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토록 어려운 평범, 그 스펙트럼 -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 [공연]

각자의 온도로, 가족의 평범은 다양하다.
글 입력 2024.05.09 15:44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

본 글은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에 대한

강한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크기변환]뮤지컬-넥스트-투-노멀-캐릭터-포스터.jpg

 

 

"Q: 다이애나가 결국 돌아올까?"

 

 

평범함을 그토록 원하던 '넥스트 투 노멀'이라는 극은 나와 H에게 이 질문을 남겼다. 이 글은, 그 질문에 답하는 일련의 과정이 된다.


최근 H와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을 보러갔다. 한참 전부터 H가 꾸준히 추천해주던 뮤지컬이라 궁금증이 들끓었지만, 현장에서 모든 충격을 느껴보라는 조언을 남겨주었다. 그래도 약간의 힌트로 H는 넘버 중 하나인 ‘넌 몰라’를 추천해줬다. 라이브 밴드 세션으로 록 뮤지컬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마냥 기대되었다.

 

 


 

공연장에 들어가서는 H가 시놉시스를 다시 한 번 읽어보라고 강조했다.

 

 

시놉시스


겉으로 보기에 평범해 보이는 한 가정.


과거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엄마 다이애나. 그런 엄마로부터 소외감을 느끼는 딸 나탈리. 흔들리는 가정을 지켜내려 노력하는 아빠 댄. 댄의 계속되는 노력에도 다이애나의 상태는 나아지지 않고 가족들은 저마다 한계에 다다른다.


위태로웠던 그들은 서로의 상처를 진심으로 바라보기 시작하고 평범하지는 않아도 그 언저리에 있는 새로운 희망을 위해 노래한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넌 몰라’에서는 다이애나, 댄, 그리고 게이브라는 아들 캐릭터가 등장했는데 시놉시스에서는 도저히 게이브를 찾아볼 수 없었다. H에게 물었다 - 시놉시스에는 아들의 소개가 안 보이는데 분명히 넘버에서는 본 것 같다고. H는 담담하게, 이 이야기는 ‘4명의 굿맨 가족’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해줬다. 강렬한 조명과 함께 '넥스트 투 노멀'이 시작되었다.

 

 

 

# 록과 '게이브', 슬픔 위의 아드레날린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정보의 불균형을 풀어낼 힌트를 찾을 수 있었다.

 

1. 게이브의 말에는 엄마 다이애나만이 응답한다. (그리고 그녀는 조울증과 망상 증세가 있다.)

 

2. 식사를 준비할 때 다이애나는 항상 3인분만을 준비한다. 그리고 당연한 듯 댄, 나탈리, 그리고 다이애나가 식사한다. 

 

 

20220624115041_gasuqvhh.jpg


 

사실 게이브는 오래 전 죽은 첫째 아이이다. 다이애나의 오랜 망상 때문에 굿맨 일가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게이브의 그림자에 영향받게 된다. 가족밖에 남지 않은, 혼자가 되기 두려운 댄은 필사적으로 가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나탈리는 자신이 마주해본 적도 없는 ‘오빠’라는 사람과 그 탓에 생기는 일들 때문에 항상 뒷전이 된다. 그림자와 형체 없는 싸움을 하는 나탈리의 화는 결국 자신에게 내상만 입힐 뿐이었다.


이러한 맥락을 이해하고 ‘넌 몰라’를 듣는 순간, 넘버는 완벽히 새로운 느낌을 준다. 게이브와 댄은 각자 양쪽에서 다이애나를 위해 있어주었다고 말한다. 현실에 실재하는, 다이애나가 마주해야 하는 것은 댄이지만, 듣고 싶은 말을 해주는 게이브의 환영에 다이애나는 망상 속에 자신을 자꾸만 가두게 된다. 밝은 분위기의 락이 버겁게 들려온다. 슬픔 위에 아드레날린이 흐르는 듯한 이질적인 느낌을 준다.

 

이를 가장 효과적으로 살린 부분은 게이브의 솔로 넘버 ‘난 살아있어’이다. 해당 넘버는 1막과 2막에서 리프라이즈로 총 두 번 등장한다. 다이애나의 병이 호전되지 않자 댄의 극적인 설득으로 그녀는 전기충격요법을 시도하게 되고, 그녀를 너무나 오래 괴롭힌 게이브에 대한 기억을 송두리째 잃어버린다. 그러나 그 외에도 사라진 기억들이 많아 하나하나 퍼즐을 맞춰가던 중 다이애나는 결국 게이브를 다시 기억하게 되고 게이브가 ‘난 살아있어’를 부르며 등장한다. 해당 장면에서 필자는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절망의 시작점인 게이브가 파워풀한 록 음악을 웃으며 부르고 있었다. 그 순간만큼은 게이브가 이 상황을 즐기는 ‘악’ 그 자체인 양 느껴졌다. 앞 장면에서부터 흐르던 눈물이 멈추고 피부가 오소소 솟아올랐다.

