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지금, 잘 일하고 있나요? [사람]

잘 일할 수 있게 되면, 진심이 된다
글 입력 2021.10.25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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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 전, 스타벅스 현장 직원(파트너)들의 파업 소식을 들었다. 그것은 끊임없는 프로모션 행사와 기나긴 대기 손님 줄로, 이제는 지칠 만큼 지쳤다는 이들의 기본권을 향한 몸부림이었다. 몇 시간 내내 화장실을 가는 것도 제대로 할 수 없고, 쉬는 시간은커녕 밥은 협소한 창고 겸 휴게 공간의 대걸레 옆에서 먹어야 하고, 그런 날들이 이어짐에도 인력은 제대로 충원되지 않았지만, 부지런히 이어지는 프로모션 행사에는 고통받아왔다는 그들의 이야기.

 

더한 것은 직원들을 진상·갑질 손님들로부터 보호해주는 내용의 게시물이, 스타벅스 매장에서 어느 순간 사라져버렸다는 것이다. ‘파트너는 스타벅스의 가장 소중한 자산.’ 그 문구가 그렇게 고객들 보기에 흉하다고 말이다.


 


1. 스타벅스 파트너들의 이야기를 접하고


 

서로를 향한 존중과 배려.jpg

> 과거 스타벅스 카운터에 있었던 게시물

 

 

더는 스타벅스를 이용하고 싶지 않아졌다. 나는 그 직원들이 매일 해오던 것의 반밖에 되지 않을 근무 시간 동안, 3분의 1정도 될 것 같은 고충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고작 3분의 1. 나는 한 시간만 손님들이 연이어 밀려와도 발을 동동 구르고, 10분만 손님을 기다리게 해도 죄송해서 어쩔 줄을 몰라 하며 벅참을 느끼는데, 저들은 쉴 틈 없는 손님 폭발 프로모션 마케팅에 하루하루가 얼마나 두려웠을까? 화려한 프로모션 뒤 그들에게 펼쳐진 손님 대란과 열악한 근무환경, 부족한 인력과 휴식은 노동에 대한 강한 회의감과 박탈감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임금을 지급해주는 직장이 잘되는 것은 본래 좋은 일이다. 그리고 그곳이 잘 굴러가고 프로모션을 잘 진행할 수 있을 만큼의 역량을 갖추게 된 데 현장 파트너들의 덕택은 넉넉히 8할보다도 더 될 것이다. 그런데 그런 그들이 그만한 노동을 하며 보호받는 문구 하나 제대로 용납받지 못하니, 프로모션 행사가 어찌 달가울 수 있을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지점은, 그래서 그들이 회의감과 박탈감을 느껴가며 노동해야 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이냐는 것이다.


돈을 받았으니까? 그러기로 했으니까? 노동자니까? 그런 게 카페 종사자인 거니까? 아무튼 그렇게 처음으로 제 목소리를 낸 직원들에 스타벅스 코리아는 깜짝 놀라, 서둘러 채용 인원을 늘리고 임금 체계 또한 개편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스타벅스 파트너들의 소식과 함께 지난 나의 노동 경험 속 부당함들을 곱씹어보면, 노동이란 오늘날의 우리에게 무엇인지, 무엇이기에 이렇게까지 중요한 어감의 단어가 된 건지, 그리고 우리가 바라는 그 노동은 도대체 어떻게 이루어지면 좋을지, 괜스레 푸념 어린 생각들을 하게 된다.

 

 


2. 노동이란 어떤 것이기에



노동은 중요한 가치다. 해야 하는 것이고, 경험으로 남는 것이며, 꿈과 어떤 식으로든 직결되는 것이다. 자아실현이 될 수도 있고, 정체성으로 자리매김할 수도 있고, 그렇지만 탈피하고 싶을 때도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함께 해야 하는 것이 되겠지. 누군가에게는 노동이 이보다 더 큰 의미일수도, 덜하거나 그저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정의들의 언저리쯤, 오늘날 우리가 믿는 노동의 의미가 있다는 것. 우리에게 노동은 대체로 숭고한 미덕이라는 것.


