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향 : 떠나갔지만 곁에 있는 - 펄스테이, 머스키 마일드

글 입력 2021.10.13 0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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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부터 하자면, 난 향수 애호가는 아니다. 향수보다는 바디워시나 샴푸의 향을 더 좋아하는 편, 아직 향수에 크게 투자할 용기도 없는 편. 하지만 관심은 있는 편. 그렇게 나는 천천히 나만의 향수 즐기는 법을 정리해 왔고, 그러던 와중 '펄스테이'를 만났다.

 

 

Brand | 펄스테이 (perfume+stay=perstay)

Product | 머스키 마일드(Musky Mild)

 

Top | Mandarin, Black Currant

Middle | Orange Flower, Jasmine, Tuberose

Base | White Musk, Vetiver, Vanilla

 

 

친구와 향수 공방에 간 적이 있다. '저는 평소에 이거 써요'라고 말할 만한 향수도 마땅치 않고 유명 브랜드의 향수에 대해서도 소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나였기에, 유일하게 좋아했던 한 브랜드의 향수를 레퍼런스로 무작정 내 후각에 향수 제조를 맡겼다.

 

완성된 향수는 생각보다 더 마음에 들었고, 그 안에는 프리지아, 아카시아, 피치, 코튼 등 평소 내 코를 킁킁대게 만드는 향들이 조화롭게 녹아들어 있었다. 향수를 직접 만들어 보며 스스로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지만, 나와 전혀 다른 향을 만들어 내는 친구를 보며 '향'이 제법 흥미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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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스키 마일드'는 내게 익숙한 향은 아니었다. 탑, 미들, 베이스 각 노트에 대한 설명을 읽었을 때 너무 무겁거나 진하게 느껴지진 않을지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그 걱정이 오히려 내가 머스키 마일드를 선택하도록 이끌었다. 계절이 바뀌며 나는 무언가 새로운 게 필요했고, 내 감각을 자극할 만한 게 필요했다. 특히 요즘같이 집에만 박혀 있는 나날들 속에서, 향만큼 변화구를 주기에 적절한 것이 없었다.

 

머스키 마일드의 첫인상은 역시나 생소했다. 블랙 커런트 향이 먼저 뛰쳐나와 날 맞았고, 이어 자스민과 오렌지 플라워 향이 그를 감쌌다. 어떻게 보면 내 나이에 비해 조금 성숙한 느낌이 드는 향이라고 느껴질 수 있지만, 그런 생각을 할 때쯤 달콤한 바닐라 향이 부드러움을 더해줬다. 단순히 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 없는 오묘함에 검은색 뚜껑을 자꾸만 열었다 닫았다 반복하며 향을 파고들게 됐다.

 

나는 나에게서 날아가 버린 향수를 좋아한다. 향수를 뿌리고 외출했을 때, 인파 속에 섞여서도 풍기는 나만의 향에서 만족감을 느끼기보다는 하루 동안의 외출을 전부 마치고 집에 돌아와 혼자 잔향을 느끼는 순간을 더 좋아한다. 길거리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향에 섞여 도시의 공기를 이루게 된 향들을 조금 덜어내고, 지하철 옆자리에 앉은 사람과 서로의 향을 공유하며 살짝 덜어내고. 그렇게 가벼워진 향은 내 팔목에, 머리카락에 스며들어 어떤 향수도 만들어 낼 수 없는 향을 완성한다.

 

머스키 마일드 역시 하루의 끝에서 내게 새로운 향을 선물했고, 베이스 노트 속 화이트 머스크와 베티버, 바닐라의 따뜻함은 하루가 지나도 내게 남아주었다. 향수는 그렇게 늘 내 곁에 있다는 점이 매력인 듯하다. 외출 후 홀로 귀가했을 때의 공허함은 좋은 사람들과 보냈던 시간에서의 그 향을 그대로 느낌으로써 채워지기도 하며, 도저히 나아지지 않는 깊은 우울에 빠져 있을 때면 새로운 향이 내 곁을 채움으로써 날 끌어내 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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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스키 마일드의 조향 영감은 '퇴근길의 하늘'이다. 어느 날은 환하고 큰 달 혹은 노을을 구경할 수 있고, 또 어느 날은 달의 형상조차 보이지 않고. 어느 날은 퇴근길이 마냥 유쾌하고, 또 어느 날은 피식, 웃음조차 나오지 않고. 매일의 퇴근길은 조금씩 다르지만, 나와 함께 하루를 마무리하는 그날의 하늘은 매일 나를 마중한다. 그 하늘과 구름에 그냥 폭, 안겨 보고 싶다는 생각은 다들 해 보지 않았을까?

 

머스키 마일드는 그 '안길 구석'이 되고자 한다. 다가오는 쌀쌀한 가을, 그리고 겨울. 머스키 마일드에게 곁을 내어 주면 어떨까. 내가 말하지 않았나. 향은 언제나 내 곁에 남아 있다고.

 

 

[이건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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