지는 그때에도, 그리고 지금에도 말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매번 상처를 준다. 어쩌면 가족이라는 존재는 해석하고, 이해하고, 납득하려는 것 자체가 힘든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것은 '힘든 것'이지 '불가능한 것'이라던가 '잘못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아버지를 이해한다기보다는 아버지가 나에게 준 상처를 들여다보면 편이 더 빠를 수도 있겠다. '그'는 나의 아버지고, '그'가 나에게 상처를 준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아버지라는 존재를 부정할 수 없다면, '그'가 나에게 준 상처를 나라도 오롯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나 자신과 아버지를 구분할 필요도 있다. 이것은 필자가 어느 상담사를 통해 받은 조언이기도 한데, 부모에게서 받은 상처로 인해 부모라는 사람을 이해해 보려는 시도를 거듭하면서 얻어지는 혼란으로 인해 분노와 우울의 감정으로 더 깊이 빠져들 수 있다고 한다. 따라서 '부모는 그런 사람이고, 나는 이런 사람이다.', 즉, '부모는 부모고, 나는 나다.' 같은 생각을 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 더해져서, '부모가 나에게 준 상처는 상처고, 나는 나다.'까지 구분해서 바라보는 시선이 필요하다.

 

연극 <가족같이>에서 있는 그대로의 아버지를 바라볼 것을 조언하고자 했다면, 아버지의 모습을 묘사하는 것에 집중되기보다는, 작품 속 '나'가 아버지를 받아들이는 과정에 보다 초점을 맞췄다면 어땠을까. '삶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카피로 연극 <가족같이>가 홍보되고 있었으나, 아버지를 받아들이는 것에 서툰 필자는 이 작품을 보는 내내 '가까이서 봐도 비극, 멀리서 봐도 비극'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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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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