그렇다. 노동은 어느새 고대 사람들이 여기던 것과는 완벽히 정반대의 가치가 되었다. 물론 맨입으로 우리에게서 그런 입지를 얻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거의 만민 공통 생계유지 수단이라는 키워드와 직결되는 노동은 우리에게 결코, 아니 절대 괄시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노동이 오늘날 긍정적인 삶의 미덕이 되기까지 이른 것에는 그 외에도 너무 많은 이유들이 숨어 있다. 왜냐하면 시대가 거듭되면서 노동의 카테고리는 너무나도 다양한 이름으로 다양한 사람을 계발시키고 인간 세상을 발전시키는, 무궁무진하고도 근원적인 힘이 되었기 때문이다.



꿈을 묻는 학교.JPG

> 꿈을 물었던 학교

 

 

그래서 지금도 많은 이들이 아이들에게 커서 하고 싶은 일을 묻고, 그것을 위해 공부하게 하고, 성인이 되기 전에 전공하고 싶은 학문을 결정하도록 권장하고, 그것을 미래의 삶을 책임져줄 하나의 노동으로 발전시키길 바란다. 인생에서 필수불가결한 노동을 이왕이면 자아와 묶어 함께 발전시켜나갔으면, 행복하게 해나가며 살았으면 좋겠으니까. 그리고 그런 이들 아래에서 자라난 사람들에게는 그만큼 자신이 하고 싶은 일, 일하고 싶은 환경, 일하며 주어지는 조건과 페이 같은 것이 너무나도 중요해졌다. 그것들을 곧 자아의 일부로 여기게도 되었다. 이제는 더 많은 현대 사람들의 자아정체성 중 하나가 어떤 노동을 어떻게, 어떤 곳에서, 어떤 사람들과 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실현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노동이라는 단어는 ‘자아’라는 단어와 비례하여 중요한 어감이 될 수밖에.


그리고 그런 사람 중, 대충 만들어진 공간에서 대충 형성된 체계를 따라 대충 이루어지는 노동을 하고자 하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노동이라면 뭐든 하고 싶다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대신 할 수만 있다면 나를 더 발전시켜줄 수 있는, 존중해줄 수 있는, 정당한 대가와 교환될 수 있는, 그것도 아니라면 스스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지점들이 충족될 수 있는, 그런 노동을 바랄 것이다. 이 부분은 어떤 직급을 논하더라도 변할 수 없다.


 

 

3. 잘 일한다는 것에 대하여



한편 파업이 있기 전, 스타벅스의 몇몇 파트너들은 일명 ‘줄퇴사’를 결정했다. 그리고 그들의 결정에는 이러한 것들이 수반되어 있었을 것이다. ‘여기는 더 이상 내가 있을 곳이 아니다’라는 생각과, 더 ‘잘’ 일할 수 있는 곳으로 이직해야겠다는 결심.



스타벅스_(7).jpg

출처: 스브스뉴스 유튜브 채널

 

 

나 또한 그런 생각과 결심으로 두어 번의 이직을 결정한 적이 있다. 사장님의 폭언에 끓어오르는 스트레스를 참기 힘들어 그만둔 적도 있고, 동네에서 가장 바쁜 매장이었음에도 인력을 줄이는 본사에 스타벅스 파트너들처럼 마음이 돌아선 적도 있다. 심지어 한가했지만 나를 자판기처럼 생각하는 손님들에 말과 초점 없이 업무에만 충실해야 했던 어느 날에는, 가치 있는 노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더 가치 있는 일터로 자리를 갈아탄 적도 있다. 폭언 속에서 뛰어난 업무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 리 없고, 인력을 무리하게 줄이는 곳에서 섬세하고 친절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는 없으며, 자판기가 되어야 하는 곳에서는 좋은 노동을 할 수가 없지 않은가. ‘꿀알바’라 불리는 한가한 매장을 뒤로해서라도, 나는 더 ‘잘’ 일하고 싶었다.

