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노래여, 부디 나의 진짜 모습을 이끌어줘 - 용과 주근깨 공주

글 입력 2021.09.21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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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째서 자신의 어머니는 나와의 미래가 아닌 모르는 아이의 생명을 선택한 것일까.


세상에는 빛과 그림자가 존재한다. 학교에도 마찬가지였다.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루카, 여학생들의 인기를 끌고 다니는 시노부와 비교하자면 스즈와 그녀의 친구 히로카는 그림자의 사람들이다. 특히 조용하고 암울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스즈에게 루카는 전혀 다른 세계의 사람이었다. 그리고 스즈와 히로카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사람들의 중심에서 빛을 받는 루카를 보며 자조적인 대화를 할 정도로 말이다.


그렇다고 스즈가 처음부터 그림자 속에서 살았던 것은 아니었다. 그녀또한 빛을 받던 나날들이 있었다. 사랑하는 어머니와 함께. 집에 있던 전자 피아노로 노래를 배우고 작곡을 하며 같이 목소리를 내던 때가 있었다. 웃음이 끊이지 않던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런 시간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갑작스러운 폭우에 강의 물은 순식간에 불어났다. 그리고 그런 강의 급류 속에서 아슬아슬하게 목숨을 부지하며 울던 어린 소녀가 있었다. 어머니는 스즈와 함께 하는 미래 대신 그 아이의 목숨을 선택했다. 거칠게 흐르는 강으로 뛰어들어 이름도 모르는 어린아이에게 자신의 구명조끼를 건넸다.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다.


그날 이후로 스즈는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노래는 그녀의 목울대에서 맴돌았고, 어떻게든 노래를 부르려 할 때는 저도 모르게 토악질을 했다. 그렇게 스즈는 그림자 속으로 들어갔다.


그 와중에 세상은 빠르게 변해가고, 가상 세계 U라는 것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가상 세계 속에서는 원래의 스즈와 전혀 다른 모습의 벨이 되었고, 스즈는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벨의 모습으로 그곳에서 다시금 노래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순식간에 세계적인 스타 사이버 가수가 된다. 그렇게 벨로 살아가던 어느 날 의문의 정체 '용'이 나타나게 된다.


U 세계의 사람들은 모두 용을 부정적으로 바라보았지만, 스즈는 어느 순간 용이 큰 상처를 안고 있음을 짐작하게 되고 그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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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세계'는 호소다 마모루가 즐겨 찾는 소재 중 하나다. '우리들의 워 게임'의 디지털 월드, '시간을 달리는 소녀'에서 타임 리프할 때 묘사된 시공간의 세계, '썸머 워즈'의 인터넷 세계 OZ, '괴물의 아이'의 또 다른 세계 주텐가이 등등, 그는 현실과 다른 또 다른 세계를 자주 작품 속 배경으로 차용한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오롯이 '또 다른 세계'에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그의 작품 대부분은 또 다른 세계와 연결된 '진짜 세계'에 집중된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에서는 어떻게 현실을 바꿔나갈지가 이야기되고, 썸머 워즈는 가상 세계를 통해 진짜 세계를 구해내는 것이 주 내용이다. 늑대아이에서도 반인반수 아이들을 데리고 '현실과 자연'이라는 두 개의 환경에서 갈등하는 것이 주 내용이다.


이번 '용과 주근깨 공주'도 이와 마찬가지다. 현실에서는 그림자에서 살아가는 스즈가, U라는 또 다른 세계에서 빛의 중심이 된다. 극 초반에는 현실의 이야기보다도 U의 이야기에 집중된다. U에서 성장하는 벨, U에 나타나는 용, U에서의 벨과 용의 관계 등등, 대부분이 가상세계를 중심으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용을 중심으로 두고 어느새 U와 현실 세계의 경계가 무너지기 시작한다. 벨의 진짜 정체는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이며, 점차 용이 악당으로 치부되며 사람들은 현실 세계에서 용의 정체를 찾기 시작했다. 용이 나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오직 스즈 뿐, 이미 U의 세계에서 용은 처단해야만 하는 괴물이 되어있었다.


스즈는 용을 지키고자 했고, 가상 세계 U와 현실의 경계 사이에서 '진짜 나'를 찾으며 성장해나간다.