 

 

 

# '홀로'가 재해석 된다면



1막은 앞서 말했듯 댄의 극적인 설득으로 다이애나가 전기충격요법을 하기로 합의한 뒤 병실로 들어가는 장면으로 막을 내린다. 해당 씬에서 모든 인물은 혼자다 - 병실로 들어가는 다이애나, 아내를 믿고 보내는 댄, 자신이 잊힐 것임을 직감하고 있는 듯한 게이브, 전기충격요법은 말도 안 된다며 만류하는 나탈리. 각자의 위치에서 모두가 단절되어 우두커니 서 있는 채로 씬은 마무리된다.


2막에서는 다이애나가 댄에게 집을 떠나 홀로 모험을 해보겠다고 한다. 허망하게 남겨진 댄을 발견한 나탈리는 함께 이겨내자고 하며 손을 건넨다. 다이애나는 간간이 나탈리와 전화를 하고, 나탈리의 애인 헨리는 굿맨 가족에게 안정감과 생기를 불어넣어 준다. 게이브의 환영은 더는 누군가를 괴롭히지 않는다. 2막의 마지막은 단체 넘버인 ‘빛’으로 막을 내리게 되고, 모든 등장인물이 집의 골격 구조를 띠고 있는 무대 위 각자 위치에 서서 삼각형의 대형을 만든다.


‘홀로’라는 단어가 재해석되는 순간이었다. 1막의 마지막에서는 저마다의 이유로 홀로 불행했지만, 극의 마지막에 다다라서야 모두가 홀로 오롯하게, 단단한 삼각형을 만들게 되었다.


가족은 어렵다. 각자 다른 세계가 만나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만들게 된다. 각 구성원은 고유한 온도를 가지고 있고 여러 온도가 섞이니 그 결과물은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평범’을 정의할 수 있을까. 결국, 스펙트럼인 것이다. 평범이든 평범의 근처든 굿맨 가족은 ‘그들만의 따뜻한 평범’이 있다. 끓는 온도와 차게 식은 온도가 만나 미온이 되더라도 서로를 안아줄 수 있다면 이는 미온의 따스함 아닐까? 그리고 이 따스함을 ‘넥스트 투 노멀’은 극에 어울리는 결말로서 증명해주었다.

 

 

20220624115224_kpxubzpd.jpg


 

 

# 그날의 다이애나에게는 다른 결말을 주고 싶다



뮤지컬의 여운이 남아 H와 나는 서로의 감상을 이야기하러 가게에 들어갔다. H는 ‘넥스트 투 노멀’을 본 모든 사람에게 물어본 질문이라며 서두를 던졌다.


“다이애나가 결국 돌아올 것 같아?”


돌아온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집을 잠시 방문하는 걸로는 채울 수 없는 뜻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돌아온다’는 것은 다이애나가 자신의 비어버린 부분을 직접 꿰매고 자신을 온전히 마주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그때 모든 일이 있었던 집을 바라보고 완전히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 돌아옴이라면, 글쎄, 다이애나의 작중 행적을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과연 그녀가 이 모든 날 것의 과정을 거칠 수 있을 만큼 강한 사람일지 의문을 품게 되었다.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확신이 없었음에도, 그날의 최정원 배우의 다이애나는 댄에게 작별을 고할 때 눈에 희열과 떨림, 그리고 진정어린 사랑이 있었다.

 

공연예술의 묘미란 이런 것 아닐까? 그날 배우의 작은 발성 하나에도 모든 문맥이 다르게 읽힌다. 그날의 다이애나에게는 왠지 무모하게, 돌아올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날의 공연장을 떠나, 마지막 대사를 훌쩍 넘어 자신을 되찾는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나면 다이애나는 넘볼 수 없게 자유로운 곳으로 뻗어 나갈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어쩌면 바랐던 곳으로, 평범 근처 어딘가로.


 

 

김수진 에디터 태그.jpg

 

 

[김수진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6.15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