 

그렇다면 그놈의 ‘잘 일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무엇이기에, 스타벅스의 명성과 자부심에도 파트너들은 버티지 못하고 등을 돌린 것일까. 나는 왜 두어 번씩이나 자발적으로 이직을 해야 했을까. 어떤 일터에서나, 어떤 노동이나 힘들지 않을 수는 없는데 우리가 괜한 투정을 부린 것일까?

 

아니. 잘 일한다는 건, 우리 개개인이 어릴 적부터 키워왔던 노동에 관한 생각, 우선 가치, 희망 사항 같은 것들을 일하는 동시에 최소한이라도 충족시키고 만족감을 얻어가며, 그 일에 대한 능률까지 극대화할 수 있는 노동 생활에서의 상태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일하는 곳이 아무리 그럴싸한 명성을 가져도, 일이 많지 않고 한가하여 몸이 편하거나 임금이 두둑해도, 일하는 사람의 우선 가치가 괄시 되고 최소한의 희망 사항마저도 충족될 수 없다면 그들은 ‘잘 일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나의 경우에는 노동이 곧 자아실현의 수단 중 하나이자 정체성 형성 장치다. 나의 노동이 내게 그런 기능을 해주는 동시에 내 자아와 함께 성장할 수 있었으면 한다. 그래서 커뮤니케이션이 있고 배움이나 보람이 있는 곳을 원한다. 그런데 그런 곳이 아니라면 버틸 수는 있더라도 ‘잘 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게다가 나는 자아를 노동으로, 노동을 자아로 연결하여 두 가지 가치에 대해 심도 있게 고민하도록 배우며 자라온 세대다. 그리고 그런 배움을 매우 충실히 수용해왔다. 그래서 은연중에라도 무엇을 하고 싶고, 어디서 하고 싶고, 어떤 대우와 조건 아래에서 하고 싶은지가 매우 뚜렷하고 중요하다. 그것 중 어느 하나라도 내게 커다란 만족감을 쥐여줄 수 있는 곳이라면 나는 뛰어난 능률은 물론 거듭되는 성장까지도 약속할 자신이 있다. 바로 그런 상태에, 나는 비로소 ‘잘 일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게 뭐, 어디 나만의 이야기일까?


잘 일할 수 있게 되면 우리는 더 섬세해진다. 한 번 더 들여다보게 되고, 하나의 일을 하면서도 혹시 모를 다른 관련 요소들까지 함께 고려하려 들게 된다. 잘 일할 수 있게 되면 더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위해 더 자발적으로 노력한다. 웬만해서는 “에이, 이 정도는 괜찮아!”라는 생각에 관대해지지 않게 된다. 잘 일할 수 있게 되면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더 배려하게 된다. ‘아 뭐 알아서 하겠지.’ 이런 생각을 하고 싶지 않게 된다.

 

즉, 잘 일할 수 있게 되면, 진심이 된다. 그리고 그럴 때 우리는 우리의 능력을 더 다듬어 성장하고자 하게 되고, 비로소 일터의 가치까지도 함께 빛낼 고급 인재로서의 자격을 갖춘다. 누구든 진정으로 잘 일할 마음이 있다면, 그런 곳에서라면 말이다. 그러니 잘 일할 수 있게 해줬으면 좋겠다. 잘 일하고 싶은 곳에서, 잘 일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세상의 수많은 일터들이 어떻게 하면 우리가 더 잘 일할 수 있을지 고민하며, 우리에게 이렇게 물어줬으면 좋겠다.

 

“지금, 잘 일하고 계신가요?”

 

 

 

정소미.jpg

 

 

[정소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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