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람은 한마디로 정의될 수 없어 [도서/문학]

글 입력 2021.10.2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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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슬픔이여 안녕"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참 좋고 맑은 날씨가 계속되는 10월의 요즘이다. 얼마 전부터 사람들을 자주 만나며, 그들이 가진 입체적인 일면을 확인할 일이 있었다.

 

우리는 TV 속 이미지에 너무나 길들여져 있기에, 사람들을 대부분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 화가 많은 사람과 화가 적은 사람, 예민한 사람과 무딘 사람처럼 양극단으로 구분하데 익숙하다.

 

그러나 내가 만난 사람 A는 특정 문제에는 예민하면서도 다른 문제에는 한없이 무뎠고, 어떤 친구에게는 천사처럼 대해주었으나 어떤 친구에게는 까다롭고 신경질적으로 굴었다.

 

그녀는 가족에게는 과묵한 성격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친구에게는 항상 웃는 성격으로 알려져 있었고, 연인에게는 감정 기복이 널뛰는 사람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슬픔이여 안녕"


 

이처럼 우리는 살면서 계속해서 사람이 입체적이라는 점을 알게 된다. 내가 이런 진리 아닌 진리를 처음 깨달은 것은 18살 무렵, 프랑소와즈 사강(Francoise Sagan)이라는 작가의 “슬픔이여 안녕(bonjour tristesse)”이라는 소설을 만났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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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프랑소와즈 사강(Francoise Sagan)

 

 

작품의 주인공 세실은 열일곱 살의 소녀다. 그녀는 어린 시절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인 레이몬드와 살아왔다.

 

그녀는 어느 날 코트다쥐르에 있는 별장으로 아버지와 그의 젊은 연인 엘자와 함께 여름휴가를 가게 된다. 그리고 거기서 어머니의 오랜 친구인 안느가 찾아온다.

 

바람둥이였던 아버지 레이몬드는 어느새 안느의 매력에 빠져 연인 관계가 된다. 그러나 세실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인정한 아버지와 엘자의 관계가 깨지고, 새로운 안느라는 연인이 개입하는 것에 혼란스러움을 느낀다.

 

이윽고 세실은 엘자가 아버지를 유혹하도록 그녀를 설득한다. 그리고 엘자와 아버지가 키스하는 모습을 일부러 안느 앞에서 보여준다.

 

아버지와 결혼을 약속했던 안느는 너무나 충격받은 나머지 그 길로 차를 몰고 나가 교통사고로 죽는다. 그녀의 죽음이 교통사고였는지, 혹은 교통사고로 위장한 자살이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열일곱밖에 되지 않은 어린 세실은 결국 안느가 충격을 받아 차를 몰러 나갈 때 자신도 모르게 절절한 용서를 구하고 만다.

 

 

엔진이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절망감에 빠져 있었다. 안느가 이대로 가 버려선 안 된다!

 

“용서해 줘요. 제발 부탁이에요.......”

“너의 무엇을 용서하지?”

 

안느의 얼굴에서 끊임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가엾은 아이!”

 

그녀는 한순간 자신의 손을 내 볼 위에 얹었다. 그러고는 가 버렸다. 

 

나는 자동차가 집 모퉁이로 사라져 가는 것을 보았다. 나는 멍청하게 선 채 어쩔 줄을 몰랐다. 모든 것이 그처럼 빨리 끝나 버릴 줄이야! 그리고 안느의 얼굴, 그 표정.......


- "슬픔이여 안녕" 

 


세실은 자신도 별장에서 시릴르라는 젊은 대학생과 사랑에 빠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타인의 사랑은 이해하지 못했다. 결국 이 이야기는 단편적으로 읽었을 때는 멍청한 세실의 개그에 가까운 자학, 그리고 연이은 실수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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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슬픔이여 안녕"에 나오는 세실과 안느

 

 

그러나 세실은 복합적인 인물이다. 그녀는 자기혐오의 환경 속에서 자라왔다. 그녀는 어머니를 일찍이 여의고, 진중함이 없으며 여성편력이 심한 아버지와 둘이서 지냈기 때문이다.

 

세실은 사랑받고 싶었고, 그래서 대학생과 무턱대고 급한 사랑에 빠졌으며, 안느를 바라보며 자신이 겨우 구축해놓은 안정적인 세계가 무너져 두려움을 느낀 동시에 그녀에게 관심을 갈구하고자 했다.

 

 

 

사람의 입체적인 일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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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세실

 

 

결국 세실이란 인물은 사랑이 조금만 뒤틀리면 한없는 미움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 아버지는 바람둥이지만 순간의 사랑에 매우 헌신적인 사람이었고, 세실에게 안정적인 환경을 제공해주지는 못했지만 딸을 매우 사랑했다.

 

안느는 연인이 있는 남자와 사랑에 빠졌지만, 차분하고 성숙한 사람이었고, 순간의 감정에 차를 몰고 나가 사고를 당할 만큼 극단적이기도 하다.

 

엘자는 젊고 아름답지만 멍청하기도, 동시에 진솔하기도 하며, 시릴르 역시 다정다감하고 열정적이지만 문제의 순간에서는 이기적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세실은, 사람을 싫어하지만 사람을 사랑하기도 하고, 불안정하고 나쁜 일들을 저지르지만 동시에 착한 성품을 가진 사람이기도 하다.

 

그녀는 이 모든 일들을 통해 슬픔이라는 감정에 첫 인사를 건넨다. 세실은 그렇게 성장한다. 사강이 첫 번째 작품인 이 소설로 문학 비평상을 받은 이유는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인생의 여정이란 결국 ‘나에게’ 잘 맞는 사람을 찾아 나서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얼마나 까탈스럽고, 무디고, 못 돼먹었고, 천사인 사람인지는 상관없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형용할 수 없는 상호작용을 통해 이뤄지는, 하나의 마법 같은 것이므로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마도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날씨가 좋은 날에 순간순간의 그러한 관계들을 소중히 하는 것, 때때로 찾아오는 슬픔에는 당당히 인사를 건네는 것, 그것이 전부일지도 모른다.

 

 

 

조소연 Nametag.jpg

 

 

[조소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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