가상 세계 속에서만 머물러있는다면 결국 주인공은 성장하지 못한다. U의 세계 속에서 스즈는 그림자를 벗어던졌다. U에서는 그토록 사랑하는 노래를 부를 수 있다. 사람들에게 사랑받았다. 하지만 스즈는 목숨과도 같이 여겼던 노래보다 용을 구하는 쪽을 선택했고, U에서 기꺼이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며 용을 구하기 위해 사람들 앞으로 뛰어든다.


그리고 스즈는 자신의 어머니가 자신과의 미래보다는 어린 아이의 목숨, 자신의 행복보다 타인의 생명을 선택했던 이유를 이해하게 된다.


호소다 마모루가 그린 U라는 가상 세계는 결국 '숨겨져있던 진짜 나'를 찾아내기 위한 배경이다. 부친의 학대를 받으며 강해지고 싶었던 어린 소년이 용이라는 강인한 존재가 될 수 있었던 것처럼, 노랫소리를 내지 못했던 스즈가 사이버 가수 벨이 될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저 가상세계에서만 머물러있지 않는다. U에서 용과 벨로 만난 어린 소년과 스즈는 U를 뛰어넘어 현실 세계로 이어졌고, U에서 찾아낸 자신의 진짜 모습을 현실에서 드러낸다. 타인을 믿지 못했던 소년이 용기를 내며 용감하게 스즈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되고, 스즈가 벨이 아닌 자신의 진짜 모습을 드러내고 노래를 불러 소년을 도와주러 갈 수 있게 된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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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가장 큰 강점은 바로 연출의 아름다움이다.


2D 애니메이션의 빛은 점차 사그라들고 있다. 애니메이션 업계에서는 수많은 사람이 필요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셀식 애니메이션보다는 3D를 선호하게 되었고, 이는 일본의 애니메이션 영화도 마찬가지다. 아날로그 감성을 사랑하는 지브리에서도 '아야와 마녀'를 선보이며 3D를 시도했을 정도이니 말이다.


하지만 오랜 시간 일본 애니메이션을 사랑해온 사람들에게 이런 변화는 그리 반갑지 않은 변화다. 일본 애니메이션 마니아층에는 아직 2D만의 감성에 머물러있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


'용과 주근깨 공주'는 3D와 2D를 적절하게 결합하고 연출했다. 현실 세계는 대부분 2D로 작업하고 가상 세계 U는 3D로 표현하여 2D와 3D의 차이점을 현실 세계와 가상 세계를 구분 짓는 도구로 활용했다.


현실 세계에서는 최대한 2D를 사용하여 호소다 마모루의 그림체와 분위기를 살렸으며 3D를 활용할 때에도 원거리의 모습들에만 사용하는 등 최대한 위화감 없이 작업했다. 하지만 가상 세계 U에서는 3D를 활용하며 호화스럽고 다채로운 연출을 이뤄낼 수 있었다. 특히 호소다 마모루만의 시원시원한 액션씬과 벨의 화려한 공연 모습은 보는 사람으로부터 감탄을 일으켰다. 덕분에 용과 주근깨 공주는 3D와 2D의 적절한 융합을 통해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었다.


가상 세계 U와 어울리는 신비로운 노래 또한 이 영화의 큰 매력 포인트다.


사실, 노래를 듣기 위해 영화관에 간다고 해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노래가 잘 뽑혔다. '신비롭다'라는 말 이외에는 또 다른 표현을 찾아내지 못하는 나의 어휘력이 안타까울 정도로 노래가 좋다. 그뿐만 아니라 벨의 목소리를 맡은 일본의 싱어송라이터 나카무라 카호의 목소리는 섬세하고 부드러운 선율과 시원시원하고 강렬한 음악을 모두 완벽하게 소화하며 역대급 영화 OST를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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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스토리 라인에서는 아쉬운 부분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호소다 마모루의 자가복제적인 면모는 끊임없이 나타나고 있고, 그뿐만 아니더라도 개연성 부분에서 자주 납득할 수가 없었다. 나 또한 영화를 본 직후부터 입에 침이 마르게 지인들에게 스토리에 대한 혹평을 내뱉고 있다. 영화를 봤을 때로부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각본이 과연 이것이 최선이었을지에 대해 끊임없는 의문이 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봤을 때로부터 지금까지 이 영화의 시각적, 그리고 청각적 여운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을 정도로, 영화는 아름다웠다.




[김혜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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